2014년 5월. 영국 세인트 아이브즈. 2박 개인실/3박 개인실
10년간 다녔던 4번의 영국 여행 중 런던에서 가장 먼 곳은 콘월 지역의 세인트 아이브즈였다. 버스로 8시간이 걸리는 섬의 남쪽. 너무 멀어서인지, 별다른 유명한 스팟이 없어서인지 한국인은커녕 아시아계 사람을 1도 보지 못한 곳이었다.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너희 여기 어떻게 알고 왔어?”라고 물을 만큼.
영화 <어바웃 타임> 때문이었다. 팀(돔널 글리슨)이 어린 시절을 보내고, 종종 돌아와 가족들과 조용한 시간을 갖던 작은 해변 동네. 물론 그 집이 있는 곳은 세인트 아이브즈가 아니지만, cornwall을 무작정 구글링 하다가 짙고 넓게 이어진 해변의 이 곳을 발견했다. 열흘이라는 길지 않은 여행 기간 중 총 6일을 여기에 투자했다.
짙은 바다는 많은 아티스트에게 영감이 되기 충분했다. 작은 아틀리에들이 각기 다른 영국이라는 섬의 남쪽 바다를 전시하고 있는 곳. 왜 여기에 테이트 분점이 있을까 생각했는데 (물론 갔을 때는 공사 중이라 못 봄 ㅜㅜ) 물이 빠진 모래사장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이들을 본다면 바로 이해하게 될 것이다.
세인트 에이브즈의 모든 공간은 바다를 향해 있다. 갤러리도, 상점도, 식당도. 집이라고 다를 리 있겠나. 모든 창은 바다를 향해 열려 있었고, 큼지막한 창문들은 그 자체로 액자가 됐다. 첫 번째 방은 눈을 뜨면 침대에서 바다가 가까이 보였다. 여전히 시차에 적응하지 못한 날, 눈을 떴을 때 바다 저 끝에서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일출을 본 게 언제였을까. 해가 바다 너머 다 올라올 때까지 멍하니 그 장면을 보고 또 봤다. 아주 천천히이기도 하고 아주 순식간이기도 했다.
두 번째 방은 동네 꼭대기에 있는 곳이었다. st.ives로 검색하면 화장품만 주르륵 나오던 때였으니 이 지역이 바다를 바라보며 언덕처럼 위로 형성된 곳이라는 것에 대한 사전 정보가 있을 리 없었다. 3일을 지내보니 다음 방이 가파른 길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뷰가 좋다는 것은 가파른 곳에 있다는 것을, (여기는 꼭대기까지 가는 마을버스가 있었지만) 뚜벅이 여행자는 무조건 걸어가야 한다는 것을 그때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다. 대신 그 작은 방에서 옹기종기 모인 집들과 들풀, 바다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 비가 오면 더욱 좋았다. 타닥타닥 빗소리를 듣고 창 너머의 풍경을 봤다.
세인트 아이브즈는 많은 기억이 있는 곳이다. 다 쓰러져가는 작은 극장에서 녹화가 아닌 실시간으로 NT Live <리어왕>을 봤고, 한 손에는 상대방의 손을 다른 한 손에는 신발을 들고 해변을 거니는 노부부도 봤다. 이 좁은 동네에서 길을 잃었을 때 호스트들은 차를 끌고 와 나와 친구를 데려갔고, 두 번째 집의 호스트가 아침마다 내어주는 조식은 그야말로 평화로웠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우리를 보고 호스트의 파트너는 'Lazy girls'라고 놀려댔지만 한없이 조용한 곳에서의 6일은 그 어떤 여행보다도 더 기억에 많이 남았다.
그리고 액자가 된 창문을 통해 본 그림 같은 그 경치. 쉽게 볼 수 없어 더욱 아름다웠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