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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Dec 18. 2018

<안읽고 쓰는 서평> 밤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단상 #에세이

<밤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나는 꽤 어려서부터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왔다.

    종교적인 이유도 있고, 개인적인 이유도 있는데 막 뭔가 절망적이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그냥 좀 힘들었던 시절, 잠자리에 들 때 너덜너덜해진 몸을 이불에 뉘면서

    '아. 내일은 오늘 같이 살아낼 자신이 없는데 그냥 바로 하늘나라 고고하면 좋겠다' 라고 굉장히 자주 거의 매일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게 당시 상황이 힘들어서거나 내가 못 버티게 고통스러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진짜 말 그대로 천당이 그렇게 좋다는데 이 정도 살아냈으면 하이패스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자뻑 같은 거랄까.

    그러니까 나는 무슨 우울감에 의한 충동적 자살을 결심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안타깝게도 내 기도는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고, 어김없이 새벽 6시면 눈을 떠서 일터로 나갔다.

    하루하루가 어떻게 갔는지도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세상의 불운을 나한테 다 쏟아 부은 것 같은 나날이 지나갔다.

    엄마도, 누나도, 아빠도, 록수도, 나도 편안한 삶을 영위하기 시작했을 때쯤 어김없이 찾아오는 어둠의 눈동자.

    비루한 몸뚱이지만은 소중하게 다뤘어야 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은 것이었다.

    첫째가 만삭일 때 록수와 함께 늙은 의사 아니 중년 의사 선생님께 신장이 많이 망가졌다는 소릴 들었다. 록수야 워낙 감정 기복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사람이니 뭐 평안한 표정이었지만 적잖이 놀란 모습이었다.

    하기야 자동차도 정비 없이 마구잡이로 타고 다니면 고장이 나는데 삼라만상 우주를 담고 있다는 몸뚱이를 그렇게 굴렸으니 성하면 그게 정상이겠나.

    록수한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때만 해도 처가가 매우 잘 살았기 때문에 나는 그다지 걱정은 하지 않았다.

    약간 아쉽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리고 일견으로는 '그래 뭐 여기까지가 끝인가보오' 해도 불꽃같이 살다 가는 거 아닌가라는 상남자 같은 생각을 했다.

    그렇게 오는데 순서 있지만 가는데 순서는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견뎌냈던 날들이다.

    주변의 호의는 가족의 100분의 1도 가지 못했다. 일이 쌓이는 것이 눈치가 보여 남들보다 더 열일을 했던 것 같다.

    아마도 우리 선조는 임진왜란 때 족보를 주운 생명력이 질긴 노비의 종자인지 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초긍정모드로 2년 만에 훌훌 털고 일어났고, 그 뒤로도 이렇게 잘살고 있다.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 요즘에도 가끔 한다. 무슨 일이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저 시절 이후 그냥 가끔 한다.

    그런데 예전 같지 않게 자꾸 욕심이 생긴다. 일단 우리 막둥이 단이가 너무 귀엽고, 호수의 변화된 모습도 더 보고 싶고, 고생만 한 록수가 재미지게 사는 모습도 보고 싶고, 엄마, 아빠, 누나랑 강변도 살고 싶고 뭐 그렇다.

    죽음은 항상 그렇게 아쉬울 때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다고 무서워하거나 쫄면 우리 앞으로 더 성큼 다가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싶다면 그냥 편안히 누워서 기다리면 되는 일이다. 나는 그럴 자신도 있다. 반대로 죽음이 싫다면 두 주먹 불끈 쥐고 일어서라.

    그까짓 생물학적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생각하자. 정신만 온전히 살아 숨 쉰다면 몸은 자연히 따라오게 돼 있다. 그게 바로 노장사상이고 기독교의 핵심 원리이다. 옛 선인들이 무식해서 저런 무당 같은 말을 써 놓은 게 아니다. 다 근거가 있고 근간이 있는 말이다.

    밤에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지친 눈꺼풀을 겨우 치켜뜬 아침을 경건하게 맞을 수 있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아. 아직 살아있네?' 하면서 씩씩하게 대문을 활짝 열고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다.

    눈동자에 죽음을 간직한 사람만큼 총기가 있고, 똘망똘망하고, 겁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건 상대가 알고, 내가 알고, 우리 주변 사람들이 안다.

    직장상사에게 가장 괴롭힘을 당하는 부하는 바로 자신감이 없는 부하다. 반대로 직장상사에게 대접받는 부하는 '나는 언제든 이 조직을 박차고 나갈 수 있다'라는 '죽음'을 눈동자에 간직한 사람이다.

    지금 삶이 지치고 힘들다면 편안하게 누워서 조금은 쉬면서 유한한 생명력을 조금 사용해도 좋다. 피 한 방울이라도 아깝다면 두 주먹 불끈 쥐고 일어나라. 너무 세게 쳐서 발이 살짝 15㎝ 정도 땅에서 뜰 정도로 말이다.

    혹시 아나 운 좋으면 잠든 사이 승천할지.

#단상 #죽음 #밤에는죽음을생각해도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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