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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Feb 25. 2019

똠양꿍보다 시원한 中광시성 특산 '우렁이 전골'

#맛객

<맛객> 쿰쿰하지만 시원한 광시성 특산 '우렁이 전골'

    '똠얌꿍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건 진짜 맛나게 먹을 수 있다'

    광시(廣西)장족자치구에 오기 전에 지인들의 맛집 추천과 바이두(百度)를 뒤져서 미식을 검색해 본 결과 모두 하나같이 '우렁이 쌀국수', '우렁이 전골'을 먹어보라고 추천했다.

    정말 거짓말 안 하고 다른 음식 추천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현지에 와 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곳은 동남아와 비슷해서 엄청난 맛의 향연을 즐길만한 미식이 없다.

    모두 알다시피 그냥 그 자체로 풍족하다 보니 특별히 조리를 열심히 할 필요 없이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조리법이 발달했고, 그냥 쌀농사를 지어서 밥이나 쌀국수에 이것저것 밭에서 키운 채소 요리를 곁들여 먹는 것 같았다.

    또 식사를 마치면 지천으로 널린 과일을 따다가 먹으면 후식도 해결되니 음식에 대해 특별한 공을 들일 필요가 없다.

핑샹 시장에는 과일이 정말 많다.

    어떻게 보면 축복받은 것이고, 어떻게 보면 풍요 속 빈곤 같은 것인데 뭐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그런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미각을 극단까지 자극해줄 요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좀 맛있게 즐길 수 있는 것은 제법 본토 비슷한 베트남 음식들이다.

    내가 있는 광시성 핑샹(憑祥)은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약 기차로 5시간 거리, 차로는 4시간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그러다 보니 많은 베트남 사람이 핑샹으로 넘어와 살고 있고, 솔직히 말하면 근대 국가 개념이 생긴 뒤에야 국경이 생긴 셈이니 그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바쁜 일정 때문에 때우기식으로 끼니를 건너 뛰다가 오늘 저녁 시간에 잠시 여유가 나 숙소 옆에 미식가(美食街)에 마실 겸 저녁 먹을 겸 한번 나가봤다.

핑샹의 미식가

    미식가에는 한 500m 정도 되는 거리에 상가들이 야시장처럼 쭉 늘어서 있었는데 파는 음식은 동남아 야시장과 거의 흡사했다.

    각종 고기 야채 꼬치, 열대과일모듬, 생굴구이, 생선구이, 족발구이, 로티, 반미, 요탸오 등등등 간식류가 많았고, 식사거리로는 쌀국수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우렁이 전골'이 있었다.

    중국 이름으로는 뤄쓰바오(螺蛳煲)라고 부른다. 굳이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우렁이 전골' 쯤으로 부르면 된다.

    어쨌든 미식 불모지였던 이곳에서 뤄쓰바오와의 만남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뤄쓰바오에 대해 내가 사전에 얻은 정보는 약간 쿰쿰한 냄새가 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똠양꿍을 무척 사랑하고, 홍어탕도 잘 먹는 나로서는 뭐 처우떠우푸(臭豆腐·썩힌 두부)정도로 심하지만 않다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겠다 싶어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북미 정상회담 취재 일정은 여유 있게 끼니를 찾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한가롭지 않았다. 제대로 끼니를 챙긴 것이 손에 꼽힐 정도로, 일정에 기사 마감에 쫓겨서 잘 차려서 먹는 밥은 한 끼도 먹지 못했다.

    그나마 게눈 감추듯 먹었던 뤄쓰펀(우렁이 쌀국수) 정도가 제대로 된 식사였달까?

우렁이로 낸 육수에 쌀국수를 말아 먹는 우렁이 쌀국수

    뤄쓰펀은 엄청 맛은 있었는데 이것을 맛객으로 쓸 만큼 정돈된 요리는 아니었다. 그냥 점심에 가볍게 한 끼 때우는 용도라고 하는 게 더 맞다.

    아무튼, 그런 생활을 하다가 오늘 미식가에 가서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쿰쿰한 냄새를 맡았다.

    냄새를 따라 고개를 돌린 순간 간판에 보이는 '뤄쓰바오'라는 글자가 눈에 확 들어 왔다.

    드디어 찾았구나!

    얼른 가까이 가서 보니 현지인 맛집인지 다른 점포에 비해 엄청 많은 손님으로 북적였다.

    나도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메뉴판을 보고 주문을 했다.

    닭, 해물, 돼지고기 세 종류의 우렁이 전골이 있었는데 나는 노계(老鸡)로 요리하는 중국 닭요리를 좋아하지 않고, 중국 돼지 육수의 그 노릿내를 최대한 살린 조리법이 싫어서 해물 우렁이 전골을 시켰다. 그리고 여기에 곁들일 두부피 튀김과 쌀국수도 추가로 주문했다.

    또 식사하면서 마실 음료로는 광시 특산 맥주 한 병을 시켰다.

    이미 조리 상태로 나오는 우렁이 전골은 비주얼에서부터 나를 압도했다.

    이건 뭐랄까. 어려서 논에서 보던 우렁이를 방사능에 노출시켜서 크기를 약 3배 키워 놓은 것 같다고 할까?

    또 그런 우렁이가 한솥 가득 담겨져 나왔다.

    처음엔 주춤했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서 먼저 국물부터 먹어봤다.

    '어마. 이게 뭐야?'

    혹시 우렁이 된장국을 먹어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우렁이가 들어가면 국에서 아주 시원한 맛이 난다. 강된장에 넣어도 우렁이에서 나온 육즙이 뻑뻑한 된장을 개운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이 육수는 뭐랄까 그런 개운한 맛을 내는 우렁이를 메인으로 듬뿍 넣고, 나머지 해물과 액젓 소스가 뒤를 든든히 받쳐 서로 어우러져 시원하고 깔끔한 맛을 극대화했다고 해얄까.

    똠양꿍보다는 맛이 연하면서도 그에 못지않은 깔끔 시원한 맛이 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홍어탕이나 과메기, 청국장 같은 음식에 비해서 쿰쿰지수가 무척 낮았다. 냄새로 맡는 것과 달리 그냥 국물을 마셔보면 시원한 물메기탕 먹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맛이 시원 칼칼했다.

    주인아주머니는 내가 혼자 테이블에 앉는 것을 보더니 주문할 때부터,

    "양이 너무 많으니 사리를 추가하지 말고 그냥 전골만 드세요"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메이원티(没问题·문제없어요)"라면서 "가꽈봐"를 외쳤다.

    근데 나온 양이 어마어마해서 솔직히 처음에는 '에이, 먹다가 남기고 가자'하고 식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너무 맛있다.

    전골에 들어있는 우렁이며, 새우며, 죽순도 맛있지만, 사이드로 시켜서 넣은 두부피 튀김과 쌀국수는 육수를 가득 머금어 환상의 조화를 이뤘다.

    육수가 쪼그라들면 종업원들이 와서 계속 채워주기 때문에 잠시 기다리는 시간이 생기는데 이때는 무엇을 하느냐면 바로 우렁이를 이쑤시개로 까먹으면 된다.

    이 재미가 또 쏠쏠하고, 게다가 엄청 큰 우렁이 살은 진짜로 먹을 만하다.

 

    우렁이 된장국을 좋아하는 사람은 알겠지만, 우렁이는 된장국에 들어있는 우렁이를 건져 먹다가 함께 밥 먹는 사람과 다툼이 날 정도로 맛이 좋다. 그렇다. 우리 누나와 내 이야기다.

    아무튼 식사하는 동안 주위를 둘러보니 이 솥을 가운데 놓고 가족이나 친구들이 둘러앉아 오손도손 이야기하면서 우렁이도 까먹고 훠궈처럼 다른 재료들을 샤브샤브해서 먹기도 하면서 즐겁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혼자 앉아서 전골을 먹었지만, 이 정도 음식이면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술잔을 기울이며 몇 시간이고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기분 좋게 우렁이 전골을 올킬한 다음 계산을 하고 나왔다.

    내가 먹은 자리를 보더니 주문을 받았던 종업원이 마구 웃었다. 나도 거의 전쟁터가 된 내 테이블을 보면서 하하하 웃으며 잠시 대화를 나눴다.

내가 먹은 우렁이의 흔적

    "어디서 왔나요?"

    "베이징에서 왔어요"

    "아, 그렇군요"

    "혼자 와서 우렁이 전골 먹는 사람 처음 봤어요"

    "아, 한국에서는 요새 혼밥하는 사람이 많아요"

    "아, 한국사람이세요?"

    "네"

    "베이징에서 왔다고..."

    "한국사람인데 베이징에서 일합니다"

    "(동공지진) 아, 중국사람처럼 생겼네요"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머리랑 옷에 조금 쿰쿰한 냄새가 배긴 했지만, 그래도 든든하게 배에 찬 우렁이들 때문인지 중국 남방의 뼈가 시린 추위에도 온몸 가득 따순 기운이 느껴졌다.

    미식가를 나오는 길에 밥도 못 먹고 앓아누워 있는 영혜를 주려고 로티 바나나와 로티 땅콩버터를 사고, 열대 과일 모듬을 두 개를 포장해 왔다.

    내일은 꼭 영혜를 데리고 와서 맛나게 우렁이 전골을 한 번 더 먹어야겠다.    

#맛객 #우렁이전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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