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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Dec 10. 2018

기자의 안테나는 항상 핸드폰으로 향한다

#단상 #에세이 #펑크


<기자의 안테나는 항상 핸드폰으로 향한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간담이 서늘했다.

    기자 생활 시작하고 종종 겪는 일인데 소위 '빵꾸'를 낸 거다. 

    사건기자들은 항상 안테나를 세우고 산다. 안테나를 어디로 세우냐면 핸드폰 쪽이다.

    아니 왜? 

    중요한 제보는 물론이고, 데스크 지시, 재난재해 문자, 출입처 긴급 상황 알림 등 모든 일의 통로가 핸드폰을 거쳐 오기 때문이다. 

    기자의 핸드폰을 줍는 일이 생기면 한번 슬쩍 구경해 봐라. 엄청 재밌는 게 많다.

    아무튼 연차가 차면서 긴급상황에 나설 일이 점점 뜸해졌다. 예전에는 아니 지금도 버릇처럼 목욕할 때나 수영을 할 때도 핸드폰을 비닐 팩에 넣어 다닌다. 수습 때 선배 전화를 못 받으면 동기 전원 집합에 온갖 상스러운 운율에 뭐 그런 교육을 하는 것도 다 이런 상황에 대비한 훈련 차원이다.

    막내 생활이 익숙해지고 연차가 차면서 나는 습관처럼 4:30에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알람을 꺼버린 게 한 3, 4년은 된 것 같다. 알람을 안 해도 벌떡벌떡 일어나니 굳이 애들과 와이프를 깨울 필요가 없어 꺼둔다.

    그러다 최근 가끔 알람을 다시 켜기 시작했다. 글을 쓰면서부터다. 

    체력이 예전 같지 않은지 내가 너무 몰입하는지 기력이 3%씩 딸린다고 할까. 그래서 종종 일어날 자신이 없으면 알람을 맞추고 잔다.

    어제는 리용호 북한 외무상을 취재하려고 칼바람을 맞으며 공항에 4시간을 서 있었다. 몸이 꽁꽁 얼어서 일이 다 끝나고 퇴근 하는 차 안에서 히터를 켜고 한참이 지났는데도 한기가 가시지 않았다.

    기력이 없어 차를 집 주차장에 세우고 일본 장어 요리를 먹으러 갈 요량으로 자전차를 타고 나섰다. 항상 가던 길인데 오늘은 운이 없는지 역주행하는 오토바이와 살짝 부딪히는 교통사고까지 당했다. 우여곡절 끝에 장어를 먹고 집에 왔는데 이미 밤 10시.  

    회양 요리 포스팅도 이미 이틀이나 밀려 더 미룰 수 없어서 몇 번을 꾸벅꾸벅 졸다가 겨우 새벽에 업로드했다.

    긴 하루를 마무리하고 새벽 1시쯤 잠자리에 드는데 도저히 못 일어날 것 같은 생각을 했음에도 알람을 안 켜고 잤다.

    눈을 떴더니 6:10.

    매일 새벽 올리는 단상을 쓰기에는 불가능한 시간이었다. 

    뭐 누가 나한테 매일 올리라고 채근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속으로 '나와의 약속이자 독자들과의 약속'이라고 생각하고 단상시리즈를 매일 새벽 올리고 있다.

    그리고 이 시간이 아니면 도른 짓을 하느라 온 정신이 아니기 때문에 괜찮은 글을 뽑아내기 어려운 것도 이유라면 이유다.

    내가 피곤했든 말았든 펑크는 펑크다. 

    근데 아침에 선배들 모시고 운전해 사무실로 가는데 영 뒤가 찜찜하니 속이 상했다.

    '아. 잘하는 게 꾸준한 거 하난데 이걸 놓치나' 하면서 속으로 꿀밤을 한 대 때렸다.

    암튼 어제 자기 전까지 생각해 뒀던 박철현 작가님의 둘째 딸 유나에 대한 글을 후다닥 마무리하고 리용호 아재를 취재하려고 조어대로 나왔다. 

    바람이 차다. 정신 바짝 차려 해야지 끽하면 꽥인거다. 

    나도 안다. 여유를 갖고 살면 좋다는 것을.

    그런데 어쩌겠나 만날 벼랑 끝에 몰려 내 몸뚱이 하나 부여잡고 살다 보니 이런 못된 습관이 들어 버린 거다.

    괜히 차 안이 답답해 바깥바람 쐬러 나왔다가 한 줄 쓰면서 아침의 미스플레이를 복기해 본다.

    그래 다시 처음부터 쌓으면 되지. 나는 포기를 모르니까.

#단상 #펑크 #간담이서늘 #두번실수하면바보 #세번하면나쁜거 #그래도포기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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