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때 용돈을 벌어보겠다고 몇 가지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그중 베이커리나 오믈렛을 파는 식당도 있었다. 아침 8시부터 오픈이었던 베이커리도, 11시가 오픈이었던 식당도 모두 정상영업을 준비하는 오픈준비조가 있었다.
베이커리 오픈조가 되면, 파티셰 다음으로 오픈조가 나와 바닥을 닦고 진열대를 깨끗이 정리하고, 파티셰님이 만들어주시는 갓 구운 빵들을 정해진 자리에 정리했었다. 포장이 필요한 것은 비닐에 넣어두고, 따끈따끈 맛있는 온기가 넘쳐나는 빵들은 선반 위에서 그 김을 식히기도 했었다. 빵을 포장할 봉지와 케익 상자가 호수별로 정해진 양이 남아 있는지 확인하고, 곧 영업이 시작될 거라는 것을 알리듯 조명을 켜두기 시작한다. 오픈까지 15분 여가 남을 때쯤엔 파티셰님께서 건네주시는 갓 구운 식빵이나 모닝빵 한조각도 얻어먹을 수 있었다. 그날의 매출을 기록해 줄 포스기까지 켜두면 베이커리 오픈조의 임무는 끝이 난다.
몸이 지치는 힘든 일은 없어도, 해도 아직 잠이 덜 깬 듯한 거무스름한 새벽에 일찍 일어나야 하는 조건 때문에 오픈조가 매일 쉽지는 않았다. 그래서 종종 새벽에 눈이 떠지지 않을 때면, '만약 내가 지각을 하게 되어, 영업준비를 못한 채 베이커리 문을 열어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아찔한 상상을 해 본 적도 있다.
허둥지둥 나와 진열대에 빵을 놓아보지만 다른 날처럼 예쁘고 가지런하지도 않을지 모른다. 그날의 오픈 시간은 아침 9시나 10시가 될 테고, 아침 출근길 모닝빵과 샌드위치를 사러 온 직장인, 학생들은 실망스러움에 발길을 돌릴 거다. 파티셰님은 '이 녀석이 대체 왜 나오지 않는 거야!'라면 앞치마를 둘러멘 채 직접 빵을 진열하고 계실지도 모른다.
별 다른 일 없어 보이는 오픈조지만, 그날의 활기찬 영업과 정상적인 매출을 위해선 오픈조의 영업준비 시간이 필수였다.
원래 잠이 많은 편이라, 학교에 가야 하는 아이들이 일어나기 딱 20분 전에 일어나는 것이 엄마로서의 최선의 아침 기상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 할머니의 입버릇처럼, 나이를 먹을수록 절로 새벽에 눈이 떠질 때가 많아졌다. 그때 더 자보겠다고 다시 눈을 붙이면, 어김없이 엄마의 오픈조 지각이다.
아이들을 재촉하고 채근하는 잔소리와, 따뜻한 밥대신 우유에 말은 시리얼을 꺼내줘야 하는 미안함, 그리고 헐레벌떡 아이들을 등교시킨 이후에도 갑작스럽게 맞이한 오늘의 아침에 멍하니 소파에 앉아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내 모습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절로 눈이 떠지는 그 새벽 5시 50분을 엄마의, 아니 내 하루의 오픈 준비조 시간으로 정해 보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1. 소변을 본다. (헌 물 버리기)
2. 너무 차지 않은 물을 마신다. (새 물 채우기)
3. 오늘 하루 예정된 스케줄을 상기해 본다.
4. 어제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을 생각해 보며 내 생각과 감정을 진열해 본다.
5. 아침공기 마시며 글쓰기 (명상, 독서, 필사 등)
6. 아이들 아침식사 준비
엄마의 오픈조 업무 중 특히 글쓰기는, 생각도 말도 많은 내게 어제 하루부터 밤사이 수없이 오갔던 마음속 생각들과 내뱉었던 언어, 나의 시간들을 가지런히 정리해 볼 수 있게 한다. 어제 하루 빠져있었던 부분,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분, 반면 행복하고 만족스러웠던 부분들을 다시 회상해 보며, 오늘은 어제보다 더 나은, 아니 괜찮은 내가 되어보자고 다짐한다.
무엇보다 쪼개도 쪼개도 부족한 엄마의 24시간 중, 오직 나만을 위해, 나만의 속도로 여유롭게 '오늘의 나'를 맞이하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생겨서, 부자라도 된 냥 마음이 든든해지기도 한다.
마치 새벽녘 갓 구운 빵을 덤으로 얻어먹을 수 있었던, 오픈 준비조의 덤과 같은 맛있는 선물을 받은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