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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Dec 28. 2018

송구영신 예배와 말씀카드 그리고 기복신앙에 대하여

#단상 #에세이 #말씀카드

<말씀카드와 기복신앙에 대한 단상>

    오늘은 크리스마스 주일이다. 

    크리스마스 주일이라는 말은 곧 송구영신 예배날이라는 뜻이다.

    송구영신은 '옛것을 보내고, 새것을 맞는다'는 뜻으로, 12월31일에서 1월1일로 넘어가는 시간에 교회에서 하는 송년회 같은 예배로 생각하면 된다.

    송구영신의 백미는 우리 시골교회의 전통인 전 교인 목사님 안수기도도 아니고, 새해 카운트 다운도 아니다. 

    바로 말씀카드다. 

    그 헌금통에 안 보이게 담긴 말씀을 뽑는 것이 송구영신 예배의 하이라이트.

    말씀카드는 신자들이 새해를 맞아 나에게 떨어진 밀알 같이 여기면서, 한해동안 신주단지 같이 모시는 그런 성경 구절이다.

    이때 조금이라도 삶이 나아진다는 예지가 담긴 말씀을 뽑으면 기분이 매우 좋고, 고통을 감내하라는 구절이 나오면 기분이 안좋은 데 그냥 다시 뽑으면 된다. 

    그렇다. 말씀카드는 사실 기복신앙의 발로라고 보면 된다. 

     한국 기독교는 사실 기복신앙을 토양으로 발전해 왔다. 한이 많은 민족이니 뭐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개신교에는 크게 두 가지 신앙이 있다.

    하나는 베드로 같은 개복치 신앙, 하나는 바울 같은 메조히스트 신앙이다.

    모두들 바울 같이 지적이고, 고통을 감내하고, 반골 기질을 보이는 신자이기를 원하지만 현실은 대부분 징징대는 베드로 신앙이다.

    뭐 그렇게들 달라는 것이 많은지. 자식 대학 입학, 아파트 분양 당첨, 사업 성공, 신불자 탈출, 빚 청산, 건강 회복 등등등 종류도 다양하다.

   나는 개신교도 치고는 꽤 이른 나이에 기복을 그만뒀다. 일단 뭐 달라고 해서 시원하게 받은 적이 없고, 괜히 실망만 하게 돼 교회도 가기 싫어지는 일이 잦아지는 게 싫었다.

    가족이 좋은 울타리였지만, 나에게는 정신과 진료 같은 역할을 해준 교회를 미워하기 싫었기 때문에 그짓을 그만뒀다.

    그리고 우연히 본 한 편의 영화가 이런 생각을 더 공고히 해줬다.

    바로 '맨 인 블랙'. 

    맨 인 블랙 마지막 장면에는 신도 뭣도 아닌 거대 외계 생명체들이 우리가 사는 우주를 가지고 구슬치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은 나에게 꽤 충격이었다.

    내가 믿는 신이 저렇게 거대 달팽이 같이 생기지는 않았겠지만, 우리 집에 사라질 것 같지 않게 쌓인 빚을 갚는 것과 내 건강 같은 것에 큰 의미를 둘 거 같지는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큰 그림을 그리는 저들에게는 그냥 그런 일은 내가 앉은 자리에서 바람이 불고, 해가 지는 사소한 일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하늘에 덕을 쌓는 것을 표방하는 신자들이 베드로처럼 징징대면서 이거 달라 저거 달라 하는 것도 좀 우습기도 했다. 베드로도 나중에는 이를 깨닫고 선한 일을 하다가 역십자가형으로 상마초처럼 이생을 시원하게 떠난거 아닌가. 

    아파서든 사고가 나서든 좀 죽으면 어떤가. 라고 생각하며 살기 시작한 게 이때쯤인 것 같다.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가 IMF로 실직해 안그래도 힘들어 죽겠던 집을 더 풍비박산 냈던 그때쯤 맨 인 블랙을 봤던 딱 그때부터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뭘 달라는 기도는 잘 안 하고, 뭐 알아서 하세요. 라는 기도를 했다. 그리고 열심히 그냥 내 할 일을 했던 거 같다.

    대신 뭐가 주어졌을 때는 깍듯이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모로 주든 바로 주든 준 것은 감사하니까 신자라면 당연히 해야할 도리다.

    그 뒤로 바울의 삶에 대해서 굉장히 깊게 생각하고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성골 로마인 출신임에도 사막 족속 이방신의 은사를 받아 간질을 앓는 몸을 끌고 세상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던 그의 삶을 곱씹었다.

    12제자에도 들지 못했지만, 자기 혼자 열심히 댕댕이썅 마이웨이를 걷던 상남자인 그를 말이다. 

    그런데 베이징에 온 뒤 베드로의 신앙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교회가 좀 징징대는 곳이면 어떤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솔직히 한심하게 보던 기복신앙자들을 다시 보게 됐다. 사실 교회란 위로 받을 데 없는 사람들이 찾는 곳이 아닌가. 

    아파트 좀 달라고 하면 어떤가? 자식놈 좋은 대학 보내달라는 게 뭐 그리 욕 먹을 짓인가? 라는 조금은 어른스러운 생각을 하게 됐다.

    아마도 베이징에서 그리고 페북에서 짠한 스토리를 가진 분들을 많이 봐서 그런 것 같다. 

    예전 같았으면 '에휴 저러려면 점집에 가지' 했을텐데 이제 그러지 않는다.

    말씀카드를 여러 번 다시 뽑듯이 좀 징징대면서 기도를 하면 어떤가. 모두가 다 바울 같은 삶을 지향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라고 생각이 바뀌었다.

    맨 인 블랙에서 나온 것처럼 이생의 삶이 지극히 사소한 것이라면 좀 즐기고 편하고 싶을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정도로 품이 는 것이다.

    어려서 그렇게 싫던 기복신앙이 이제서야 아주 귀엽고 어여쁘게 보인다. 나도 베이징에 와서 스모그 좀 마시더니 한뼘 더 큰 모양이다.

    이제 2018년이 며칠 남지 않았다. 가정가정에 만복이 깃들길 바라겠다.

    새해에는 복이 차고 넘쳐 옆으로 옆으로 퍼져 나가길 바란다. 

#단상 #기복신앙 #송구영신 #말씀카드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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