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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두민 Aug 18. 2023

복잡함은 우리를 속인다

내 인생의 데이터 베이스

 마음이 유독 분주해지는 시기가 있다. 그 시기는 각자마다 다르며, 그 누구에게 설명을 하고 싶어도 말로는 전부 말을 못 하는 그런 애매하고도 신비로운 분주함이 우리 모두에게 다가오는 때가 있다. 이런, 분주함이 찾아오는 시기에는 하는 일마다 몰입이 되지 않고 손에 일이 잡히지 않을 것이다. 마치, 분주함이라는 감옥 안에서 분주함의 간부들이 가져다주는 복잡함과 미묘함 그리고 비-몰입력만을 제공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자로서 말이다. 이렇게 분주함이 찾아오게 되면 그 속에 있는 교묘하고 날카로운 가시인 '복잡함'도 함께 찾아온다. 


 '복잡함'은 나의 이성이나 논리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그야말로 나로부터 거리를 취소할 수 없는 타자와 같다.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가 '이렇다' 또는 '저렇다'라고 정의를 내리기라도 하면 '복잡함'은 콧방귀를 뀌듯 계속해서 나의 정신과 마음을 어지럽게 한다. 도저히, 어지러워서 정신적 구토가 밀려온다. 보통 구토가 밀려오면 구토를 하고 속을 깨끗이 하라고 한다. 그래서, 나도 종종 정신적으로 구토할 곳을 찾아 해맨다. 어떨 때는 음악으로, 영화로, 친구로, 취미로, 또는 술로 나의 정신적 세척을 위해서 찾아다니지만 무엇하나 복잡해진 마음을 깨끗이 못한다. 그래서, 나는 복잡함에 속아 '패배의식'을 반강제적으로 수용한다. 


 '패배의식'은 복잡함이 주는 아주 악랄한 선물이다. 이 선물에 속으면 한 동안 나 자신의 약점과 취약한 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삶을 내버려둔다. 그리고, 그렇게 삶을 내버려 두면 나 자신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게 된다. 물론, 규칙을 정해서 살면 어느 정도 방지는 하지만 그것도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을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면 다른 사람은 '내려놔'라고 이야기한다. 참으로 책임의식 없는 퇴락된 말이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내려놓으라고 하는 건지는 말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나는 이런 복잡함이 찾아올 때 뭔가를 내려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도리어, 그 복잡함을 더 드려다 본다. 복잡함이 주는 불안과 두려움의 심정성에 속지 않기 위해서 억지로 복잡함에 몰입하려고 한다. 그렇게 되면 그 복잡함이 주는 감정에 속지 않을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복잡한 이유는 내가 놓치고 있는 '디테일' 또는 '아주 조그맣지만 반드시 필요한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만일, 그것들을 발견하게 되면 복잡한 다른 것들이 뒷 배경으로 사라지고 진정으로 집중해야 할 무언가를 발견하게 됨으로써 단순해진다. 그렇기에, 복잡함이라는 감정에 속지 않고 직면하다 보면 또한 내가 놓친 자그만 것을 찾으려고 노력한다면 복잡한 문제는 금세 단순하게 변하게 된다. 


 복잡함은 자신이 어떤 사태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평균적이고 일상적으로 그것들을 이해했기에 발생한다. 여기서 잠시 하이데거를 빌리자면, 그는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까지 이어져오는 철학적 주제인 '존재'에 대해서 새로운 고찰을 하게 도와준다. 존재를 물을 수 있는 것은 최상층의 존재자가 아닌 현존재이며 그 현존재는 세계 내부적으로 '존재 물음'을 통해 현존재의 존재를 존재론적인 논지로서 개진한다. 거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존성이다. 


 실존성은 현존재의 가능적 태도를 기반으로 평균적 이해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한다. 평균적 이해를 쉽게 이해자면 어렴풋이 안다는 의미다. 그렇게, 비본래적 삶을 살아가면서 현존재의 존재방식인 '마음씀' 그중에서 몰입된 존재로서 비본래성의 삶에 대한 불안이 문득 찾아오고 그로 인해, 본래적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간다. 다시 말해, 우리의 마음이 분주하고 복잡할 때면 그 복잡함에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복잡함으로부터 시작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복잡함에 관한 끊임없는 질문과 사유를 통해서 얼마나 작던지 간에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때가 되면 그 문제는 '탈은폐'가 되어 우리 자신의 양심의 소리로부터 듣게 되면 우리의 각자성을 회복하고 본래성 안에서 다시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복잡함에 속지말고 직면하고 물어보는 사유의 훈련과 인내하는 마음이 나를 다시금 바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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