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무얼 바라 다만, 홀로 침전하는가(feat. 시진핑)
내가 베이징에 부임한 게 2017년 1월이다.
한국 사람들은 별로 관심 없겠지만, 2017년은 중국에 특히 중국 지도체계에 있어서 큰 의미가 있는 해였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2017년 가을 19차 당대회를 통해 집권 2기의 청사진을 제시했고, 장기집권의 디딤돌을 마련했다.
이제와 돌이켜 보면 내가 부임한 뒤로 '중국은 이런 관례가 있다'라는 명제는 하나도 들어맞지 않았다.
일단 다음 후계자가 지명되야할 19차 당대회에서는 시 주석의 야무진 집권 2기 통치 계획과 미국을 뛰어넘겠다는 당찬 포부만 발표됐다.
다음 해에는 중국 공산당 당헌 당규에서 임기 제한 조항이 빠졌고, 시 주석과 젊어서부터 동고동락한 왕치산(王岐山) 국가부주석이 중국 지도자들의 7상8하(67세 이하는 유임, 68세는 은퇴) 묵계를 깨고 집권 2기에도 부주석 자리를 꿰찼다.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이 설계해놓은 중국의 독재 견제 시스템은 그렇게 유명무실해졌다.
그 밖에도 시 주석은 아주 소소한 것부터 꽤 굵직한 통치 관행까지 모두 깨뜨려 나갔다.
내가 이렇게 속속들이 그의 행보를 꿰차고 있는 것은 중요 정치 행사 때 과거 사례를 바탕으로 기사를 준비하는 기자들의 습성 때문이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집권 2기 시진핑 정부는 대부분 정치 행사 관행을 깼던 것 같다.
최근에도 시 주석은 관행 하나를 깼다.
중국 전현직 지도자들과 각 분야 전문가들은 매년 여름휴가철 휴양지인 베이다이허(北戴河)에 모여 국가 대사나 정책 방향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다.
이 회의가 다른 행사와 다른 점은 전직 원로들이 참여해 현직 지도자의 통치 상황을 논한다는 점이다.
사실 말이 원로의 의견을 들어본다는 것이지 실상은 '꾸중'을 듣는 것이다.
흔히 사회에서 꼰대라고 무시를 당하는 원로들이지만, 연륜이란 게 무서운 게 전체 판을 읽는 것은 현직들보다 훨씬 뛰어나다.
레닌의 민주집중제를 시행하는 중국 같은 경우 최고지도자에게 권력이 집중되기 쉽기 때문에 이런 견제 장치들이 매우 중요하다.
베이다이허 회의가 개최되는 기간에는 매일 빠지지 않고 나오는 중국 관영매체의 최고 지도부 동향 보도가 중단된다.
그렇기 때문에 비공식 회의임에도 모두가 '아, 베이다이허 회의가 시작됐구나'하고 알 수 있다.
그러나 올해는 베이다이허 회의가 열렸는지 안 열렸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예년과 가장 달랐던 것은 지도부의 동향 보도가 사라지고, 뒤이어 나오는 전문가 좌담회 소식이 발표되지 않았다.
베이다이허 회의에는 전현직 간부뿐 아니라 각 분야 전문가들도 초청돼 자신의 의견을 지도부에 전달한다.
베이다이허 회의와 관련해서는 외부에 보도되는 유일한 행사인데 이 보도가 없으니 회의가 열렸는지 안 열렸는지 알 수가 없었다.
또 한 가지 다른 점은 회의 기간에도 중국 지도부의 동정 보도가 계속 이어졌다.
중국 최고 지도자가 원로들의 고견을 듣는 회의 기간에 다른 행보를 보이는 것은 전에는 없던 현상이다.
시 주석은 왜 이런 '파격적인' 행보를 하는 것일까?
내가 생각하는 동기는 딱 하나다.
'예방주사'
중국 정치 관례에 비춰 보면 시 주석은 2022년 20차 당대회가 열리면 사실상 후계자에게 권력을 양도하고 물러나야 한다.
지금까지 행보를 보면 시 주석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그럼에도 막상 시진핑 3기가 시작됐을 때 중국 사회에서 어떤 반응이 나올지는 그 또한 두려울 것이다.
톈안먼 광장에 횃불이 들불처럼 번지지 말란 법도 없다.
그래서 그는 꾸준히 중국 인민과 사회, 당에 예방주사를 맞히고 있다.
계속해서 관례를 깨면서 시 주석의 장기 집권 플랜이 시작됐을 때 중국 사회가 최소한의 충격을 받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중국에 와서 4년째 그를 관찰해본 결과 그의 행동 하나하나는 모두 여기에 맞춰져 있다.
그는 장기 집권을 바라, 다만 홀로 침전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