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사회> 서평
"한국 교육은 극장에서 일어나서 영화를 보는 것과 같다." 장하준 런던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사교육이 만연한 우리나라의 현실을 이렇게 비유한다. 경쟁은 점차 심화되었고, 불필요한 것까지 과하게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 초래되었다.
어린 나이부터 여러 개의 사교육을 받으며 자기 착취는 시작된다. 심지어 유치원 때 미적분까지 한다는 '유치원 의대반'이 등장할 정도이다. <피로사회>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는 이러한 현대사회의 모습의 원인을 다룬다.
한병철 교수의 <피로사회>는 현대 사회의 고질적인 질병의 원인을 진단하는 책이다. 그는 21세기 현대 사회를 '성과사회'로 규정한다. 성과사회란 개개인이 '복종적 주체'가 아니라 '성과주체'로서 활동하는 사회를 말하며, '그들은 자기 자신을 경영하는 기업가'가 된다고 표현한다.
한국 사회는 작가가 제시하는 ’성과사회‘의 대표적인 예시이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근로시간은 1,915시간으로 OECD 36개국 중 4위이다. 이는 OECD 평균인 1,716시간보다 199시간 많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노동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사회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특히 이런 주장이 사용자 집단뿐만 아니라 노동자 집단에서도 나온다는 것이 주목할 만한 점이다.
앞서 언급했듯 성과사회의 면모는 노동 분야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학교에 들어가 소위 명문 대학, ‘의치한약수’에 들어가기 위해 끊임없는 경쟁을 하고, 만족할 만한 집단에 들어가도 무한 경쟁은 이어진다.
이러한 경쟁은 법적으로 규율되어 일어난다거나 권력자에 의해 강제되지 않는다. 온전히 스스로의 의지로, 보다 나은 성과를 위해 자기 자신을 착취하는 것이다. 자기 착취도 고통을 낳는다. 그래서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들도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만은 않는다. 의대생, 로스쿨생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거나, 자살을 했다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리는 것도 성과사회의 결과물이다.
작가는 성과사회로 인하여 ‘우울증,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 소진 증후군’ 등이 나타난다고 한다. 약 85만 명의 사람들이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았고, 최근 5년간 우울증 환자가 35% 이상 증가했다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발표는 작가의 진단과 일치하는 모습을 보인다.
21세기의 사회는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변모했다.
이 책의 핵심적인 주장은 패러다임이 교체되었다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면역학적 패러다임(금지, 강제, 규율, 의무, 결핍 등)이 지배하는 사회였다면, 20세기 이후부터는 긍정성의 패러다임(능력, 성과, 자기 주도, 과잉 등)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다.
그래서 더 이상 한 개인을 착취하는 대상은 직접적으로 지각되지 않으며, 스스로를 '포화'시키고 '고갈'시킨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해야 하고, 쉬지 못하는 상태가 되며 쉬게 되더라도 제대로 된 휴식이 아닌 불안감이 찾아온다. 이런 내용은 내 삶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공감되었다.
<피로사회>는 성과사회로의 패러다임 전환과 이를 기반으로 현대 사회의 여러 문제를 진단하지만, 따로 해결책을 제시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 문제의 원인을 기존 이론과는 다른 관점에서 진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아울러 역자 후기에서는 이러한 긍정성의 패러다임을 지각해야 개인이 변화할 수 있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 책을 읽는 분들은 역자 후기를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책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 역자 후기가 큰 도움이 되었다. 얇아서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내용은 어렵고 무거웠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을 작가의 분석틀로 원인을 진단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특히 이전에는 개인을 행복하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 '금지, 강제, 규율, 의무'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쉽게 찾아낼 수 있었고, 분노하거나 변화시킬 수 있었지만 지금은 '능력, 성과, 자기 주도'의 탈을 쓰고 있어서 찾아내지 못하는 것 같다. 결국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개인의 온전한 삶을 방해하는 것은 모습만 변화한 것일 뿐 속으면 안 된다는 것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