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호주 멜버른, 개인실 4박
2013년부터 2017년까지 각종 도시를 여행하면서 이용한 에어비앤비가 17집 정도 된다. 호스트를 만나는 방법도 다양했고, 브리즈번의 호스트처럼 아예 얼굴도 못 본 경우도 적지 않다. 이번은 브리즈번에서 3일을 보내고 도착한 멜버른 집(두 번째 에어비앤비)에서의 일이다.
호스트에게 얼추 집에 도착할 시간을 말해두었지만 생전 처음 오는 도시에서 그 시간을 맞추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동서남북이 어딘지도 모르겠고 주소체계도 낯설고, 구글맵 사용도 서툴던 시절. 호스트는 시간이 맞지 않아 자신이 집을 비울 것 같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열쇠를 어딘가에 두고 갈 테니 일단 들어와 있으라는 말과 함께. 열쇠와 함께 대문짝 하게 내 이름을 그린(정말 그렸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어색한 한글) 카드가 있었다. 그 이후로도 나는 호스트에게서 웰컴 카드를 받은 적이 없다.
브리즈번과는 또 다른 느낌의 낯선 도시, 아이폰에 정확히 찍혀있던 40도라는 믿기 어려운 날씨, 친구와의 만남을 뒤로하고 혼자가 된 시간. 지칠 대로 지친 나에게 그 카드가 순간 미소 짓게 한 것은 당연했다. 모든 것이 따뜻하게 보였다. 집 앞에 서있던 파란 자전거, 낮은 담장, 날카로운 햇살을 부드럽게 받아내고 있던 유리창.
간단히 요기를 하고 몇 시간 뒤 만난 호스트는 그 집과 꼭 닮아있었다. 거실 소파에 앉아있던 그는 문을 열고 들어온 나를 향해 열렬히 손을 흔들었다. 아일랜드에서 이민 와 멜버른에서 24년을 살았다는 호스트는 함께 살던 아들이 아일랜드로 유학을 가서 혼자 지낸다고 했다. 1층에는 거실과 부엌이, 2층에는 호스트의 방, 아들의 방, 게스트 방이 있었다. 각종 그림과 소품들이 코너마다 있었는데 난삽해 보이지 않는 센스가 참 좋은 집이었다. 일단 영어를 잘 못하고,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 에어비앤비에서 호스트를 잘 찾질 않는다. 마주치면 말을 걸까 봐 방 밖을 나오지 않는 적도 많다.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인자하게 웃어주던 백발의 중년 여성이 이 집의 호스트였다.
멜버른 하면 다양한 일들이 떠오른다. 해변에서 본 영화, 남들 출근할 때 느긋하게 앉아 먹던 아침의 수프, 길 한복판에서 회사 전화를 받았던 기억, 마지막 날에 봤던 <백조의 호수> 발레 공연. 하지만 가장 마음에 깊게 남아있는 것은 역시나 호스트가 삐뚤빼뚤하게 적은 '경진'이라는 카드다. 이 낯선 활자를 그는 어떻게 마주하게 됐을까. 어떤 방식으로 '그려야' 당신의 게스트가 잘 알아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심지어 그는 내가 돌아가고 난 이후에 발견한 나의 물건을 한국으로 보내주겠다고까지도 했다. (물론 사양하긴 했지만)
이 중년 여성은 내가 처음으로 에어비앤비에서 만난 호스트였다. 따뜻함으로 기억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