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보헤미안 랩소디
'아. 그래서였구나. 그래서 그런 거였구나'
어제 오전 5시30분에 목포에서부터 시작된 강행군은 대학교 4인방(리스완 빠지고, 낙타합류) 회동을 끝으로 다음날 0시3분에 끝이 났다.
엄청난 강행군이었지만 나에게는 한국 일정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일정이 하나 남아 있었다.
바로 '보헤미안 랩소디'
그래. 어짜피 죽으면 썩어질 몸뚱이 피곤해도 보러 가자. 그렇게 나, 천재 소년 J군과 그의 아내 등 세 명은 CGV역곡점 5관 E열 7, 8, 10석에 나란히 또 띄엄하게 앉았다.
1986년 윔블리 실황 장면으로 시작된 영화는 수미상관으로 윔블리 실황 장면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이전에도 <우락부락한 로커가 통키타를 잡는 순간에 대한 단상>에서 썼지만 나는 대학시절 퀸의 윔블리 콘서트 실황 영상을 메탈리카 2006년 내한 영상과 함께 공부할 때 항시 들었다.
솔직히 영화를 보고 너무 감동받았던 이유는 윔블리 공연 당시 프레디 횽이 어떤 상황인지 퀸의 곡들에 어떤 가사가 담겼는지 그때나 관람 직전이나 모르는 상태에서 영화를 봤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는 윔블리 실황 영상이 라이브 에이드 공연이 아니라 퀸 콘서트의 일부분을 자른 20분짜리 영상으로 여태껏 알고 있었다.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마지막 콘서트 영상 20분을 실제 실황 때와 똑같이 재현한 부분이었다. 수백번도 더 본 영상이었기 때문에 프레디 횽의 동작 하나하나를 그대로 재현해 낸 감독과 배우의 노력이 느껴져 더 짠했다.
그러나 내가 가장 감동 받은 부분은 따로 있다. 영화 초반에 프레디 횽이 퀸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장면이다.
"소외된 존재 그리고 모두를 위한 음악을 하는 밴드. 그게 퀸이다."
성소수자라는 정체성 혼란과 에이즈 환자라는 육체적 곧통을 이겨내고 긍정의 에너지를 뿜어내는 프레디 횽의 모습을 보면서 '아. 그래서 내가 그렇게도 윔블리 영상을 봤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메탈리카 실황에서 퀸의 영상으로 공부요의 비중을 높이던 시기는 삶에 지친 엄마의 읍소에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고 굉장히 실의에 빠져서 취업 준비를 할 때였다.
그때까지 손 놓고 있던 HSK, 토익, 한자, 컴퓨터, 토픽, 플렉스 등등등 스펙 과잉 시대에 걸맞는 스펙을 갖추기 위해 밤낮없이 도서관에서 하기 싫은 공부를 하며 살던 시절이었다.
나는 그렇게 영상을 보면서도 가사를 찾아본 적도 없이 그냥 제목을 보고 대충 노래 내용을 짐작했고, 흥이 나는 멜로디와 브라이언의 기타 연주가 좋아 영상을 무한 반복하며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프레디 횽의 무대를 완전히 장악하는 미친듯한 그 퍼포먼스가 좋았다.
그런데 그 노래에 이런 엄청난 고뇌와 아픔, 열정이라는 뒷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니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겠나.
영화를 보는 내내 막막하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그렇다고 슬프거나 눈물이 나진 않았다. 다만, 모두를 위해 노래하는 프레디 횽에 대한 감사가 울렁울렁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가만히 밀려 올라 왔다.
프레디 횽의 저 마음이 너무나 힘들었던 대학교 4학년생 나에게 큰 위로가 됐구나. 그래서 그렇게 파일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나는 윔블리 영상을 봤었구나. 라고 생각하니 프레디 횽은 노래로 모두를 위로하겠다는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고 하늘나라로 갔단 생각이 들었다.
영화감상 전후로 Joyce Park 님의 영화 리뷰를 보면서 천재가 짊어져야 하는 짐의 무게와 자신의 살을 패고 패고 또 패내서 나같은 무지렁이가 있는 세상을 향해 희망의 빛을 쏟아낸다는 게 어떤 의민지 다시 되새겨 보게 됐다.
프레디 횽. 횽이 동아시아 조선반도에 있는 한국의 취업준비생까지 생각하며 노래를 부르지는 않았겠지만, 진짜 힘든 시기 큰 위로가 됐습니다. 그 은혜는 저도 꼭 저만의 방식으로 다른 이웃들에게 갚아 나갈게요. 그때도 멋있었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더 멋진 프레디 횽. 편히 쉬세요.
#단상 #프레디머큐리 #보헤미안랩소디 #마마~우우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