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삶의 쾌락, 글쓰기

<문장 처방 - 마흔의 마음을 설명하다>

by roman editor
<침묵을 깨고 싶은 마음을 위한
문장 처장>


이야기는 삶을 구한다. 그리고 이야기가 곧 삶이다. 우리는 곧 우리의 이야기다.

이야기는 우리를 고무시키고, 때로는 자신의 한계와 두려움이라는 돌벽에 우리를 내던진다.

해방은 늘 부분적으로나마 이야기를 짓는 과정이다.

이야기를 깨뜨리고, 침묵을 깨뜨리고, 새 이야기를 짓는 과정이다.

자유로운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말한다. 가치를 인정받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이야기가 설 자리가 주어지는 사회에서 산다는 것이다.


-리베카 솔닛,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중에서 -

말이 자꾸 삼켜지던 때가 있었다. 직장 상사의 강압적 태도는 모두의 입을 닫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까스로 쏟아내던 어떤 말도 사실은 자유로운 말은 아니었다.

고통의 신음처럼 입에서 흘러나온 그냥 어떤 말이었을 뿐. 진짜 말은 아니었다.

말할 자유가 짓밟히던 그때. 어떤 발언도 할 수 없게 만들던 그때.

나도 함께 입을 닫았다.


침묵은 말해지지 않은 것, 말할 수 없는 것, 억압된 것, 지워진 것, 들리지 않는 것으로 이뤄진 바다.. 우리는 누구나 말하지 않는 말로 이뤄진 자신만의 바다를 갖고 있다”는 리베카 솔닛의 말처럼 그렇게 나의 바다는 점점 더 넓고 깊어졌다.

깊고 넓은 바다 안에서만 유영하던 나의 말들. 그때의 시간 덕분에 난 말할 수 있다는 것,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 그럴 기회가 제공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뼈에 새긴 아픈 기억을 종종 소환하곤 한다.


“새로운 인식에는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

무언가를 말하고, 표현한다는 것은 곧 인식을 바꾼다는 것을 의미한다. 침묵 안에서 억압됐던 나의 자아 인식은 어느 순간 자유롭게 ‘말’할 기회를 얻으면서 진짜 자유를 얻게 됐다.

글과 말이 지닌 힘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말함과 동시에 나에게 진짜 자유를 준 건 글쓰기다.

‘어떤 글을 쓸 것인가’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시작이 됐고, 찢긴 상처, 빈틈을 언어로 채우며 ‘어떤 글’을 완성했다. 글쓰기는 ‘나의 본질’을 본격적으로 탐구하는 시간이다. 관계 안에서 받은 상처, 낮은 자존감 등 내 안에 깊은 상처를 도려내고 새살을 덧입히는 대수술의 시간이기도 했다.


조지 오웰은 “인간이 물질세계는 탐사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탐사는 하지 않으려 한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난 글쓰기로 스스로에 대한 탐사를 시작했다.

생각을 풀어내는 글쓰기로 깨달았다. 그동안 난 세상의 어떤 가치 체계에 휘말려 있었고, 내 삶은 배려하지 않은 채... 그렇게 차갑고 쓸쓸한 말과 글 안에서 얼마나 외로웠는지.

삶이 불안하고, 흔들리는 마흔의 때.

난 스스로 깨닫는다. 이때가 곧 이야기해야 할 때라는 것을.

길들여진 말이 아닌 진짜 나의 이야기 말이다.

자꾸만 달아나는 나의 삶에 말을 걸고, 나의 참모습을 붙잡으며,

세상의 살아 있는 것들을 살게 하고, 짓밟힌 인간의 존엄을 사유하는 수단으로써의 글과 말.

성급한 반성, 자기 정당성 확인, 위안의 말과 글 말이 아닌

나 자신에 대해, 그 삶에 대해, 이 세상에 대해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면서 조금씩 불편하기를 자처하는 글과 말.

자신의 삶을 용기 있게 증언하면서 자기 언어를 만들어가는 자유로운 진짜 글과 말.


이 찬란한 삶의 쾌락을 모두 함께 누릴 순 없을까.

어떤 이도 소외됨 없이.

이전 17화뉴욕을 걷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