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2. 19.
오늘은 딸기를 먹었어.
엄마는 딸기를 좋아해. 딸기 특유의 그 향이 참 좋대.
그런데 딸기를 좋아하는 건 엄마만이 아닌가봐. 다들 얼마나 딸기만 찾는지 요즘은 딸기 값이 정말 금값이거든. 주머니 사정이 뻔한 아빠 벌이로는 선뜻 집어들지 못할 때가 많아서 엄마한테 내심 미안하기도 해.
아니, 물론 딸기 한 팩 못 먹을 정도로 허덕이며 사는 집은 아니야. 혹시 내가 너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건가 하는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오복아!
지금 엄마는 건강하게 너를 낳기 위해 친정에 요양을 가고 있단다. 주중 내내 외할머니 보살핌을 받다가, 주말에는 아빠가 집에 있으니까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 날이고.
닷새만에 만난 엄마의 손에는 외할머니가 챙겨주신 딸기가 들려 있었어. 덕분에 아빠도 오랜만에 딸기를 맛봤어. 딸기를 와작와작 먹는 엄마의 모습도 오랜만에 봤고.
사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엄마는 그 좋아하는 딸기를 먹지 못했어.
오해하지마. 아빠가 안 사줘서가 아니야. 병원에서 엄마한테 단 음식을 조심하라고 경고를 했기 때문이야. 자칫 너한테까지 안 좋아질 수 있다며 겁을 주니까, 엄마는 영락없이 과일에는 입도 못 대더라. 병 이름이 뭐더라? 임신성 당뇨? 사과며 감을 눈 앞에 두고 시무룩해 하던 엄마 표정이 생생하네.
다행히 지금은 괜찮아. 재검사 결과, 엄마는 건강하대. 그래서 오늘도 딸기를 그렇게 잔뜩 드신거야. 그래도 조금만 드셔야 한다고, 분명히 병원에서 그랬는데, 엄마 귀에는 '괜찮다'는 얘기만 들리고 '조금만'이라는 얘기는 들리지 않았나봐.
엄마 아빠에게 네가 찾아와준 건 정말 커다란 축복이라고 생각해. 단지 오랫동안 기다렸기 때문이 아니야. 너는 그 자체로 소중한 존재야.
하지만 엄마가 너를 뱃속에 품고 지내는 지난 열 달을 되돌아보면, 아빠는 자꾸만 코끝이 찡해져. 엄마에게 사건사고가 잇따랐거든. 그 좋아하던 딸기도 당장 얼마전까지 못 먹었잖아. 119 구급차를 타고 이 병원 저 병원 전전하며 뺑뺑이를 돌기도 했고, 몸 속에 나쁜 물이 가득차서 배꼽 옆에 구멍을 세 개나 뚫기도 했고, 길 한복판에서 배가 심하게 아파와서 한 발자국도 못 떼고 굳어버리기도 했지. 요즘은 아예 외할머니한테 몸을 맡겨야 할 정도로 몸이 상했고.
그런데도 엄마는 아빠한테 자꾸 고생한다고 말해. 엄마가 겪어낸 그 고통과 공포에 비하면 아빠의 수고스러움은 정말 티끌 같은데 말이야. 엄마는 참 선해. 아빠는 죽을 때까지 엄마한테 잘 해야해.
오복아, 아빠는 나중에라도 네가 꼭 알아줬으면 좋겠어. 엄마가 너를 만나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 말이야.
오복이는 자라서 미운 다섯 살이 될 거야. 엄마가 무슨 말을 해도 싫다, 아니다, 하면서 떼를 쓸거야. 사춘기도 겪겠지. 바람 탓인지 뭔지 문을 쾅쾅 세게 닫게 될 거야. 더 훗날에는 늙어가며 잔기침을 해대는 엄마의 초라한 모습을 보며 괜시리 화가 날지도 몰라.
오복아, 그 때 한 번쯤 기억해줘. 엄마가 오복이 너를 세상에 내놓기 위해 몇 년이나 마음고생을 했는지. 열 달 내내 얼마나 낑낑대며 견뎠는지. 이렇게나 작고 겁이 많은 사람인데.
열 번 화낼 거, 한 번만 내줘. 짜증 섞인 한숨 대신, 다 이해한다는 미소를 지어줘. 퉁명스러운 말대꾸 대신, 사근사근하고 상냥하게 대답해줘. 엄마는 그럴 자격이 충분하고도 넘치니까.
...아빠는 할머니한테 그렇게 못하지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