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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Feb 25. 2020

우리는 왜 형보다 아우에게 잘할까

우리는 왜 형보다 아우에게 잘할까


'형만 한 아우 없다'
학교생활이든 사회생활이든 보통 형들보다 아우들에게 관용적인 것 같다.
흔히 말하는 '가오다시' 때문만은 아닌 것 같은데 이상하게 형들보다 동생들에게 더 베풀게 된다.
사실 현실적인 것만 따지면 형들한테 잘하는 게 훨씬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
후배가 선배를 끌어주는 것은 어딜 가나 위계질서가 빡빡히 들어찬 한국 사회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대부분 한국 사람들은 동생들에게 베푸는 데 익숙하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저 흡혈귀 같이 새파란 놈들을 챙겨야 한다는 정언명령이 든 DNA가 우리 몸속에 박혀 있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면 인의예지, 측은지심 얄리얄리 얄라성 같은 조선 반도 사대부의 전통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뼛 속 깊이 자리하고 있어서 저 미혹하고 어린 아해들을 불쌍하게 여기게 된 걸까.
정말 알 수가 없는 일이다.
형님들을 모실 때는 주저하게 되는 일들이 동생들에게는 정말 아무렇지 않게 스스럼없이 행해지는 까닭은 무엇인가.
밥을 살 때나 술을 살 때나 집에 초대할 때나 동생들을 대하는 마음과 형들을 대하는 마음의 격차는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둘을 대하는 마음에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두 쪽 다 너무나 나에겐 좋은 사람들이고, 같이 있으면 즐겁기 그지없는데도 불구하고 항상 씀씀이에서 나는 차이는 매울 수 없다.
특히나 윗사람을 스스럼없이 대하고, 잘 챙기는 것이 몸에 밴 편인데도 동생들에게는 훨씬 관용적이게 된다.
뭐든 더 주고 싶고, 도와주고 싶고, 챙겨주고 싶은 이 마음을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그래서 한번은 친한 형에게 물어봤다.
"형, 이거 왜 그러는 거야?"
이때 돌아온 대답이 내 마음을 쳤다.
"네가 받은 게 많아서 그렇지 임마. 그니까 형들한테 잘해"
그제야 조금 궁금증이 풀렸다.
나도 모르게 내 머릿속에는 내가 챙겨주면 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형들은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홀로 굳건히 일어서는 사람으로 각인돼 있었던 셈이다.
내가 뭘 더 하고, 안 하고 따질 것 없이 그저 그곳에 든든히 서 있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그래서 내 마음의 방향이 늘상 아래로 향해 있었던 모양이다.
'내리사랑'은 혈육 지간 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통하는 진리인가 보다.
이제라도 가끔은 동생들을 챙기는 것만큼 형들을 대해줘야겠다.
요즘 이런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달리 그런 것이 아니라 나도 점점 형보다 동생이 주변에 늘면서 외롭다는 생각을 이따금 하게 된다. 그럴 때 내 인생의 큰 기둥이던 형들을 떠올려 본다.
이 세상에 자연히 그리한 것은 없다.
세상에 형만 한 아우 없다는데 더 늦기 전에 가끔은 형들을 챙기는 동생이 돼 봐야겠다
형들 그간 잘 챙겨 줘서 감사합니다.
#형한테잘해이것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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