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자가 될 필요는 없어

<내 아이는 생각이 너무 많아> 서평

by 베로

지나고 보면 지용이는 어렸을 적 정말 키우기 쉬운 순한 아이였다.


모유와 분유를 가리지 않았고, 엄마가 만든 서툰 이유식도 잘 먹고, 6개월이 지나면서부터 여섯시간 이상씩은 통잠을 잤었고, 알아서 젖병도 떼주었었다.


다들 부러워하는 순해보이는 아이였지만, 우리에게는 또다른 힘든 순간들이 있었다. 바로 지용이의 너무나도 민감한 감수성과 감정몰입, 과다한 상상력으로 인해 일어나는 일들이였다.


두돌 쯤 이였나, 난 그 때의 모습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텔레비전에서 '로보카폴리'를 보다가, 버스가 절벽에 아슬아슬 매달린 장면이였다. 그 때 갑자기 지용이가 "안돼요, 도와줘요!"라며 펑펑 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너무 귀여워서 웃으며 달래주었었는데, 당시 지용이는 정말 웃을 수 없는 상황이였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이후에도 이러한 상황들은 반복되었다.


일곱살이 된 지금까지도, 기승전결이 있는 20분 이상의 만화영화를 보는 중에 지용이는 '승'이 시작되자마 눈을 감고 귀를 막고 나에게 달려오기 일쑤였고, 그렇지 않으면 제발 꺼달라며 울먹였다. 그런 오빠의 모습에 지안이는 어리둥절 할 뿐이였다.


한번은 할머니께서 지용이와 함께 놀다가, "지용이는 좋겠다, 이렇게 재미있는 장난감들이 많아서. 할머니는 어렸을 때 이런 장난감이 한개도 없었는데."라며 건넨 말에, 지용이는 "할머니... 너무 불쌍해."라며 또 울먹이기 시작했다.


모두 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지용이의 이러한 모습들은 엄마인 나를 당황시켰고, 이 아이가 앞으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지가 걱정되기 시작하면서 답답한 마음에 "대체 뭐가 슬픈거니."라며 한숨을 토해낼 때가 많았다.


지용이는 다른 사람 뿐만 아니라, 책 속의 동물, 사물들에서도 감정을 과도하게 이입하여 자신의 감정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감정들로 인해 지치고 때로는 아파하는 험난한 고초를 겪고 있는 아이였다.


이러한 몰입과 불안, 과도하게 퍼져나가는 상상력은 여러 상황들에도 적용이 되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고, 완벽하게 하고자 불필요한 손길을 더하고, 주변의 분위기에 따라 별일 아닌 일에도 눈코입 표정이 일그러지거나 금세 흥분을 할 때가 있다.


그래서 본인은 온갖 감정들과 생각들로 피곤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지용이는 너무나도 배려심 깊고 착하고 모범적인 아이이다.


반면 지용이의 그러한 감수성과 감정몰입은 그림을 그릴때나, 책을 읽을 때, 음악을 들을 때 등 예술이나 창의적인 활동을 할 때는 더할나위 없이 빛을 발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고 느낄 수 없는 것들을 지용이는 경험할 수 있기에, 지용이의 삶은 그 누구의 것보다 풍요로울 것이다. '나 자신'으로 살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진다면 말이다.




이러한 성향의 아이들을 이 책에서는 '정신적 과잉 활동인' 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지용이는 쉽게 감정 몰입이 되고, 민감한 감수성, 공감각 - 음악에서 냄새를 느끼고, 이미지에서 촉감을 느끼는 등 - 을 자주 사용하여 말한다. 또한 이 책에서 말하는 공백불안 - 지루함과 공허함을 견디기 힘들어하고 불안감을 느낌 - 을 경험하고 있는 듯 했다.


이러한 아이들이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으며 적응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작가는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자신의 이러한 특성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주는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파이프와 깔대기'의 비유가 정말 기가 막히다.


"사람들은 대부분 삶을 이렇게 보고 있단다." 아이에게 종이 파이프를 망원경처럼 눈에다 대고 보라고 한다....... 라디에이터는 전체가 아닌 일부만 보인다. 그 후, 종이를 다시 펼쳤다가 커다란 깔때기 모양으로 말아서 아이에게 건넨다."이제 아까 그 사물들을 다시 한번 보렴." 짠, 신기한 일이 일어난다. 눈에 갖다 댄 깔때기 구멍의 지름이 아까 파이프 구멍의 지름보다 작은데도 시야는 훨씬 넓어졌다. 다탁의 전체모양, 라디에이터의 전체 모양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아이에게 이렇게 설명한다."사람들이 가끔 너를 이해 못하는 이유도 이런 거란다."


이러한 적절한 설명의 기술만으로도 아이들은 스스로를 부적절하다고 느끼는 것이 아닌, 남들이 가지지 못한 특별한 능력을 가진 존재로 인식할 수 있으며, 불안을 감소시켜 줄 수 있다.


또한 아이들에게 필요한 일정한 틀과 제한을 통해, 좀더 자연스럽고 적응적으로 일상을 보낼 수 있으며 그러한 구체적인 방법들도 배워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지용이의 경우, 그 힘든 '구원자'의 역할을 끊게 해주는 것이 필요했다.


"다른 사람의 감정은 그 사람만이 해결할 수 있어, 너도 다른 사람이 너의 기분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좋을까?"


물론 정신적과잉활동인이라고 해서 모두 다 같은 양상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또한 지용이도 정말 정신적과잉활동인일지 아닐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이름이 없어도, 나는 예전보다 지용이의 말과 행동의 의미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그것들을 더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또한 남모르는 고충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의 눈에 유약하고 부족한 점들로 보였던 지용이의 모습들이, 알고보니 장차 귀한 보석이 될 원석이였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의 감정의 구원자가 될 필요가 없다는 것, 감정이라는 것이 혹독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참으로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것, 그것을 지용이가 느낄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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