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마흔의 마음을 쓰다

by roman editor

<내가 옳다며 확신에 찬 마음들에게>

"부정적인 견해만 편견인 것은 아니다.

내가 몸으로 체험하지 못한 앎,

한 번도 반성해보지 않은 앎은 모두 편견일 수 있다."

- 신형철 -




세상의 모든 것이 '배움'이었던 시절을 지나, 마흔을 갓 지난 지금은 약간의 배움과 약간의 편견과 약간의 확신이 세상의 모든 것에 개입한다. 나름의 연륜이라고 해두자.

예전엔 '아 그랬구나~. 진짜?'라는 말이 수시로 튀어나왔다. 그 안엔 배우려는, 이해하려는 의지가 가득 담겨 있다. 지금은 '내가 볼 땐 말이야~'도 비중 있게 섞여 있다. '내가 옳다'는 몇 퍼센트의 확신을 담은 채.

가뿐하게 우선순위를 나누고, 일의 경중을 구분한다. '효율성'을 운운하며 저울질하고,

'해법'인 양 스스럼없이 확신에 차 말을 내뱉는다.



살다 보면

별 것 아닌 상황이

누군가에겐 '별 것'이 되어버리고 마는 경우가 있다.

결국 깨닫는 건 '당사자가 아닌 상황에서는 누구나 입장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며 나를 반성하는 것.



여기, 별 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 얘기가 있다.

레이먼트 카버 '대성당'에 실린 별 것 아닌 이야기는 이런 것.


소설 속 빵집을 찾은 이들. 아들의 생일날.. 사고로 아들을 잃어버린 이들이다.

빵집 주인은 사정도 모른 채 주문한 빵을 찾지 않은 이들에게 전화를 몇 차례 했고, 이들은 분노했다.

결국, 아들이 떠난 후 빵집을 찾았다. 상실의 아픔을 겪은 이들에게 빵집 주인은 자신의 '이야기'를 나눴고, 그들은 들었으며, 따뜻한 빵을 나눴다.

특별한 순간이다. 자신을 가장 분노케 하는 대상에게 진심 어린 위로를 받는 장면 말이다.


"나는 빵장수일 뿐이라오. 다른 뭐라고는 말 못 하겠소. 예전에, 그러니까 몇십 년 전에는 다른 종류의 인간이었을지도 몰라요. 지금은 그저 빵장수일 뿐이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한 일의 변명이 될 순 없겠지요. 그러나 진심으로 미안하게 됐습니다."

그저 그는 상황을 인정했고, 자신의 마음에 솔직했으며, 상대에게 사과했다.

잘못을 인정한 빵집 주인은 그들에게 전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를 건네었던 것이다.

따뜻한 롤빵과 어수룩한 사과의 말들을 통해서.


빵집 주인이 외로움에 대해서, 중년을 지나서 자신에게 찾아온 의심과 한계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할 때부터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들에게 그런 시절을 아이 없이 보내는 일이 어떤 것인지 말했다.

매일 오븐을 가득 채웠다가 다시 비워내는 일을 반복하면서 보내는 일이 어떤 것인지. 그가 만들고 또 만들었던 파티 음식. 축하 케이크들. 손가락이 푹 잠길 만큼의 당의(糖衣). 케이크에 세워두는 작은 신혼부부 인형들. 몇백, 아니 지금까지 몇천에 달할 것들. 생일들.. 그 많은 촛불들이 타오르는 것을 상상해보라. 그는 반드시 필요한 일을 했다. 그는 빵집 주인이었다. 그는 자신이 꽃장수가 아니라 좋았다. 사람들이 먹을 것을 만드는 게 더 좋았다. 언제라도 빵 냄새는 꽃향기보다 더 좋았다.

... 그들은 그에게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먹을 수 있는 만큼 먹었다. 그들은 검은 빵을 삼켰다.

형광등 불빛 아래에 있는데, 그 빛이 마치 햇빛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이른 아침이 될 때까지, 창으로 희미한 햇살이 높게 비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는데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확신에 빠져있는 한, 나는 '옳다'는 태도를 견지하는 한,

사람은 누군가의 상처, 아픔과 진지하게 마주할 수 없다.

어수룩하지만 인정하고, 수용한다는 건 '고통'이 아닌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순간이다.

요즘 부쩍 마음을 헤집는 별 것 아닌 일들과 마주한다.

흥분 대신 들뜬 마음을 안정시키고, 날 선 언어를 삼킨다.

증오, 분노 대신 연민의 마음을 길어 올린다.

오해는 어느새 특별한 이해로 다가온다.

오해의 확신보다는 이해의 의지가 필요한 지금.

위로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리고 의외의 곳, 별 것 아닌 것에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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