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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Jul 13. 2020

<명차열전> 노반장, 이우 그리고 푸젠 야생 백차

<명차열전> 노반장, 이우 그리고 푸젠 야생 백차

    '어떤 차가 좋은 차인가요?', '얼마짜리 차까지 마셔봤나요?'

    차를 좋아한다고 하면 자주 듣는 질문이다.

    사실 한국에서도 누구나 이름만 말하면 아는 라오반장(老班章.노반장), 빙다오(冰岛.빙도), 이우(易武,역무) 같은 차를 일부러 피한 것은 아니다.

    일단 구하기도 어렵고, 처음 차를 배운 차 선생님이 특별히 그런 걸 따지지도 않았다.

    또 처음 접한 차가 소규모 차장인 도연당이였던 탓도 있다.

    그 뒤로 몇 번 중요한 자리에서 유명한 차를 대접받아 봤는데 차 맛을 제대로 모르니 '와, 역시 노반장!'하는 분위기에 휩쓸려 '오.. 좋긴 좋네. 역시'하며 받아 마셨다.

    특히나 차에 한창 빠졌을 때 몸 상태가 별로여선지 보이 생차가 입에 잘 맞지 않았다.

    잘못 마시면 하루종일 나른하고, 몸에 기운이 빠져서 자연스레 피하게 됐다.

    이제 좀 차에 대해 알 듯 말 듯하니 급 저런 차들이 궁금해졌다.

    이유는 마셔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주변에서 하도 마셔봤느냐고 물어보는 것도 있고, 차를 소개할 때 이건 ㅇㅇㅇ보다 향이 어떻고, 맛은 어떻고, 회감은 어떻습니다. 말을 해줘야 할 필요도 있어서다.

    그래서 노반장과 이우를 차 선생님과 도연당 실장님께 부탁해 마셔봤다.

    결론적으로 맛은 아주 좋았다.

    기운이 좋은 것은 물론이고, 익히 들은 대로 명차였다. 아쉬운 것은 쉽게 구할 수가 없고, 짝퉁이 넘쳐 난다는 것이다.

    두 차 모두 윈난성 시솽반나(西双版纳) 남쪽에 자리한 고급 명차 산지에서 나는 차로, 이름을 차가 나는 산봉우리에서 따온 차다.

    보이차 중에서도 찻잎을 그러 모아 병을 찍는 차장이 아니라 산지의 이름을 달고 나오는 차들이 명차다. 다이(大益.대익)이나 멍하이(勐海.맹해) 같이 공장화한 대규모 차장에서 이름 없이 나오는 차들보다는 프리미엄급 차라 할 수 있다.

    노반장(2009.도연당)은 보이차의 황제라 불리는 명성답게 기운이 강하고, 맛도 강인했다. 뒤에 돌아치는 회감도 한참을 텀을 두고 올라와 마시면서 약간 당황스럽기도 했다.

    엽저를 봐도 잎들이 정갈하고, 오래 보관됐는데도 병의 상태도 좋았다.

    그리고 꼬릿한 그 향이 특유의 시그니처처럼 잔에 오래도록 남아 있는 점도 개인적으로는 좋았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내포성.

    10여 회를 우려도 탕색이 유지되고, 향이 약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잔향이 웬만한 보이차만큼 남아 있었다.

    회감(回甘) 역시 재밌는 경험이었다.

    첫 잔을 마셨을 때 곧바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서너 잔쯤 마셨을 때 훅 치고 올라오는 것이 뭐랄까…약간 신기하다고 할까.

    노반장이 강렬하다고 평가를 받는 만큼 처음에 입에 머금으면 쓴맛이 꽤 강한 편인데 회감 역시 쓴맛만큼 강했다. 그리고 상당히 오랜 시간 지속하면서 길게 회감이 돌았다.    

노반장의 찻잎


    이우(2011.도연당) 역시 황후의 차라는 별명처럼 상당히 좋은 차였다.

    노반장처럼 훅 치고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차였다. 숙차에 익숙한 내 입장에서는 노반장보다 이우 쪽이 받아들이기는 좋았다.

    차 초심자들도 노반장보다는 이우 쪽이 좀 더 쉽게 다가올 것 같았다.

    이우는 품이 넓은 차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여백이 있고, 여러 사람의 기호를 품을 수 있다는 뜻일 거다.

    첫 잔을 받아들고 향을 맡았는데 노반장에서 나는 꼬릿한 향이 아닌 향긋한 느낌이 들었다. 약간 화~한 계피향 같기도 하고, 화려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차를 한입 마셔보니 앞서 노반장을 마신 뒤라 그런지 입을 개워냈는데도 약간 맹탕을 먹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첫 잔을 지나 두 잔, 석 잔 마시다 보니 기분 좋은 향긋한 향과 함께 슬슬 차 맛도 무게가 실렸다. 이우는 탕색도 독특했는데 공도배에 따라 놓은 것을 조명에 비춰보니 윤기가 흘렀다.

    좋은 차는 탕색에 윤기가 흐른다더니 명불허전이었다.

    회감은 노반장 못지않게 강했다. 차를 마시고 팽주(차를 우리는 사람)가 다음 차가 우리는 동안 혀에 찻물이 남아 있지 않아도 지속해서 단맛이 치고 올라왔다.

    대신 노반장보다는 첫 잔 이후 회감이 느껴지는 텀이 꽤 길었다. 어떤 사람은 차를 다 마시고 집에 돌아갈 때 느끼기도 한다고도 한다.    


    노반장과 이우를 제대로 각잡고 마셔 본 결과 두 차 모두 훌륭한 차였다. 다만 지속해서 이 정도 퀄리티의 노반장과 이우를 구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솔직히 그 수 많은 노반장의 이름을 단 보이차 홍수 속에서 진주를 찾아낼 자신은 없다.

    실제로 노반장 같은 차를 만들 때 옆에서 눈을 부릅뜨고 지켰다가 들고 와도 한순간만 정신을 놓으면 얼마든지 바꿔치기가 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귀한 자리에서 우연히 이런 차를 만나는 것이 아니면 굳이 명차를 수집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보다는 푸젠에서 온 야생 백차 같은 차를 찾아 마시는 것이 훨씬 차 생활에 이롭고, 즐거울 것 같다.

    이 차는 도연당 실장님의 처가인 푸젠성 남쪽 장저우(漳州) 핑허(平和) 현에서 온 차다.

    실장님의 장인어른께서 쉬엄쉬엄 푸젠과 광둥 경계에 있는 산에 오르시면서 한 잎 한 잎 야생 바이야치란(白芽奇兰) 차나무 잎을 따서 만든 백차다.

    어르신이 욕심 없이 발길 닿는 대로 다니며 따기도 했고, 야생차 또는 야방(야생에 방치된 차나무)차 나무에서 딴 찻잎을 썼기 때문에 세상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맛과 정성이 담겨 있다.

    특히 장인어른의 고향의 차 제조법에 따라 아침에 해가 들 때 잎을 겹치지 않게 널어서 말리고, 한낮에는 다시 찻잎을 거둬서 그늘에 말리고, 오후 3시쯤이 되면 다시 지는 해를 쫴서 말리는 정성을 들여 품이 많이 팔아 만든 차다.

    차를 우려 보면 향이 정말 향긋하고, 꽃 내음과 과실 향이 차에 듬뿍 담겨 있다.

    회감도 좋고, 고수차에서 따서 그런지 백차인데도 8번 이상 우려도 탕색과 맛이 유지된다.

    앞의 두 차도 좋지만, 나에게 어떤 차를 선택할 거냐고 묻는다면 이 이름 없는 푸젠의 어느 어르신이 만든 백차를 고를 것 같다.

#명차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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