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코로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베이징에 남아 기러기 아빠 생활을 시작한 필자의 일상과 감상을 가감 없이 적어 볼까 합니다.
<나는 기러기다> 1화. 그들은 왜 기러기가 됐나
기러기 생활 1일차.
크게 달라질 거 없는 생활이지만, 뭔가 느낌이 다르다.
괜스레 처연해졌달까?
평소에 밥 잘 차려 먹는 주제에 괜히 아침에 시리얼을 꺼내 먹었다. 안 하던 짓을 하며 청승을 떠는 내 모습이 웃겨 한참을 웃었다.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에서 한쪽 부모가 기러기 생활을 하는 가족들을 보면 회의적이었다.
'아니. 가족끼리 붙어 있어야지 저게 뭐야'라는 대화를 록수와 주고받으며 홀로 남겨진 쪽을 안쓰러움 반 힐난 반 섞인 말들로 덮어 씌웠다.
그런데 막상 우리가 그 상황이 되니 기러기 가족들이 이해가 됐다.
역시 사람은 똑같은 상황에 닥쳐봐야 남의 처지를 이해하는 모양이다.
우리의 결정은 전적으로 아이들을 위한 것이었다. 평소였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선택인데 코로나가 복병이었다.
어떤 것에도 호언장담은 하지 말라던 옛 선현들의 가르침이 새삼 다시 들렸다.
우리 식구는 매일 집에만 들어앉아 지지고 볶는 생활에 지쳐 갔다. 작년 12월 말부터 7개월을 꽉꽉 채운 감옥 아닌 감옥생활.
어른들이야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이해되지만, 아이들한테는 하루아침에 온 세상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토끼 굴 속 세상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나둘 떠나는 친구들도, 집에서 아이패드로 배우는 공부도, 갈수록 날카로워져 가는 신경도 아이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먼저 말을 꺼낸 건 록수였다.
내년이면 학교에 가야 하는 단이가 걱정이라고 했다. 애들 교육과 관련해 중요한 결정을 맡아하는 록수의 의견을 잘 경청했다.
일리가 있는 의견이었고, 고민해 보자고 했다.
사실 호수가 둘째였더라면 우리는 기러기 생활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호수와 달리 단이는 예체능보다는 공부 쪽에 재능이 있었다.
문제는 나이가 어리다 보니 '언텍트' 교육방식을 쫓아가기 어려웠다. 엄마 입장에서는 조급해 질만 하겠다고 생각했다.
한국보다 훨씬 엄격한 통제가 이뤄지는 베이징에서 할 수 있는 교육은 주로 개인 지도가 가능한 예체능이었다. 특히 단이 나잇대를 위한 학습용 교육 프로그램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러던 차에 휴원 했던 단이네 유치원이 코로나 여파에 폐업하게 됐다.
결정타였다. 단이는 이제 꼼짝없이 앞으로 8개월을 더해 내년 3월 입학 때까지 1년 3개월을 집에서 보내게 됐다.
'그래. 가자', '그래. 가라'
록수와 나는 그렇게 결심을 실행으로 옮겼다.
남겨진 쪽이나 홀로 애들을 떠맡는 쪽이나 부담이 커졌다.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체력적으로 현재보다 두 배의 비용이 들어야 했다.
그나마 부산스러운 연년생 두 아들을 맡은 록수보다 외로움과 싸워야 하는 내 쪽이 좀 더 나았다.
현재 가장 큰 변화는 내 소비 패턴이다.
어디에 쓰던지 돈을 꺼내 들 때면 '아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에 스친다.
여기서 줄여 줘야 저기서 조금 편하다는 가언명령이 마음 한편에 자리 잡았다.
이 명령은 생각보다 큰 것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