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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Dec 13. 2018

고맙다! 친구들아

#단상



<너모 감사한 페친들에 대한 단상>


++사실 이 글은 낼 아니 곧올 새벽에 도저히 못 일어날 것 같아 술기운에 쓰는 감사의 글입니다.

    SNS를 그 중 페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내 상태는 정상은 아니었다. 딱히 이유를 댈 수는 없는데 직감적으로 정상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는 있었다.
    너무 답답하다. 우울하다. 불안하다. 그냥 모든 게 허무하다.
    이미 여러 차례 글을 통해 밝혔듯이 우리 또래에 비해서는 많은 고난과 역경을 겪어봤는데도 이상하게 이 우울감은 떨쳐낼 수가 없었다.
    페북 스타급 친구가 있는 덕에 인싸인 분들의 페북 탐라를 휘휘 돌아보는 것이 원래 취미였다.
    페북을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도 괜시레 이것저것 올려도 보고, 글도 써보고 해봤지만 열심히 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두 페친이 여행을 떠나는 포스팅을 봤다. 뭔가 사연이 있어 보였는데 왜 둘이 같이 갔는지 도무지 알길이 없는 내용의 포스팅이 거의 실시간 단위로 올라왔다.
    길을 잃은 이야기, 옷을 산 이야기, 또 옷을 사고 나오다가 길을 잃은 이야기, 숙소에 널브러져 있는 이야기, 그러다 배가 고파져 다시 밖으로 나오다가 길을 잃은 이야기.
    이거 뭐하는 사람들인가. 이러고 놀면 재미있나. 근데 계속 보니까 잼있긴 하다. 나도 한 번 해볼까? 그게 따봉충의 길로 접어들게 된 계기였다.
    내가 우울감을 심하게 느끼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사드, 핵실험, 안보리 대북제재, 트럼프 방중, 19차 당대회, 문대통령 방중, 김정은 방중 등 굵직굵직한 이벤트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던 때가 아니라 올해 여름께였다.
    스님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남의 고민은 잘도 들어줬던 사람인데 내가 뭐가 문젠지는 잘 알아차릴 수 없었다.
    사실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우울감은 베이징에 오기 전부터 시작됐다.
    베이징행을 결심한 것은 이직하고 와이프가 있는 고향으로 내려간 지 만으로 6년이 넘었을 때였다.
    전주에 내려오면서 주말 부부 생활을 청산하고, 애들도 둘이나 낳고, 그간 고생하신 부모님도 건사하고 모든 생활은 안정을 찾았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생활. 마치 꿈만 같았다. 그러다 긴장이 좀 풀렸는지 몸이 심하게 아팠다. 하지만 이전에 고생에 비하면 수술 한 번 하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편안한 생활에 익숙해져 갈 때쯤 뭔지 모를 무력감이 찾아왔다.
    알 수 없는 불안감. 가끔 이유 모를 불안증에 시달리고, 공황장애 비슷한 증상도 나타났다.
    전주 생활이 문제였던 것도 아닌데 그냥 무작정 떠나야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베이징행을 결심했다.
    베이징에 와서도 성실히 일했고, 나름대로 자리도 잘 잡았다. 하지만 여전히 그 공허함만은 마음속에 가득했다.
    뭔가 탈출구가 필요했다.
    그래 저 두 사람처럼 써 보자. 남한테 보여주는 이야기 말고, 내 이야기를 한번 써보자. 속에 있는 이야기를 다 털어내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뭐라도 되겠지.
    그래서 썼다. 그냥 미친 듯이 쓰고, 또 쓰고, 페북이라는 공간에 감정을 폭발시켰다.
    내 진짜 이야기를 하자 이상하게도 사람들이 한명 두명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댓글 창에서 주고받는 실없는 말들은 나를 웃게 하고, 우스갯소리 같은 내 포스팅에 사람들도 웃었다.
    오프라인에서 느꼈던 따순 마음과는 또 다른 따뜻한 감정을 느끼게 됐다. 그러면서 묘하게 치유가 되는 느낌을 받았다.
    얼굴도 모르는 랜선 친구들은 새까맣게 어린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고, 공감해 주고, 때론 대신 울어주기도 했다.
    처음엔 신변잡기에 실없는 농이 섞인 글들을 써 댔다. 어쩌다 보니 조심스럽게 내 이야기를 꺼내 놓게 됐다.
    조금씩, 조금씩 글에 섞여 들어간 내 이야기는 내 몸에 있는 우울감도 함께 데려가 몸 밖으로 흘려보냈다.
    아. 이게 치유구나. 어쩌면 나는 그냥 가슴 속에 쌓아 놓았던 이야기들이 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저 밝은 아이라는 가면을 쓰고 혼자 꽁꽁 싸매고, 짊어지고, 숨기고, 버티느라 짐을 나눠서 지는 법을 잊어버렸었구나.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러면서 가슴 속에 맺힌 응어리가 하나둘 흩어져 갔다. 이제 생각해보니 17살 이후로 20년 동안 어깨에서 짐을 내려놓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래. 그 정도면 1년도 힘들 텐데 지칠 만도 하지. 근원 모를 우울감은 어쩌면 새하얗게 타버린 내 정신과 육체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북에 글을 정신없이 휘갈겨 놓고 보니 그곳에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았다. 아니 생각보다 너무 많아서 놀랐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3줄, 8매 법칙이 있다. 리드(첫줄) 포함 처음 3줄로 독자를 눈을 사로잡지 못하면 그 기사는 읽히지 않는다. 또 원고지 8매(1600자)가 넘어가면 독자의 인내심은 바닥난다는 뜻이다.
    하지만 페북에서 만난 페친들은 4000자는 물론 5000자가 넘는 내 잡설을 꼼꼼히 읽고, 위로해주고, 오히려 나를 보고 감사하다는 말까지 한다.
    내가 뭐라고. 참 어려서부터 지지리도 운은 없지만, 반대로 지지리도 인복은 많았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됐다.
    나는 살면서 많은 은인을 만났다. 페친들도 그에 못지않은 나의 은인이다.
    은인들 덕분에 우울감도 차츰 좋아지고 있다. 여전히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이전보다 훨씬 기운이 난다. 안락함에 무뎌져 가던 감사의 마음도 다시금 살아나고 있다.
    다시 기운 내서 살아가자.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힘이 되자. 결정적인 순간에 배신하지 말자. 아자. 아자. 먹자. 화이팅.

#단상 #페친님들게감사 #무한감사 #핵감사 #사람하나살렸네

    ++지극히 현실주의자였던 내가 이렇게 랜선 세상에서 위로를 받을지는 몰랐습니다. 마치 다시 태어난 것마냥 하루하루가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글재주가 변변찮아 의미가 잘 전달됐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엄청 신나 있고, 감사하고, 기쁘고, 얼마나 다행인 마음이 드는지 모릅니다. 우연히 맺게 된 인연이지만, 앞으로도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겠습니다. 그리고 엄청 긴 글 매일 매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화이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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