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을 알고 있는 사람은, 당신이에요

놀이치료사가 말하는 '상담' 이야기

by 베로

지용이는 일곱살인데, 아직 또래보다 부정확한 발음들이 몇개가 있다. 예를 들어 'ㅈ'을 'ㄷ'으로 발음하거나, 'ㅅ'은 된소리로 발음될 때가 많고, 음절 사이에 들어가는 'ㄹ'은 발음을 정확하게 하지 않고 넘어갈 때가 있다. 쉽게 말하면 혀 짧은 소리로 발음되는 것들이 많다. 어렸을 적 설소대 수술을 반드시 해야 할 정도는 아니나, 혀 길이가 짧은 편이라고 들었었다. 2년 전에는 어린이집 선생님으로부터, 발음이 부정확하여 처음 만나는 친구나 선생님들과 대화할 때 답답해하며 눈물을 보인적도 있다는 말을 들었었다. 그래서 작년에 처음 언어평가와 언어치료를 하기 위해 아동발달센터를 찾았었다.


TV 프로그램에 아동발달전문가로 나오시기도 하셨고, 나이도 꽤 있어보이는 경험 많아보이시는 원장 선생님이셨다. 한달 비용이 꽤 되었지만, 그래도 그만한 대가를 치를 만한 수업일거라 기대하며 기꺼이 수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한주 한주 지나갈 수록, 지용이는 내가 알던 지용이가 아니였다. 그 선생님의 말을 듣고 있으면 말이다.


선생님께서는 지용이가 '실행증(apraxia)'이라고 하셨다. 실행증이란, '기본적인 운동능력 및 감각능력에 장애가 없고, 지시자의 말을 충분히 이해하고 수행할 수 있을 정도의 의식 수준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운동계획을 세우는 대뇌의 영역에 나타난 이상 증상으로 인하여, 이미 학습되어 할 수 있는 운동이나 몸짓을 못하는 장애'를 말한다. 관련 질병이 뇌졸증, 치매였다. <출처 -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그 때의 지용이는 여섯살이였다. 아직 낯선 교실에서 일대일로 선생님과 마주보며 수업을 해본 적이 없던 아이였고, 낯가람이 많고 생각이 많은 아이라, 불안과 긴장도가 쉽게 높아지는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40분의 수업을 받고 있는데, 이전 장에서 했던 발음을 다시 잊고 자꾸 실수를 한다고, 40분동안 의자에 앉아있는 것을 힘들어한다고, 운동하는 것보다 앉아서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고, 단 3주만에 내린 결론이 실행증이였다.


사실 부정확한 발음을 제외하고는, 지용이는 말도 10개월에 빨리 시작한 편이였고, 책읽기를 좋아하여 이해력이나 표현력에 있어서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 전혀 뒤쳐지는 아이가 아니였다. 역할놀이 시 아이디어가 좋아서 친구들이 잘 따르는 아이였고, 특유의 감수성과 공감능력으로 다른 사람들을 잘 배려할 줄 아는 아이 였다. 규칙과 지시를 잘 이해하고 따를 수 있으며, 주도적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는 아이였다. 아빠에게 처음으로 자전거를 배워서 달릴 수 있고, 왼발로 공을 정확하게 차내고, 하원 하는 길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을 쉼 없이 얘기하고, 동생의 이야기를 존중하며 즐겁게 놀이하는 모습만 봐도 감히 그런 성급한 결론은 내리지 않으셨을 것이다.


'실행증'이라는 꼬리표도 상당히 불쾌했지만, 단 세번의 수업시간을 통해, 지용이가 어떻게 자라왔고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어떤 성향의 아이인지는 알지 못한 채 쉽게 내려지는 선생님의 판단과 수업 방식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 세번의 수업만에 지용이는 '나는 발음을 못하는 아이, 말을 잘 못하는 아이'로 자신을 설명했다.


결국 지용이는 그 선생님으로부터 언어치료를 받는 것을 중단하였다. 그리고 지용이의 성향과 연령에 맞춰, 놀이와 자연스러운 상호작용 중에 발음 연습을 할 수 있는 곳을 알게 되어 이후 8개월여간 발음 치료를 받게 되었다. 지금은 더 이상 수업을 받지않고, 일상 중에 부정확한 발음을 교정하여 다시 들려주고 있으며, 지용이는 정확한 발음을 잘 따라한다. 지금은 선생님들께서 지용이가 발음 때문에 언어치료를 받았었다는 걸 모를 정도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비교적 명확한 발음으로 표현을 할 수 있는 아이이다.




여러가지 주호소를 가지고 도움을 구하기 위해 찾아오는 아이들과 부모들을 상담하면서, 특히 내가 부모님들과 상담하며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심리적 자원들이 있다. 실수가 많았든지 완벽했든지 간에 그 동안 부모와 아이가 함께 지내오며 쌓아온 부모의 아이에 대한 감각, 그리고 양육효능감이다.


사실 효과적인 양육 및 훈육방법, 아이들의 적절한 생활습관 형성, 학습태도 세우기 등에 대해서는 교과서처럼 자세하고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잘 나와있는 양육서들이 참 많다. 책이 아니더라도, 요즘 부모님들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양육환경과 방법, 기술들에 대해 전문가 못지 않은 정보와 지식들을 갖추고 계신다.


놀이치료사로, 아동심리상담사로서 내가 하는 '상담'이라는 것은, 그런 기술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다. 아이와 부모들이 알고 싶고 해결하고 싶은 문제의 답을, 해결책을 주는 것이 아니다.


상담은, 부모와 아이가 그 답과 해결책을 찾기 위해 떠나는 길을 함께 '동행'하는 것이다. 사실 그 답은 이미 당신의 머리와 가슴 속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단지 지금은 그곳으로 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 것 뿐이다.


그 방법이 서툴고 혹여나 아이의 발달을 저해하는 방향이였다 할지라도, 부모가 아이와 서로 주고받으며 쌓아온 감각들과 고민, 느낌들은 실재하는 것이며, 그것이 지금 내 앞에 있는 아이와 부모 존재 그 자체이다.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는 전문가들은 알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것들을 부모들은 경험해왔고 느낄 수 있다.


따라서 한 사람으로서의 아이를 '이해한다'는 것은 부모인 당신이 가장 잘 알고 있고 가장 정확하다. 그래서 상담자는 부모와 아이들이 살아온 시간들의 이야기를, 당신의 매주 일상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나를 찾아오는 아이들과 부모들은 사실 무엇이 필요했고 무엇을 했어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다. 단지 내 자신이 깨닫지 못하고 있는 감정의 원인이나 마음의 상처, 어렸을 적 미해결된 채 남아있던 사건, 나의 욕구와 감정등으로 인해 가려져 있을 뿐이다.


나 혼자서는 볼 수 없는 나와 아이의 모습을, 내가 아니고 내 아이가 아니라서 볼 수 있는 그 흔적을, 그 길을 따라가도록 안내하며 동행하는 것이 상담자의 역할이고, 그 동행의 여정이 '상담'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담을 이끄는 주된 힘, 부모와 아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풀어가는 힘은 전문적인 상담자의 기술이 아닌, 당신의 심리적인 자원이자 힘이다. 그 중 나는 부모들에게 있어 '양육 효능감'을 제일이라고 본다. 양육 효능감이란, 말 그대로 양육을 하는데에 있어서 내가 잘 하고 있다는 유능감을 말한다.


센터를 찾아오는 아이와 부모들은 쉽지 않은 길을 걸어온 경우들이 많다. 치열하게 고민하며 죽기살기로 버텨왔는데 이 길이 아니라는 거다. 가슴 아프지만 다시 되돌아가야 할 수도 있고, 처음부터 다른 길을 선택하여 다시 시작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길을 다시 떠나야 하는 아이와 부모의 마음에 긍정의 힘과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비록 잘못 들은 길이라 할지라도, 그 길을 거쳐오면서 아이와 부모는 처음 길을 떠났을 때 몰랐던 것을 새로 알게 되었으며, 보다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며 얻어온 것들이 있다.


길이 잘못되었다고 그 간의 시간과 경험들 마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건 진짜다. 그리고 내가, 내 아이가 아니였다면 얻어낼 수 없었던 울고 웃으며 얻어진 값진 눈물의 열매이다. 수고했다고 잘 견뎌내왔다고 칭찬받고 격려받는 것이 마땅하다.


그래서 나는 함께 출발하기 전에, 긍정의 힘과 에너지를 주는 것을 우선으로 삼는다. '당신은 그 동안 잘 해왔고, 지금도 잘 하고 있다' 고. 그 동안의 실수는 다시 고치면 되고, 다시 쌓아올리면 된다. 당신은 다시 시작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그래서 당신의 시작을 응원하고 함께 하기 위해 나는 이 글을 쓰기로 했다.


당신은 잘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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