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00 예방' 현수막 대신 이것

교실 창가에

by 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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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랑생가에 들러 다포를 샀다. '동백닙에 빗나는 마음', 옛날 표기가 정겹다. 아이들과 의논해서 운동장 쪽 창가 블라인드에 이어 붙였다. 멀리 하늘과 산을 배경으로 영랑의 마음을 걸었다.

학교 주변이나 교문에는 여러 가지 현수막이 일 년 내내 걸려있다. '00 00 없는 안전한 학교', '00 예방교육', '안심하고 자녀 학교 보내기'. 심지어 학교 전담 경찰관의 사진과 이름과 연락처를 크게 출력하여 게시한 경우도 있다.

00 00, 입에 올리기도 조심스러운 그 말을 붉은색으로 강조해서 커다랗게 인쇄한 현수막이 콘크리트 담장을 배경으로 펄럭이는, 그 길을 우리 아이들이 매일 지나다니고 있다. '생명을 존중'한다면 한번 더 생각해 봐야 할 '00 예방'도 있다. 안심하고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것이 현수막을 거는 일로 가능해 질까?

요즘엔 더러 시구나 노래 가사, 또는 드라마 제목을 인용한 말랑말랑한 문구로 주제를 표현한 현수막도 등장했다. 하지만 현수막은 어디까지나 현수막인 것이다.


마음을 붙잡아야 사람을 잡은 것이다. 비유도 상징도 없이 직설로 주입하는 현수막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현수막은 개업 알림이나 행사 홍보용으로 쓸 일이다. 교실에는 시와 그림과 식물이 있으면 된다. 현수막 대신 창가에 시를 걸어 바람에 나부끼게 하자.

목에 구멍이 난 채 창고에 방치되어 있던 비너스도 데려왔다. 먼지를 닦고 상처에 종이 코스터를 붙여주었다. 시들하던 제라늄은 햇볕을 보니 다시 꽃을 피웠다.

패브릭과 식물은 인테리어의 기본이다. 아무렇게나 놓아도 실패하지 않을 소재다. 물론 아이들의 마음은 매우 많이 많이 포근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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