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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원 Apr 06. 2021

가계 자산 관리에 대하여 #1

가정 경제 연구소 네 번째 이야기

프롤로그


내가 20대, 30대였을 때는 자산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대신 그때는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싶다는 마음에 가득 차 있었다. 재학 중에 인턴으로 일했던 홍보대행사에서 정규직 오퍼를 받고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취업을 해서 돈을 벌고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 자립을 하게 되었다는 기쁨도 컸지만 사원에서 대리가 되고, 더 큰 회사로 이직하고, MBA 진학을 위해 미국 유학을 가고, 졸업 후 포춘 100 대 미국 기업 본사에 취업을 하고 이렇게 사다리를 하나씩 올라가는 게 너무나 즐거웠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 행복했다.


몇 년 동안의 외국 생활 끝에 가정을 이뤄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한국의 대기업으로 이직을 하여 귀국을 했다. 어찌어찌하여 30대 후반에 현재의 남편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아들을 낳고 입주 베이비시터와 함께 살면서 몇 년간 직장맘으로 살았다. 그때 깨달은 것이 나의 용량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간 내 용량의 90% 이상을 회사에 쏟으며 살아왔는데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내 용량의 50% 이상이 나도 모르게 아이한테 가버렸다. 남은 용량으로 회사 일을 하며, 가정도 신경 쓰며 몇 년 간 살다 보니 과부하가 걸린 몸이 견뎌내질 못했고 결국 암 진단을 받게 되었다. 아이 또한 5살이 되어도 말을 하지 못해, 발달 지연 판정을 받은 상태였다.


다시 복귀하리라 굳은 결심을 하며 육아 휴직을 신청했다. 출산 후 바로 회사로 복귀했기 때문에 1년간의 육아 휴직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휴직 후 투병 생활을 하며, 아이를 돌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번 휴직을 하고 나니 복귀는 쉽지 않았고 그렇게 해서 15년간에 걸친 사회생활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전업 맘의 가계 자산 관리- 부동산 편 #1

     

전업 맘이 되고 보니 제일 먼저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그 전에는 출퇴근만 편하면 되었고 주말에는 아이가 어려서 집에 있는 것보다는 차를 타고 나들이를 나가는 일이 많아서 내가 사는 동네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지금과 비교하면 2010년 우리가 결혼할 때는 집 값이 너무나도 저렴했지만, 그때도 우리처럼 돈이 없는 신혼부부에게는 집값은 비쌌다. 당시 금융문맹이었던 나는 그냥 무조건 빚이 싫었다. 그래도 집은 무조건 자가여야 한다고 우겨서 빚을 왕창 지고 집을 샀다. 강남에 직장이 있던 남편과 강북에 직장이 있던 내가 둘 다 편하게 출퇴근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전업맘이 되고 보니, 교통은 너무나 편하지만 생활 편의 시설이 낙후되어 있고, 아이와 걸어서 산책할 곳도 마땅치 않은 우리 동네가 여러모로 사는 데 불편했다. 내가 금융문맹을 탈출하게 되고, 가계 자산 관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바로 그 지점이었다. 나와 아이가 하루를 보내기에 쾌적하고, 면학 분위기가 잘 조성되어 있는 곳-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삶의 터전'으로 어떻게 해서든지 옮겨가는 것, 그것이 퇴직 후 전업맘으로서 내가 갖게 된 새로운 삶의 목표였다. 이 목표는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인데, 그 5년간의 과정에 있어 내가 겪은 시행착오에 대해 다음 편에서 다루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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