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하던 일에 지친
마음을 위한 처방>
자의식이 물러나야 세상이 보이는 데, 이때 보이는 것은 처음 보는 새로운 것들이 아니라 늘 보던 것들의 새로움이다.
너무 늦었기 때문에 더욱 선명하다.
이것은 '본다'가 아니라 '보인다'의 세계이다."
- 김훈 -
아침부터 휴대폰이 울린다. 지인의 전화다. 수화기 넘어 그녀의 지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몇 마디 얘기를 전해 듣다가 내가 먼저 제안했다.
'우리 만나자!'
집 앞 카페에 마주 앉았다. 평소 그녀 답지 않게 푸석푸석한 피부와 머릿결에 시선이 간다.
'무슨 일이 있냐'라고 묻자..
'그런 건 아니고...'라고 말끝을 흐린다.
그렇게 그녀와의 요즘 이야기가 시작됐다.
지인은 제법 실력을 인정받은 인터넷 강사다. 한 인터넷 교육 기업에 소속된 프리랜서 강사. 자신에게 주어진 강의 몇 건만 소화하면 편당 얼마의 돈을 받는다. 수입이 늘고, 요청 건수가 늘어나자 혼자 감당하기가 버거워 프리 강사 몇 명을 모아 별도 법인을 내기도 했다.
요즘 그 좋던 일이 싫어지고, 회사도 가기 싫어졌다고 했다. 한 멤버와의 갈등을 주원인으로 지목했다.
지인은 '가치관의 차이'라고 했다.
어떤 사업을 제안한 다른 멤버와 갈등이 생겼고, 갈등의 원인은 가치관 차이에서 온 것으로 스스로 진단했다.
지인은 골라서 일을 하고 싶어 했다. 마음이 끌리는 일.
동료가 제안한 그 마음에도 없는 일 때문에 '일의 재미'를 잃어버렸고, 일의 재미는 곧 삶의 재미로 연결되어 '삶의 의욕'까지 잃어버린 듯했다. '일'에서 느끼는 만족감이 중요했던 친구는 '일의 재미'가 사라지자... 모든 것이 버겁기만 하다고 토로한다.
사실 난 친구의 얘기를 듣던 중 워커홀릭 친구를 단숨에 무너뜨린 이유로는 납득이 가지 않았다.
언제나 삶의 한가운데 '일'을 뒀던 강인한 그녀의 모습치곤 낯설었다.
동료와의 단순한 갈등, 좋아하지 않는 일이 삶의 의욕을 꺾는다?
친구의 낯선 표정을 만들어 낸 근본 원인이라고 하기엔 어떤 다른 원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본 지금까지의 그녀는 '좋아하는 일'을 한 게 아니라 '일'을 좋아했던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잘됐네. 이 참에 그냥 좀 쉬어~!"라고 우선 말을 건넸다.
"안돼" 친구의 대답은 단호하다.
쉴 수 없다면... 일을 하되 일에 대한 시선을 바꿔보라고 살짝 건넸다.
동료와의 갈등이 지친 게 아니라 스스로 정해 놓은 '좋아하는 일'에 메여 있는 너 자신이 더 너를 지치게 할지도 모른다는 말도 덧붙여서.
일단 쉬면서 일을 좀 더 관찰해보라고.
좀 더 시선을 돌려 보지 않던 것들을 보며 새롭게 일을 정의하고 생각해 보는 건 어떠냐고.
그리고 작가 김훈의 '연필로 쓰기'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자의식이 물러나야 세상이 보이는 데, 이때 보이는 것은 처음 보는 새로운 것들이 아니라 늘 보던 것들의 새로움이다. 너무 늦었기 때문에 더욱 선명하다. 이것은 '본다'가 아니라 '보인다'의 세계이다."
- 김훈 -
그렇게 친구에게 하는 듯, 나 자신에게 김훈의 글을 건네며 마시던 차를 함께 홀짝인다.
한결 부드럽고, 한결 감미롭다.
자의식이 물러나야 세상이 보이는 데, 이때 보이는 것은 처음 보는 새로운 것들이 아니라 늘 보던 것들의 새로움이다. 너무 늦었기 때문에 더욱 선명하다. 이것은 '본다'가 아니라 '보인다'의 세계이다."
- 김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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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처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