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독서
꿈은 언제나, 마지막 날까지, 거대하고 훌륭한 범선이 썪어가듯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그 거대하고 훌륭한 범선을 그대로 놔두면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꿈을 위해, 자유를 위해, 나의 이상과 낭만을 위해, 진짜 나의 삶을 찾아 떠나겠다는 명분으로 누군가에겐 간절했던 (결국 그 둘도 간절히 바라게 된 삶이 되었다.) 그 ‘평범한 삶’을 떨쳐버리려 방황하는 비리와 네드라를 보며 “이제 그만 정신 차려라, 쯧쯧” 혀를 차기도 했었다.
하지만 반복되고 지루해보이는, 멋질 것 하나 없어보이는 평범한 삶 중에서, 어떻게든 내 새로운 이름을 찾겠다며 고군분투하고 또 좌절하고 마음 쓰며 살아가던 내 모습이 보여, 죽기 직전까지 자신의 욕망과 삶에 진심이었던 그 둘이 어쩌면 나보단 훨씬 용기있는 자 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도덕성과 윤리의 잣대에 비추어 볼 땐 칭찬 받을 만한 위인들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모든 걸 다해 사랑하고 떠나고 움직이고 속삭였다. ‘나의 삶’을 살아내는 데에선 그 어느 누구보다 진심이었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갈망하던 자유의 삶도, 일생의 관점에서 볼 땐 결국 내가 살아온 삶의 반복이었고, 그 지루하고 반복되는 평범한 삶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그 평범함 속에서 반짝이던 그것들이 삶에 안정감과 풍요로움을 주고 있었다.
자유와 그 열망은 저 깊은 바다에 침몰해있는, 한 때는 거대했던 그리고 지금도 존재할거라고 믿는 그 범선일 때, 가장 황홀하고 아름다운 것 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소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에서도 주인공은 자신이 살아볼 수 있었던 여러 삶들에 대한 미련과 후회로, 자신 앞에 펼쳐졌었던 여러가지 삶을 살아보게 되지만, 결국엔 자신이 살아왔던 그 현실의 삶이 가장 최선이었고, 가장 아름다웠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삶을 살수 있었던 그 다른 갈랫길들이 아니라, 그 삶을 걷는 내 자신이 삶의 본질이었다. 그 본질은 어떤 길을 가든지 변하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삶을 사느냐는 어쩌면 다른 이의 삶과의 비교일 뿐이다. 내가 선택하여 사는 그 모든 삶 자체가 본질이고, 그것이 나의 온전함이다.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듯, 담백하고 간결한 문장에 담긴 실감나는 묘사,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감정과 욕망, 고민들을, 절로 감탄이 나오게 만드는 아름다운 묘사들로 그 어떤 소설보다 생생하게 경험하며 읽었던 제임스 설터의 <가벼운 나날>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