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고 있는 경계선
휴직 전까지 근무했던 곳은 소득 수준에 따라 정부에서 지원을 해주는 바우처를 사용할 수 있는 상담센터였다. 센터 주변에는 그러한 바우처를 받을 수 있는 아이들이 상당히 많았다.
저녁을 굶은 채 일을 나가신 엄마아빠를 기다리기도 하고, 친부모로부터 학대를 당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가정폭력, 학교폭력에 노출된 아이, 그 밖에도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올 법한 믿기 힘든 이야기를 가진 아이들도 있었다. 상담비용을 낼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아 소장님의 지원으로 무료로 상담을 진행하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사람의 힘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일, 신앙이 있음에도 신의 존재를 의심하게 되는 일, 이게 드라마인가 현실인가를 고민하게 만드는 일들이 바로 내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렇게 50분씩 하루 7-8 케이스의 상담을 진행하고 나면, 입도 마르기도 하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매 시간 서로 다른 이들의 삶에 강도 높게 집중해야 했다. 그날의 상담이 모두 끝나면 온갖 고민들과 감정으로 가득 차게 된다. 그렇게 하루 에너지가 소진된다.
그렇게 퇴근길을 재촉하다 보면 만나게 되는 터널이 있다.
이 터널을 지나갈 때면 상당히 묘하고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터널은 내가 떠나온 세상과, 도착하게 될 두 세상을 잇고 있는 듯했다. 터널 밖으로 보이는 세상은 내가 떠나온 그곳과는 많이 달랐다. 아름다운 야경을 자랑하는 산책길과 고급 아파트들이 한가운데에 우뚝 솟아있고, 도로 양 옆으로는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기업들의 번쩍이는 건물들이 서 있다. 길가에는 세련된 정장을 차려입은 연인들이 아마도 오늘의 저녁 메뉴를 고르는 듯 다정하게 서로를 매만지며 걷고 있었다.
고작 터널 하나를 두고 이렇게 다를까 싶어 생경하다 못해 슬퍼질 때도 있었다.
오늘 내가 보고 들은 이야기들을 아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는 없는 듯했다. 아니 알고 있어도 '이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지.'라며 묻어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당연한 자세이기도 하다. 수많은 삶과 사건, 이야기들이 얽혀있는 이곳에서, 풀어보겠다고 감히 다른 이의 삶을 간섭하지 않고 묵묵히 내 삶을 살아내는 것이 이 세상을 사는 방법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어떤 이들은 그러한 삶의 자세가 그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생각해 보니 나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그 다름과 경계 덕분에, 미처 정리하지 못했던 하루의 이야기들과 힘든 감정들을 잘 다독여 마음 한 구석에 넣어보고 있었다. 터널을 통과하는 순간 이제 놓아도 된다는 마음이 들 때면, 어디선가 원망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해 미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도 이제 나를 살아야지.' 라며 마음을 다독였다.
하지만 잊고 싶지 않았다. 터널은 가로막힌 벽이 아니라, 양 출구를 잇는 통로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터널을 제외한 다른 모든 세상의 것들은 이어져 있었다. 어느 곳 하나도 삶이 진행되지 않는 곳은 없었다.
그리고 홀로 나아가는 삶 또한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