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달아나는 나의 삶에 말 걸고
<문장 처방 - 마흔의 마음을 설명하다>
by roman editor Apr 30. 2019
<제대로 듣고 싶은 마음을 위한
문장 처방>
우리 삶이 불안정해지고 세상이 더 큰 불행으로 나아갈 때 글쓰기는 자꾸만 달아나는 나의 삶에 말 걸고, 사물의 참모습을 붙잡고, 살아있는 것들을 살게 하고, 인간의 존엄을 사유하는 수단이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
나른한 오후. 거실 탁자 위에 노트북을 펼쳤다.
열어 둔 창문 틈 사이로 창문 밖 세상의 이런저런 소리가 차곡차곡 들어온다.
평소 글을 쓰거나, 일을 할 때에는 약간의 소음을 방치해 둔다. 오히려 집중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이 창문으로 들어오는 이런저런 소음들을 흘려보내던 중... 귀로 들어오는 어떤 소리가
마음 한편을 차지한다. 싸리 빗자루 소리.
아파트 마당을 쓸고 계신 아저씨의 빗자루 소리. 오늘따라 싹싹 싹싹~ 세상의 온갖 찌꺼기들을 말끔히 쓸어버릴 태세로 내 마음을 쓸어 담는다.
그러고 보니 어릴 적 듣던 소리다.
아침마다 빗자루로 마당을 정성스럽게 쓸며 삶을 가꾸시던 외할머니의 소리이기도 하다.
사실 난 얼마 전까지 공업용 귀마개로 귀를 틀어막고 일을 하거나 글을 썼다. 세상의 소리들이 싫어서다.
직장 생활 중 터득한 소음 대처법이기도 하다.
이런저런 소리에 반응하다가 내 삶 조차 조각나 버렸던.
회사에서 오가는 날 선 언어들로 너덜너덜 만신창이가 되었던.
결국 무심하기로 결심했다. 소리에 소진되는 것들을 최소화시키는 나름의 방식.
무심함은 어쩌면 두려움의 다른 말일지도 모른다. 무심코 닥친 어떤 작은 소리에 혹시나 다칠까 봐, 아플까 봐, 상처로 다가올까 봐. 외면할 수밖에 없는 극도의 두려운 상태.
이젠 열어 둬도 될 만큼 회복된 걸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까지 하니 말이다.
귀 막음은 듣지 않아도 되는 소리를 듣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지만, 들어도 좋은 소리까지 차단한다는 단점도 있다.
싸리 빗자루 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인식하지 못했던 소리의 존재들.
세상의 소리에 좀 더 마음을 열기로 한다.
용기 내어 보기로 한다
듣고 싶었던 소리가 들릴지도 모르니.
그리운 이의 소리가 들릴지도 모르니.
그렇게 난 세상의 이런저런 소리를 받아들이는 중이다.
싸리빗자루 소리 덕분에... 어떤 소리든 듣고 싶어 진다.
다행이다.
"우리 삶이 불안정해지고 세상이 더 큰 불행으로 나아갈 때 글쓰기는 자꾸만 달아나는 나의 삶에 말 걸고, 사물의 참모습을 붙잡고, 살아있는 것들을 살게 하고, 인간의 존엄을 사유하는 수단이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라는 은유 작가의 말이 오늘의 나를 설명한다.
그러게 말이다.
오늘 그리고 나를 쓰다 보니 어느새 말을 걸고, 붙잡고, 살게 하고, 사유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