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고단할수록 쓰자
<문장 처방 - 마흔의 마음을 설명하다>
by roman editor Apr 27. 2019
<공허한 마음을 위한 문장 처방>
"자기 이해를 전문가에게 의탁하기보다 스스로 성찰하고 풀어가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으며 그중 가장 손쉬운 하나가 글쓰기다. 글쓰기는 삶을 이해하기 위한 수공업으로, 부단한 연마가 필요하다."
-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중에서 -
딱 하루만큼의 후련함이다. 글쓰기의 유통기한이라면.
어제의 글쓰기는 딱 어제까지. 오늘 아침이 되니 다시 답답함, 헛헛함, 공허함이 밀려온다.
작가들은 이렇게 매일 글을 쓰나 싶다.
마감일에 맞춘 수동적 글쓰기가 아닌 쓰지 않고는 오늘을 살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결핍의 마음.
나 역시 오늘 쓰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된 건 얼마 전 스친 상처가 제대로 아물지 않아 생긴 후유증 같은 것.
어제 못다 채운 틈의 간격이 하룻밤 사이에 꽤 커졌나 보다.
쓰고픈 맘에 잠을 깨다니...
삶이 늘 그러하듯.
느닷없이 닥친 '어떤 일'들로 우린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이 느닷없음은 '쓸어버려야 할 무엇'을 쓸어간다는 점에선 유익하긴 하나
'건들지 말아야 할 무엇'까지 쓸어간다는 점에선 두렵기만 한 삶의 재난이다.
재난이 닥친 후, 제정신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과는 다른 언어, 방식, 관점이 필요하다.
지금 노트북 자판 위에 손을 얹은 이유이기도 하다.
우선 쓰며 쏟아낸다.
좌절, 실망, 억울, 슬픔, 분노 등 내 몸을 관통하는 어두운 감정을 이야기로 쏟아내는 일은
어쩌면 감정의 끝에 아슬아슬 매달려 오늘 하루를 버티기보다,
쏟아냄으로 간당간당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전히 쓴다.
내 삶의 온갖 것 들을 마주하고, 느낌을 음미하며, 생각들을 대치시키는...
마치 댄서의 황홀한 춤사위처럼 존재가 춤추는 시간.
그리고 마침내 쓴다.
그럼에도 용기 있게... 나로서 나를 마주하고, 증언하며, 나의 언어를 만들어가는,
때론 주어진 나의 관점을 펼쳐 놓고 세세한 질문을 던지며 한 땀 한 땀 수정하는,
때론 상식, 시선, 금기에 도전하며 '나의 고유한 관점'에 힘을 싣는 일이기도 한.
아무튼... 삶이 고단할수록 쓰자.
나로서 '나'에 좀 더 힘을 실어주기 위해.
괜한 공허한 말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