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남 여행기
이번에 중국 운남으로 여행을 가서 재미있는 일들을 겪었다. 각각 둘째 날과 셋째 날의 일이다.
하나.
둘째 날 점심은 大理따리 고성 안에서 먹기로 했다. 고성 안에는 맛있기로 유명한 푸드코트가 있었는데, 실제로 가보니 음식은 정말 맛있어 보였지만 시끄럽고 어수선하기 그지없었다. 주문 시스템이 어떻게 돼있는 건지, 사람들은 음식을 시킬 때 돈을 내는 것 같지 않았다. 사람들은 티켓을 내고 음식을 주문했는데, 나는 그 티켓이 어디서 나는 건지 몰라 소심한 뜨내기 외국인답게 어슬렁대기만 했다. 행동 관찰만 10분 넘게 하다가 전혀 이해할 수 없어 티켓을 쥐고 있는 사람에게 그거 어디서 난 거냐고 물어보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방언이라 나는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다시 한번 말해달라고 부탁하니, 그 사람은 얼굴을 찌푸리며 "아니야, 아니야"라고만 했다.
주문을 포기할 뻔했다. 하지만 한국 블로그에도 여기서 맛있게 먹었다는 후기가 있길래 어떻게든 되는 거겠지 싶어서 음식을 주문하려 줄을 섰다. 하지만 5분 넘게 기다려서 나의 차례가 오자 옆에 있는 중국인이 큰 목소리로 먼저 주문을 했고 나는 그 시끌벅적한 상점 속에서 종업원의 눈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 사람의 주문이 끝나고 나는 다시 주문을 하려 했지만 바로 뒤의 사람이 이어서 주문을 했고 나는 위치상 줄 밖으로 밀려난 셈이 되었다. 정말로 눈물이 날 뻔했다. 아니 이거 어떻게 먹는 거냐고...... 음식이랑 사람만 30분 넘게 바라보다 그냥 결심했다.
그냥 저 사람들처럼 행동하자.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줄을 섰다. 내 차례가 되어 주문을 하는데, 조금 전과 같은 상황이 될까 봐 종업원이 주문하라고 말하기도 전에 큰 목소리로 음식을 주문했다. 종업원이 나에게 티켓 어디 있냐고 물었는데, 그냥 없다고 하니까 가격을 불러주었다. 그리고 돈을 내고 음식을 받아 자리에 앉았다. 이렇게 간단한 거라니. 이렇게 남은 여행기간 동안 큰 도움이 되는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시끄러운 곳에서는 시끄럽게 말해야 알아듣는다는 것. 복잡한 곳에서 누가 끼어들려 하면 몸부터 들이밀어야 한다는 것.
둘.
여행 3일 차 되던 날이었다. 첫날과 이튿날 밤을 보낸 숙소가 실망스러워 丽江리장 에서의 셋째 날과 넷째 날 밤은 꼭 깨끗하고 조용한 곳에서 보내리라 작정하며 핸드폰으로 몇 시간을 뒤져 찾아낸 곳이 있었다. 사진을 보니 꽤 근사한 곳이었는데, 가격은 놀랍도록 쌌다. 아마 60% 할인을 해서 1박에 120위안(한화로 약 2만 원)이었는데, 이층 침대가 있고 깨끗한 화장실과 소파 그리고 테이블까지 있는 방이었다. 기대를 잔뜩 품고 갔는데, 거두절미하고 결론만 말하자면 사기를 당했다. 알아본 곳은 고성 내의 가옥식 숙소였는데, 프런트에서 접수를 하니 직원은 나와 친구를 다른 골목의 숙소로 데려갔다. 직원 말로는 두 곳은 사장이 같아서 위치만 다르지 똑같은 숙소라고 했다.
남한테 불평불만 잘 못하는 성격이라 사소한 불편함은 참고 넘어가는 편인데, 우리가 도착한 곳은 우리가 본 사진과는 완전 딴판의 방이었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여기는 우리가 예약한 방이 아니라고 말했다. 딱 봐도 훨씬 좁고 더러운 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우리를 방으로 데려온 직원이 우리에게 숙소 예약증을 보여달라고 했다. 예약증을 보더니, 직원은 이 방이 그 방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방의 구조나 크기는 다를 수 있다 해도 가구 스타일과 인테리어까지 다르니 같은 곳이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직원과 언쟁을 벌이게 되었다. 아래는 직원과의 대화를 요약한 것이다.
나: 여기 다른 방이잖아.
직원: 같은 방이야.
나: 근데 사진이 완전 다른데? 달라도 너무 다르잖아.
직원: 아, 그건 사진이고, 실제 방은 이거야. 사진이 틀린 거야.
(그 직원은 이런 어이없는 말을 참 태연하게도 했다.)
나: 아니 그럼 왜 이 사진 올려놨어? 이거 엄연한 사기행위잖아. 웃기지 말고 이 방으로 데려가 줘.
직원: 사진이 틀린 거라니깐. 이 가격에는 이 방이야.
(그리고는 위의 말을, 말만 다르게 10번 넘게 했다.)
나: 그럼 이 사진에 있는 방은 얼마 짜린데? 그건 어딨는 건데?
직원: 저쪽에 있긴 해. 근데 거기는 내일 다른 손님이 예약해놨어.
나: 그럼 그 방은 어떻게 예약하는 건데? 여기 사이트에는 이 사진밖에 없는데. 내가 이 방 이틀 예약했는데 왜 다른 사람이 이 방 예약할 수 있는 건데?
직원: (자기도 어이없는지 실실 웃으며) 아 그건 몰라.
나: 그럼 그 방 오늘은 비는 거니까 오늘은 그 방에서 잘래. 사진 업로드 잘못해놓은 거라 해도 이거 너네 잘못이잖아. 너네 잘못이면 적어도 같은 급의 다른 방을 주거나 업그레이드를 해줘야 하는 거지, 이건 딱 봐도 다운그레이드잖아.
직원: 그 사진이랑 비슷하지 않아?(^^...) 사장한테 물어볼게. 여기서 잠깐 기다려.
직원이 간 사이 나는 핸드폰으로 우리가 있는 곳의 숙소를 검색해보았다. 예상대로 우리가 와있는 숙소는 아예 다른 곳이었다. 직원이 다시 오더니, 아까와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더 이상 말이 안 통한다 싶어서, 나도 참 화가 나서 그냥 얼굴에 철판을 깔고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이 방 아니야. 나 내방으로 갈래."
그러더니 직원은 사장과 메시지를 주고받더니 결국 우리를 원래의 숙소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사장이 기다리고 있었다.(자기 논리로는 안되니 뻔뻔력 레벨이 높은 사장을 불렀나 보다.) 그곳에서 나와 사장은 또 언쟁을 벌였다.
사장: 예전에도 이런 일 있었어. 태국인이 와서 방 때문에 뭐라 하더라. 그래서 나도 너네가 왜 이러는지 알아. 그런데 시스템상으로는 너네가 예약한 방이 그 방 맞아.
나: 그래 그러면 사진이 다르다고 치자. 그런데 왜 면적이 달라? 내가 예약한 곳에서는 25평방 미터라고 되어있는데 여기 보니까 숙소 이름도 다르고 방금 우리가 본 방은 20평방미터야.
사장: 아 그래?(말잇못)
나: 아 됐고, 일단 오늘 우리가 예약한 방 있다 했으니까 오늘은 거기서 잘래. 너네 잘못이니까 이건 해줄 수 있잖아.
사장:......
아무튼 한 시간 동안 언쟁을 벌여 우리가 예약한 방으로 갔다.
(
다음 날 다른 손님의 예약이 있다는 소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거짓말 같아서 다음 날이 될 때까지 아무 말 안
하고 있었더니 사장도 우리 보고 나가라고 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는 우리가 원한 방으로 가서 일단은 다행이다 싶었지만, 정말 너무 화가 나서 방에서 쉬면서 쿵쿵 뛰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상황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어쨌거나 내가 이겼으니 뿌듯하기도 했지만 내가 맞는 말을 하는데도 말문이 턱턱 막혀서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한탄하듯 친구에게 "나 중국어 정말 잘하고 싶다. 방금은 정말 말이 안 나오더라."라고 하니, 친구가 "그런 상황에서는 한국어로 말해도 말이 안 나올걸?"이라는 위로 비슷한 말을 했다.
친구의 말을 듣고 보니, 문제는 내 중국어가 아니라 논리와 비논리의 문제였던 것 같다. 얼마나 간편한 일인가. 논리적인 말을 비논리로 대응한다는 것은. 얼핏 보기에는 대화가 되는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나는 알면서도 대화를 시도했던 것이다. 비논리는 마치 방패와 같아서, 대화를 하려는 논리의 섬세한 손짓을 가소롭게 쳐내버린다. 방패의 세계에서는 손짓이 통하지 않는다. 나 또한 육중한 방패를 들고 그의 방패에 온몸으로 부딪혀야 그는 비로소 타격을 느낄 것이다.
방패의 세계에서는 단단함과 힘이 최고다. 방향과 모양은 아무래도 중요하지 않다. 내가 가진 섬세하고 정교한 손은, 그들의 방패 그리고 나 자신의 방패 뒤에 가려 보이는 일이 정녕 없을 것이다. 슬플 따름이다. 누가 알겠는가. 방패 뒤에 숨겨진 것이 둥글기만 한 주먹인지, 아니면 부딪힘의 충격에 남몰래 피 흘리는 섬세한 손가락인지. 손짓으로 방패를 이기려면 얼마나 많이 다치고 굳은살이 생겨야 할까. 얼마나 많은 손짓들이 모여야 방패를 깨뜨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