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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editor Oct 30. 2019

깊고 진한 삶의 순간에

마흔의 마음을 쓰다

몇 달은 묵혔다. 아니 가만히 두었다.

차곡차곡 병에 물을 채우듯 쓸 마음을 쌓았다.


살다 보면 그런 때가 있다. 가만히 두고 봐야 할 때, 꼼짝없이 멈춰야 할 때, 납작히 엎드려있어야만 할 때.

요 몇 달이 그랬다. 몸이 제 맘을 따라가지 못했다.

이럴 때일수록 마음은 초조하다. 해야 할 일을 못한 것 마냥 안절부절이다.


하릴없이 창밖으로 시선을 주기만 했다.    

침묵으로 이어지는, 종일의 시간. 막연한 불안감과 초조감 때문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지루하게 흘러갔다.    

멈춰야 하는 현실과 불안한 심리적 상태가 어우러져 빚어내는 빛깔로 집은 온통 깊게 가라앉았고, 그 안에서 난 스스로를 달래느라 종일 부산했다.

어둠이 오면 금세 녹초가 되어 침대에 쓰러지곤 했다.


적막의 시간을 흘려보냈다. 아니 버텨냈다.

그리고 찾아든 고요함.

불안이 요동치던 마음이 점점 잔잔해졌다. 몸도 덩달아 산뜻해졌다.

햇살이 따뜻하게 두 뺨에 다가왔다. 익어가는 계절만큼 제 빛깔을 찾아가는 나뭇잎을 다정하게 바라봤다.


삶의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후부터다.

인정하고, 순응하게 된.


흐트러진 집안을 정리하고, 아무렇게나 쌓인 책들을 제자리에 꽂았다.

다시 라디오를 켰다.

흘러나오는 음악이 달콤했다.


우리의 사는 일을 생각했다. 

삶의 모든 순간을 기꺼이 내 것으로 받아들여지던 그 순간을 떠올렸다.


범상하고 평범한 인생의 나날들의 사소한 변화들이 기적의 연속임을 진실로 깨닫게 되는 때,

일생을 허위허위 달려, 어느덧 눈길과 마음에 닿는 모든 것이 경이롭고 신선해지는 때,

삶의 모든 것이 신의 축복으로 여겨지는 순간,


삶은 한층 더 깊어진다는 사실을.

깊고 진한 라테를 머금은 마냥 삶이 사랑스러웠다.


살아온 시간은 켜켜이 나이테를 이루며 내부에 축적되어 내면화한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람마다 다 다른 그 결이 보인다. 나뭇잎의 흔들림에서 바람의 존재를 느끼듯 우리는 변화로써 시간의 흐름을 감지한다.


- 오정희 , 내마음의 무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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