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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Dec 27. 2018

30대 남성은 완벽히 페미니즘을 이해할 수 있을까?

#단상 #에세이 #페미니즘

<할머니와 추도식 젓가락에 대한 단상>


    '정치와 젠더'

    내가 다루지 않는 두 가지 주제다.

    나는 이 외의 모든 주제에 대해 글을 쓰기도 하고, 논쟁하기도 한다. 다만, 이 두 가지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두고 페북 생활을 하고 있다.

    정치 분야는 기자 다 보니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어서 그렇다.

    기자가 자기 정치색을 너무 드러내고 다니면 기사에 그 기자의 바이라인이 달려 나왔을 때, 기사의 본뜻이 왜곡되거나 오해의 소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기사는 분명 내가 쓰지만, 꼭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작성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나 통신 기자는 객관적 사실 전달 위주의 보도를 하기 때문에 더 주의해야 한다.

    물론 나도 사적인 단톡방에서는 정치색이 든 농담도 많이 하고, 논쟁도 하지만 페북 같은 곳에서는 절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두번째 내가 다루지 않는 주제인 젠더.

    이건 확실하게 이야기하는데 잘 몰라서 안 한다.

    아직 공부가 덜 됐기도 하고, 평생 가봐야 공부가 될 거 같지도 않다. 그렇다고 뭐 양비(兩非), 양시(兩是)는 아니고 대체적으로 약자의 편에 서려고 노력한다.

    여기서 약자는 기존 핍박을 받았던 우리 어머니 세대, 또는 그 윗세대, 또는 그 아랫세대일 수도 있고, 띠동갑차 나는 우리 처남 같은 나보다 아랫세대 남성일 수도 있다.

    상황마다 약자 포지션이 다르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인데 대부분 경우 여성이 약자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남성 지인들이 젠더 관련 글을 쓰는 것을 가끔 보는데 잘 쓰기도 하고, 잘 아는 것 같기도 하다. 다만, 나는 완전한 이해를 바탕으로 글이 나왔다기보다는 '심정적 지지'에 기반해 글쓴이가 용기를 가지고 그 글을 썼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나같은 30대 전후 세대 남성은 젠더 문제에서 평생을 거쳐도 이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나의 성장 배경과 관련이 있다. 이것은 나뿐 아니라 나와 같은 세대와 또 우리 아버지 세대를 보고 자란 30, 40대 남성이라면 비슷할 것 같다.

    내가 나고 자란 전북은 생각보다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다. 그러니까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게 아니라 소위 양반 문화라고 해야나. 부엌세간 살림에 대한 보수성이 짙다는 소리다.

    얼마 전 한 지인이 우리 지역의 이런 특성을 지적해 나도 뜨끔한 적이 있다.

    장난으로 포스팅하긴 하지만, 나도 전업주부인 와이프와 살면서 '주방엔 가지 않는다', '청소를 하지 않는다' 뭐 이런 소리를 무의식적으로 내놓는데, 이런 것도 어찌 보면 성장배경의 영향일 수 있다.

    물론 말만 그러지 최대한 분담을 하려는 편이다. 다만 워낙 일의 업태가 싸돌아다니다 보니 전적으로 와이프에게 의지하는 면이 크다.

    얼마나 그러냐면 일례로 출장을 가려 해도 옷이 어디에 어떻게 정리돼 있는지 잘 모른다. 그래서 와이프가 없으면 아무렇게나 가방에 넣어서 가는데 어떤 날은 와이프 속옷을 넣어 간 적도 있다.

    이게 왜 그러는가 생각해보니 그렇게 보고 자라서 그런 면이 강한 것 같다.

    특히 우리 할머니가 그러셨다. 우리 집안은 기독교 집안이라서 제사 대신 추도식을 하는데 그때 젓가락과 수저를 내가 추도식 상에 놓기라도 하면 할머니의 심사가 매우 뒤틀린다.

    할머니가 그 모습을 보면 여자 사촌 동생들의 이름이 호명되고, "ㅇㅇ아. 젓가락 좀 놔라" 소리를 매우 엄하게 하시거나 작은어머니들에게 눈치를 엄청 주시거나 뭐 그렇다.

    그래서 분란 만드는 것을 안 좋아하는 나는 가마니를 쓰고 구석탱이에서 조용히 앉아 있는 편이다. 물론 엄청 불편해서 차라리 거들고 마음이 편한 게 나은데 또 그러면 할머니가 분위기를 싸하게 하시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러고 있는 거다.

    이게 할머니를 설득하면 해결될 문제지만, 그게 또 어디 쉽나. 나이 마흔만 넘어도 사람들은 자기 고집을 피우고 절대 생각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90세가 넘은 할머니의 사고를 바꾼다는 것은 진짜 오마이갓이다.

    그리고 다음은 아버지를 비롯한 삼촌 군단.

    이 세대도 뭐 뻔하지 않겠나. 할머니가 치매가 오셔서 요양원에 가신 뒤로는 시늉이라도 좀 하긴 하는데 뭐 없는 게 나을 정도다.

    아예 내가 왜 본인 조상의 넋을 기릴 음식을 차려야 하는지 인식을 못 할 정도인데 1부터 100까지 설명하기도 복잡하고, 어렵고, 귀찮은지 엄마 및 작은엄마들도 그냥 놔두는 것 같다.

    단편적이긴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자란 우리가 아무리 젠더 감수성을 부르짖어 봐야 쉽사리 그 심오한 핍박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겠나.

    아주 가끔 현인 모드인 우리 와이프랑 나눈 젠더 관련 대화가 생각난다.

    한번은 TV 토론 프로에서 젠더 관련 주제로 토론을 하길래 와이프와 보면서 '근데 우리 세대가 저 정도로 그런가?'라고 슬쩍 하지 말아야 할 소리를 했다. 그랬더니

    "아니. 몰라서 그래? 당신네 회사 여자 부장 몇이야?"

    "아니 회사 말고. 자네 세대가 뭐 엄청 핍박받는 것도 아니고, 명절에 시댁 안 가고 싶으면 안 가고 그러잖아. 나도 뭐 오라 가라 안 하고 그러는데. 너무 젠더 젠더 하는 거 아냐?"

    "뭐라고?"

    "아니. 장모님 세대가 그러는 것도 아니고, 우리 세대 나름대로 가정에선 평등한 거 아냐?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 된다. 나는. 솔직히 집에서 큰소리치는 건 자네지 뭐 난가?"

    라고 했더니 명언을 남겼다.

    "뭐. 우리 할머니, 엄마 것까지 우리가 다 받는다는데 뭐? 전에는 딱 자로 잰 듯 안 하더니 과도기 되니까 꼭 그런 소리 하더라"라고 나한테 받아쳤다.

    당시에는 말문이 막혀서 '에이. 몰라'하고 입을 닫았는데 나중에 생각하니 맞는 말 같기도 하다. 과도기에는 그럴 수도 있지 칼로 자른 듯 딱딱 나누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아마 지금 젠더에 관해서는 여러 스펙트럼이 한국 사회에는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좌충우돌하기도 하고 큰 진전을 보기도 하고 그럴 것이다.

   요즘 회사마다 '아니 능력도 없는데 여자라고 임원을 달어!'라는 소리가 여기저기 들리는데 어쩌면 마초 집단에서 여성이 능력을 키울 기회조차 없다가 제도가 문화를 앞서 도입되면서 생기는 현상으로 봐야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뭐 그렇다.

    그저 내 생각은 이런 시기에는 절대 선과 절대 악이 없다는 것만 기억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또 양시, 양비론인가? 아무튼 내 생각엔 그렇다. 그러니까 좀 논리적 비약이 섞이거나 합리성이 취약한 주장도 다들 너그러이 받아주자.

    내가 뭐 페미니스트네 한남이네 할 정도로 지식적으로 성숙하지도 않고, 예전 드라마 '아들과 딸'에서 귀남이(최수종)가 후남이(김희애)를 동정하는 수준도 못될 터이니 이런 글은 다신 쓰지 않겠다.

    그냥. 핵인싸 페친이 재밌는 글을 썼길래 나도 한번 적어 봤다.

    이 글에 혹시나 무지몽매한 한남이 이상한 표현을 썼어도 다 배우는 과정이다 생각하고 이해해주길 바란다.

    참고로 나는 상마초적 성격이라 이 부분에서는 입을 닫아야 맞다. 그러니까 귀엽게 봐주세용~.

#단상 #젠더 #할머니 #젓가락 #추도식 #그러니까싸우지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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