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을 걷던 기억

<문장 처방 - 마흔의 마음을 설명하다>

by roman editor
<걷기가 두려운 마음을 위한
문장 처방>



#문장 1_

길은 완전히 막힌 듯했습니다

이러다간 길을 잃고 말 거라는 생각에, 멈칫멈칫 막힌 숲 속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렇게 몇 번이나 떨면서, 가슴 조이며 우리는 산길을 내려왔습니다

언제나 끝났다고 생각한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었지요

- 이성복 時, 산길 中에서 -


떨면서, 가슴 조이며 그렇게 길을 걸어간다.

이렇게 계산하고, 저렇게 조합해.. 답을 찾아낸 들... 그냥 걷는 것이 최고.

멈칫멈칫. 하다가도 다시 길을 걷는다. 때론 멈춤의 시간이 길더라도 그냥 그냥 걷는다.

여전히 걸어 본다.

내 걸음이 멈추면 내 삶도 멈춘다.

지난겨울 뉴욕 여행길이 떠오른다.

멈출 수 없어 걷던 기억 말이다.

지도에 의지해 걷고 또 걷던 기억.

산티아고의 순례자 길 못지않은 단련의 시간이었다.


사실 호기롭게 ‘홀로 여행’을 선언하며 나선 길이었건만...

낯선 도시에서 느끼는 두려움, 외로움은 생각보다 컸다. 밤마다 호텔방의 불을 잔뜩 켜놓고 잠들곤 했으니까.

해가 뜨자마자 후다닥 호텔방을 나왔다.

가야 할 목적지 리스트를 잔뜩 정해 지도에 의지해 걸었다.

때론 목적지를 향해, 때론 낯섦을 극복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롯이 걷는 것.


처음엔 목적지를 정해 놓고 걸었다.

무언가를 찾기 위한 걸음이 되자 금세 발이 아파오고 피곤이 밀려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를 옥죄던 낯선 길과 목적지.

그렇게 걷기에 익숙해지고 도시의 온기가 조금씩 느껴질 무렵. 

대충의 방향만 정해 놓고 느긋하게 걷기로 했다.

익숙해졌고, 불안하지 않았기에.

걷다가 마주하는 우연의 것들.

사람이며 장소며. 구분할 것 없이 모든 것들과 온기를 나눴다.

눈에 띄는 곳이 새로운 목적지가 되자 점점 더 걷고 싶어 졌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의 고된 걸음이 싫지 않았던 이유다. 저녁이 되면 녹초가 된 몸이 기특했다.

걷고 싶었던 길을 다 걸을 때쯤 여행은 끝났다.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여전히 길을 걷는 중이다. 익숙한 길, 새로운 길 구분 없이 걷기를 망설이지 않는다.

이전과는 다른 또 다른 새길일지라도.

언제나 나에게 길은 설렘이다.

그렇게 길을 걷는 법을 배운 여행이었다.


#문장 2

“홀로 걷는 사람, 긴 길이든 짧은 길이든 길을 걷는 한 곳에 머물지 않는 사람이요, 욕망과 결핍을 동력으로 삼는 사람이요... 노동자나 거주자나 집단 구성원의 유대감보다는 여행자의 무심함을 가진 사람이다.”

- 리베카 솔닛 -



‘여행자의 무심함’. 어느 순간 그 어떤 것에도 ‘무심함’이 허락되는 순간. 진짜 자유로웠다.

세상 속에 있으면서도 세상과 동떨어진 기분이랄까.

그 정도로 사색하고, 그 정도로 존재하고, 그 정도로 경험해도 되는 때.

진짜 나다워질 수 있던 때가 바로 그때다. 그렇게 적당한 환경에서 난 자유를 얻었다.

“걷는 일은 몸이 땅을 척도 삼아 스스로를 가늠하는 방식이다.”

그렇게 난 나를 찾는 법을 여행에서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