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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Mar 13. 2020

코로나19가 준 선물-내가 재택근무를 자원한 이유

<코로나19가 준 선물-내가 재택근무를 자원한 이유>


    오늘로 한국에서 돌아온 가족들과 재택근무를 한 지 사흘째다.

    연년생 두 아들이 뛰어다니는 환경에서 일하고, 4인 가족이 먹을 요리를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그래도 첫날보다 이튿날이, 이튿날보다 사흘째가 업무 효율이 높아지긴 했다.

    사실 나는 재택근무를 하지 않아도 됐다.

    중국의 자가격리 규정에 따르면, 한국에서 온 가족들이 집으로 귀가해도 내가 출국한 적이 없고, 방과 화장실을 따로 쓰면 자가격리 대상에서 제외된다.

    뭔가 이상하지만 사실이다. 그래서 바깥출입이 가능해 식재료를 사러 마트에 가거나 택배를 받으러 아파트 정문에도 나갈 수 있다.

    재택근무를 시작하기 전 회사에서도 재택을 할지 출근할지 선택할 기회를 줬다.

    만약 출근을 택했다면 혹시 모를 감염에 대비해 마스크를 착용하고 내 방에서 혼자 지내며 일을 하면 됐다. 

    물론 혹시나 우리 가족 중 누군가 코로나19에 걸렸다면 나로 인해 회사 업무가 마비되는 리스크가 따르긴 한다.

    이런 사정도 있지만, 나는 처음부터 재택을 하길 원했다.


    내가 기자가 된 것은 2010년 말이었다.

    그때부터 10년 남짓되는 시간 동안 가족에게 할애한 내 시간은 퍼센티지로 따지면 10%나 될까 싶다.

    초임병 때는 말할 것도 없이 새벽 별 보기 운동을 하며 일찍 나갔다가 쏟아지는 당직에 취재원 관리에 밤 12시 이전에 집에 들어간 적이 손에 꼽을 정도다.

    실제로 첫째 호수가 18개월이 됐을 때 아내가 보여준 내 퇴근 기록 달력에는 1년 내내 주말 포함 6일만 집에서 저녁을 먹었을 정도다.

    처가에서 나와 분가를 하고 나서 둘째 단이가 태어났을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어찌나 바쁜 일이 그렇게 생기는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이제 생각해보면 내가 일을 쫓아다녔는지도 모르겠다.

    중국에 와서도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조금 한가할 때면 취재원 관리를 핑계로 바깥으로 돌았다.

    이런 원죄를 짊어진 나는 조금이라도 죄를 씻어 내고자 재택근무를 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코로나19가 아니면 언제 온 식구가 2주를 꼬박 붙어서 같이 요리도 하고, 장난도 치고, 낮잠도 잘 기회가 있을까. 또 아빠가 일하는 모습을 아이들한테 보여줄 기회가 있겠나 싶었다.

    가족들이 돌아오기 전에 조금 힘들더라도 될 수 있으면 직접 요리를 해 식구들을 먹이고, 아이들과도 대화를 많이 하겠다고 다짐했다.

    고작 사흘이 지났지만, 이 약속은 여하튼 잘 지켜지고 있다.

    누군가는 일도 하고, 요리까지 하는 나를 보고 '빙추'같다고 혀를 차기도 한다.

    그러나 여태껏 내가 가족을 두고 바깥으로 나돌았던 것을 생각하면 만 분의 일도 속죄가 되진 않을 거다.

    솔직히 말하면, 일하면서 끼니를 챙기고 또 끼니 사이에 아이들 간식을 먹이는 일은 내가 다니던 무지막지한 현장에 비해 그리 힘든 일은 아니다.

    생때같은 아이들이 차가운 바닷물 속에 가라앉아 차갑게 생을 마감했던 현장을 바라보며 기사를 쓰던 일이나 언제 올지 모르는 사람을 기다리며 칼바람에 미동조차 못 하고 10시간 넘게 서 있었던 기다림에 비하면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선택을 앞두고 문득 남을 위해서는 이런 일도 기꺼이 마다치 않는데 가족들을 위해서 이 정도 희생도 못 한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택근무가 시작되고 밤늦게 보던 드라마나 영화, 책은 보지 못하게 됐다.

    애들을 재우려고 누우면 어느새 같이 잠이 들어 버렸다.

    홀로 지내던 자유로운 시간이 그립냐고 묻는다면 정말 1도 아쉬운 마음이 없다. 

    뭐가 그리 좋은지 온종일 붙어 있어도 내 곁을 떠날 줄 모르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그저 행복이 이런 것인가 싶을 뿐이다.

    일하고 있으면 어느새 옆에 와서 참견하며 쫑알쫑알 대고, 어딘가에서 투닥거리는 소리가 나면 어김없이 달려와 미주알고주알 앞다퉈 이르는 모습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요리할 때면 부엌문이 닳도록 찾아와 종달새 새끼마냥 "나도 해볼래, 나도 해볼래" 지저귀는 게 여간 귀여운 게 아니다.

    아직도 재택근무가 열흘 하고도 하루가 더 남았다.

    내일은 무슨 요리를 해줄까? 무슨 간식을 만들어 줄까? 생각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코로나19가 물러가고 재택근무가 끝나더라도 내년 이맘때 즘이면 가족들과 함께 한 쉼표 같은 14일의 추억이 다시 새록새록 피어오를 게다.

#코로나가준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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