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의 일

<문장 처방-마흔의 마음을 설명하다>

by roman editor

걸음마를 떼는 아기처럼 차근차근 연습해나가야 한다. 내 안의 욕망들을 하나하나 짚어보며 그 욕망들의 우선순위를 이해해야 한다. 거기서부터 우리는 조금씩이나마 자유로워진다. 그렇게 자신만의 우선순위에 따라 스스로 ‘나의 일’을 정의하는 데서부터 우리는 조금씩 내 일의 주인 자리에 가까워진다.



일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 일은 곧 나로 연결된다.

‘어떤 일’은 곧 ‘어떤 나’를 규정짓는다. ‘일을 얼마나 어떻게 하고 싶은가’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로 직결된다. 일해야만 하는 이유다.

15여 년 동안 버텨 온 직장인의 삶. 삶의 1막을 마감한 후 4년 전 불확실성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불확실성을 기꺼이 껴안을 수 있었던 것은 일에 대한 관점의 변화다.

대학을 졸업하고 20대까지는 ‘어디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짓기 위해 달렸다. 일이 손에 익고, 회사 돌아가는 모양새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직장 2~3년 차쯤 되자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아니 이 일을 정말 꼭 해야 하는지, 어쩌면 가장 먼저 묻고 시작되어야 했을 본질적 질문으로 서서히 직장 생활에 회의가 찾아왔다.

그렇게 매일매일 찾기 힘든 질문을 안고 한 해 한 해를 버틴 시간.

그렇다면 지금의 고민은? 얼마나 오래 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지속 가능한 일 말이다.

마흔 즈음, 찾아온 일에 대한 질문이 각별한 이유는 ‘일을 얼마나 어떻게 하고 싶은가’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어떻게 인생 하반기를 보낼 것인가’와도 이어지기 때문이다.

다양한 방식의 일과 다른 형태의 일을 찾아 기웃거리는 요즘이다.



좋아하는 것에 대한 착각

흔히 우리가 말하는 ‘하고 싶은 일’이란 무엇일까?

사실 오랜 시간 이 질문이 힘들었던 이유를 최근에야 발견했다.

세상이 좋다고 하는 것을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착각했던 탓이다.

이러한 착각은 자신의 욕망을 오해하는 데서 비롯된다. 원하는 대로 일할 수 없다고 고민하기 전에 자신이 정말 무엇을 원하는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우리에겐 자신의 욕망을 이해하는 훈련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사실 이런 생각에 이르자 마음이 조급해지고 불안감은 더욱 커진다.

쌓았던 경력이 무용지물이 될 지로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불안한 나에게 제현주 작가는 이렇게 조언한다.

“걸음마를 떼는 아기처럼 차근차근 연습해나가야 한다. 내 안의 욕망들을 하나하나 짚어보며 그 욕망들의 우선순위를 이해해야 한다. 거기서부터 우리는 조금씩이나마 자유로워진다. 그렇게 자신만의 우선순위에 따라 스스로 ‘나의 일’을 정의하는 데서부터 우리는 조금씩 내 일의 주인 자리에 가까워진다.”



자신에게 좋은 것을 이해하고, 그것을 향해 움직일 것

먼저 돈에 대한 나의 욕망을 들여다봤다. 돈을 많이 벌면 좋다는 세상의 말에 늘 혹하긴 한다.

아직도 ‘돈의 유혹’은 달콤하다. 이즈음... 그렇게 살아왔던 ‘나’를 되돌아보고, 나의 욕망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사실 그건 나에게 중요한 욕망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리고 명확히 정의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고 그만큼만 되돌려 받자”라고.

지금은 조금씩 일의 방식을 만들어 가는 시간들이다.

나만의 일하는 방식 안에서 즐거움을 찾아가는 중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천천히 생각해본다.

어쩌면 나를 이해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는

내가 싫어하는 것, 나를 힘들게 하는 것, 나를 황폐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시도’부터 하나씩 해보는 것이다.


지금 난 직장을 박차고 나왔고 조금씩 아이를 키우며, 조금씩 책을 읽고,

여전히 잡지를 만들며 글을 쓰는 중이다.

그러고 보면 내게 글쓰기는 관성적으로 계속하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돈벌이로 시작된 잡지 만들기가 10여 년이 이어지자 이후부터는

돈벌이로서 그나마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 되었다.

글 쓰는 일이 첫사랑 같은 느낌이라기보다는 어쩌다 보니 같이 사는 상대에 가깝다.

그렇게 잡지를 만들고, 글을 쓰며 20여 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다.

지금은 누군가를 인터뷰하고, 책을 읽으며 ‘어떤 한 부분을 건드려주는 무언가’을 발견하고, 그 에너지로 마감이라는 것을 한다. 난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냉정한 타협을 했고... 그 시간이 이어지자 ‘관성’이라는 것이 생겨났다. 글 쓰는 관성, 마감의 관성 말이다.

때론 지극히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이유가

‘그 일이 제 가슴을 뛰게 해요’라는 이유보다

훨씬 오래가는 동력을 선사하기도 한다.


<마흔의 일로 불안한 마음
을 위한 문장 처방>


걸음마를 떼는 아기처럼 차근차근 연습해나가야 한다. 내 안의 욕망들을 하나하나 짚어보며 그 욕망들의 우선순위를 이해해야 한다. 거기서부터 우리는 조금씩이나마 자유로워진다. 그렇게 자신만의 우선순위에 따라 스스로 ‘나의 일’을 정의하는 데서부터 우리는 조금씩 내 일의 주인 자리에 가까워진다.

- 제현주 작가(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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