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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May 21. 2020

패왕별희-부평초 같은 인민의 삶

패왕별희-부평초 같은 인민의 삶

    역사의 도도한 흐름 앞에 개인의 삶은 존중받는가.
    도도한 흐름 속에서라면 개인의 삶이 존중받을 실낱같은 희망이 있을지도 모른다.
    옹이진 바윗돌이나 낙차 큰 폭포를 지나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는 어떠한가.
    명작은 어느 시기에 감상하느냐에 따라 느끼는 바가 다르다는데 정말 어려서 아무 생각 없이 본 패왕별희와 대학 때 마지못해 본 패왕별희와 베이징에 살며 다시 본 패왕별희는 달랐다.
    중국의 대혼란기인 청 왕조가 무너진 북양군벌 시기부터 일제 강점기, 중화민국, 중화인민공화국까지 격동의 시기를 배경으로 삼은 패왕별희는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개인이 어떠한 삶을 살아가는지 경극 배우인 두 주인공을 통해 부연 설명 없이 보여준다.

    대학 시절 봤을 때는 비극적인 주인공들의 삶이 그저 안타까워 보였다.
    이번에는 중국인의 권력을 향한 무조건적인 순종과 지독하게도 타율적인 삶의 태도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
    감독이 의도한 대로, 또 관객들이 느끼는 대로 두 주인공은 대혼란기를 살아낸 중국인을 상징한다.
    그들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어떤 후과를 가져올지 혼란스러울 뿐이다.
    사랑하는 사형을 위해 일본군 앞에서 공연해야 하고, 그 공연으로 인해 반민족 행위 혐의를 받고,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국민당 권력자 앞에서 노래를 불러야 한다. 한숨 돌리는가 싶더니 이제는 무산계급을 위한 공연에 나서야 하고, 홍위병 앞에서 옛 기억을 더듬어 구(舊)사회의 과오를 신(新)사회의 질서에 맞춰 가족까지 부정하며 자아비판을 해야 한다.

    그야말로 역사라는 대하(大河) 위를 떠도는 부평초 같은 삶이다.
    순간의 도덕적 판단은 영원한 정의를 담보하지 못하고, 세상의 변화에 따라 정의와 불의의 냉온탕 오가듯 오간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제목을 잠시 변용하면 'Right now, Wrong after'인 셈이다.
    중국에서 3년 넘게 취재를 하면서 느꼈던 중국인에게 내재한 알 수 없는 공포심이 이건가 싶었다.
    역사의 풍파를 겪어 오면서 중국인의 DNA 속에는 이런 두려움이 깊게 새겨진 모양이다.
    '지금은 맞았지만, 나중에는 틀릴 수 있다'
    언제든 나는 틀린 사람이 돼 숙청당할 수 있다. 사회에서 배제될 수 있다. 내가 가진 것을 다 내놓아야 할 수 있다. 내 가족을 부정하고, 또 가족에게 부정당할 수 있다.

    이런 두려움은 개인을 체제에 순응하게 하고, 될 수 있으면 정치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생활 태도를 갖게 했다.
    중국 사회는 중국공산당이 그렇게 부르짖는 중국몽(中國夢)의 중국 발음대로 멍한 상태인 '중궈멍'이 됐다.
    어떤 정치적 행위도 나와 우리 가족을 지켜주지 못한다. 오직 통장에 찍힌 숫자만이 그나마 나와 가족, 친구를 잠시라도 보호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무산계급과 노동자를 대변하는 중국공산당이 통치하는 사회의 동력이 '자본'이 된 것이다.

    오늘부터 중국 최대 정치 행사인 양회가 시작된다.
    올해는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역병까지 뚫고 전국에서 인민 대표 5천여 명이 베이징에 모였다.
    서구식 정치 제도와 굳이 비교하자면 국회의원과 국가 자문위원들이다.
    국제사회에서 '거수기'라 손가락질받는 이들은 어쩌면 거수기 역할마저도 혹시나 지금은 맞고, 나중에 틀리면 어쩌나 하는 우려 속에 멍하니 수행하고 있는 건 아닐까.
    중국을 향한 비판의 활시위를 돌려 우리를 향해 보자. 크게 다른가?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다시 한번 질문을 머릿속에 떠올려 봤다.
    역사의 소용돌이 앞에 개인의 삶은 존중받을 수 있는가?
    안타깝게도 개인의 삶은 존중받을 수 없다.
    유일하게 존중받을 수 있는 것은 영화 속 쥐센(菊仙·공리)과 청뎨이(程蝶衣·장국영)처럼 삶을 끝마칠 수 있는 쓸쓸한 죽음의 선택뿐이다.
    오늘도 역사의 소용돌이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무사히 비켜가기를 간절히 기도해본다.
#패왕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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