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서평
기존 빈곤에 관한 논의는 '빈곤이 개인적 책임인가 아니면 사회·구조적 책임인가' 혹은 '개발도상국의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선진국이 원조를 해야 하는가' 등으로 이루어져왔다.
하지만 이러한 추상적인 수준의 논쟁은 개발도상국의 빈곤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엄청난 돈을 개발도상국에 지원했음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빈곤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의 저자인 아비지트 배너지와 에스테르 뒤플로는 이러한 기존의 논의를 뒤집고,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사람들이 직면하고 있는 빈곤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연구했다.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의 정책적 함의는 정책을 기획·실행함에 있어 정책의 대상자인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의 방식, 의견 등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빈곤 구제 정책 등 재분배 정책은 정책 설계자와 정책대상자의 소득계층이 차이가 클 가능성이 높으므로 이러한 정책적 함의를 반영해야 한다.
본 책의 저자들은 원조 정책에 관하여 기존에 논의되던 '선진국의 개발도상국에 대한 원조는 지속되어야 하는가' 등의 추상적인 논의에서 벗어나 실질적으로 개발도상국 국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할 방안을 연구했다.
일례로, 아비지트 배너지와 에스테르 뒤플로는 인도 라자스탄 지역에서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방식의 원조정책 실험을 진행했다.
기존에는 개발도상국 정부와 원조기구, 선진국이 개발도상국 국민에게 예방접종의 효과를 홍보하고, 백신을 제공하여 예방접종을 무료로 해주는 방식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으로는 낮은 접종률이 높아지지 않았고, 라자스탄 지역에서는 약 2% 정도의 아이만 필수 예방접종을 했다.
개발도상국에서 아동의 예방접종률이 낮은 이유에 대해 여러 학자들은 지역 토착 미신 때문이라는 등 선진국의 원조정책에는 문제가 없고, 개발도상국 국민들이 미개하기 때문이라는 식의 분석을 내놓았다.
하지만 본 책의 저자들은 ‘왜 부모들이 무료 예방접종을 거부하는지, 어떻게 해야 아이들이 보건소에서 예방접종을 맞을 수 있는지’ 등을 알아내기 위해 직접 현장에 방문하여 실험을 진행하였다.
아비지트 배너지와 에스테르 뒤플로 연구팀은 무작위로 마을을 선정한 후 세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실험을 진행하였다.
첫 번째 그룹은 기존의 예방접종 방식과 동일하게 예방접종을 진행하였고, 두 번째 그룹은 간호사들이 직접 예방접종을 독려했다. 세 번째 그룹은 아이가 예방접종을 맞으면 부모에게 콩 2파운드를 제공했고, 필수 예방접종 5가지를 모두 맞으면 스테인리스 쟁반 세트를 주었다.
세 그룹으로 나누어 실험을 진행한 결과, 6개월 후 각 그룹의 접종률을 살펴보니, 콩과 쟁반을 준 세 번째 그룹의 아이들 중 38%가 예방접종을 했고, 간호사들이 예방접종을 독려한 두 번째 그룹은 17%, 아무 변화가 없던 첫 번째 그룹은 6%만이 예방접종을 했었다.
연구진은 부모들도 아이들이 예방접종을 맞는 게 더 유익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예방접종을 받으러 오는 데 드는 시간과 노력 등 가난한 부모가 당장 입게 되는 손실로 인해 예방접종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를 통해 부모들에게 콩 2파운드만 제공하더라도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밝혀냈다. 이는 기존의 방식과는 달리 개발도상국 국민들이 처한 현실과 삶을 정확히 이해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결과였다.
아비지트 배너지와 에스테르 뒤플로는 이 외에도 15년간 약 40여 개 나라에 방문하여 개발도상국 사람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생활을 연구하고 분석했다.
이를 통해 개발도상국의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난한 사람들의 현실과 생각, 행동을 이해해야 한다는 정책적 함의를 도출해냈다.
이러한 정책적 함의에 도달하기 위해 이들이 사용한 방식은 무작위 대조실험법을 경제학과 정책에 접목시킨 것인데, 무작위 대조실험을 통해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이유를 밝혀냈고, 더 효과적인 해결 방안을 도출해낼 수 있었다.
이들은 직접 개발도상국에 찾아가 가난한 사람들의 일상과 그들 국가의 제도를 면밀히 살핀 후, 선진국의 원조 정책 결정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행동 양식을 우선적으로 이해했다.
특히 과학적 연구 방법을 활용하여 ‘어떻게 하면 원조 정책의 효과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지’에 대해 연구했는데, 이를 통해 효율적인 원조를 위해서는 ‘정책을 수립할 때 가난한 사람들의 눈높이를 맞추고, 그들의 구체적인 삶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즉, 이들의 연구는 효과적인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서 정책 대상자의 삶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에 맞는 처방을 해야 한다는 함의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