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배는 그렇게 깊이깊이 가라앉아서야 쉴 수 있었습니다

그림책 '늙은 배 이야기', 그리고 아들의 그림

by 베로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그림책 카페에서, 낯익은 느낌의 그림책이 눈에 띄었다.

몇 달 전 일곱 살 아들이 그렸던 그 그림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곱고 아름다워 더욱 슬픈 노을 진 하늘 색, 잔잔하게만 보이는 바다 위에 홀로 떠 있는 늙은 배.






사실 아들의 그림 주제는, 스포츠 중에서 하나를 선택한 '수영'이었다.


평소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득 품고 있는 아이 었고, 이번에도 아들에게는 스포츠라는 주제가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아들이 설명한 그림의 내용은 이러했다.


'바다 위를 지나가던 배가 무엇인가에 부딪혀서 창고에 구멍이 났다. 그래서 바닷물이 배 안으로 들어오고 있지만, 다행히 창고에만 물이 차서 더 이상 가라앉지는 않는다. 그 배 옆으로 노란색 옷을 입은 내가 헤엄치고 있다.
그리고 내 앞에는 노을 진 하늘 위로 올라가는(승천하는) 초록색 용이 나타났다. 하늘 위에는 사람들을 많이 태울 수 있는 커다란 비행기가 지나가고 있다.'


아들은 만삭의 뱃속에 있었을 때라, 정작 그 '늙은 배'에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모른다. 이후로도 민망하지만 뉴스 한 번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아이라, 그 배를 떠올릴 이유가 없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들이 그린 바다는 그때의 바다와 너무나도 닮아 있어 나와 남편은 무척이나 놀랐었다.


그림만으로도 난 그때로 돌아가 잠시 멈추었다. 아들의 그림 이야기를 듣고 나선 슬펐고 두려워졌었다. 당시 뱃속에 있었던 아들이 그때의 일을 보고 듣고 느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몹시 슬프고 무서웠었다. 뱃속의 아이를 생각하며 참는다 참는다 했지만, 많이 울었었다. 이 와중에도 내 아이의 안위를 생각하며 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려 하는 내가 이기적으로 느껴졌었다. 그들에게 미안했고 몹시 괴로웠다.


하지만 아들의 그림은 슬프지 않았다. 끝내 배는 가라앉지 않았고, 사람들을 태우기 위해 커다란 비행기가 도착했다. 그리고 아들은 유유히 그 옆을 헤엄치며 지나간다. 해가 질 무렵, 여느 때보다 일찍 나온 달과 별이 반짝이는 노을 진 하늘은 아름답기만 하다.


그래서 더더욱 슬프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들이 책을 읽고선 물었다.


"엄마, 너무 감동적이야 (아들이 평소 뜻하는 표현에 의하면 '슬프다'). 배가 너무 불쌍해.

이 늙은 배 진짜 있었어요?"





늙은 배는 그렇게 깊이깊이 가라앉아서야 쉴 수 있었습니다.


- '늙은 배 이야기', 방글 지음, 책고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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