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복지국가의 짐

<복지의 원리> 서평

by JOHN

"정부의 존재 이유인 국민 보호와 공공복지에 있어서 국민이 정부를 신뢰하지 못한다면 그 정부는 다른 모든 것도 잃은 것입니다."


버락 오바마의 복지 정책에 관한 격언이다. 이 말처럼 국가의 역할에 있어 좋은 복지 제도를 설계하는 것은 중요하다.


현대 사회에서 사회복지 제도는 존엄한 인간의 삶을 위해 필수적이기 때문에 사회적 안전망을 제대로 만드는 것은 현대 복지국가의 지대한 관심사이다.


<복지의 원리>는 이러한 현대 복지국가의 역할을 다루는 책이다. 복지국가의 탄생부터 철학, 의료보험/국민연금/퇴직연금 등의 사회보험제도, 미래 사회보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기본소득까지 복지 정책 전반에 대해 다루고 있다.


특히 <복지의 원리>는 기본소득 도입으로 인한 문제점과 한계에 대해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다룬다.


지난 대선 전후로 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논의가 심층적으로 이뤄졌는데, 양재진 교수가 대중에 알려지게 된 계기 역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기본소득과 보편적 복지'에 관한 토론이기도 하다.


저자는 통용되는 기본소득의 정의대로 기본소득 제도를 도입하여 전 국민에게 월 50만 원을 지급한다고 가정하면, 비용이 과도하게 든다고 지적한다.


이는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하는 측에서 제시하는 토지세, 탄소세 등을 도입한다 하더라도 비현실적이며, 오히려 기존 공적부조, 사회보험 제도의 폐지 혹은 축소를 우려한다.


다시 말해, 기본소득을 도입하게 되면 다른 사회보장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기본소득에 필요한 막대한 재원으로 인해 기본소득 이외의 복지제도는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의 사회복지정책은 사회 연대에 기반을 두고 있다. 빈곤, 노령, 질병, 출산, 실업 등 사회적 위험(social risk)에 처하지 않은 사람이 사회적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돕는 구조이다.


그러나 기본소득 도입 후 대다수의 복지 제도를 기본소득에 의존하게 되면, 개인이 알아서 사회적 위험에 대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각자도생의 사회가 심화될 것이고, 제도 변화로 인한 사회적 분위기나 문화가 변화되어 이기주의적 개인주의가 심화될 수 있다.


특히 사회적 위험의 대처가 개인의 몫으로 전가되어 있기 때문에 사회복지제도의 본래적 목표인 '사회적 위험으로부터의 보호'를 달성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 오히려 기본소득에 사용될 재원으로 사회보장제도를 강화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한 방안인 것이다.


복지국가는 실업, 출산·육아, 은퇴 등 수입이 중단되는 사회적 위험에 빠졌을 때만 개입해 소득을 보장해 준다. (중략) 그렇다고 해서 선별주의 복지국가라고 부르지 않는다. 누구나 어려움에 빠지면 보호받을 권리가 보편적으로 보장되기 때문이다.

<복지의 원리>, 249쪽.


기본소득 도입에 반대하면, 보편적 복지를 배척하고 선별적 복지를 주장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의 이분법적 구분에서 비롯된 문제이다.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이 급여를 받아야 하는 게 아니다. 소득과 재산에 관계없이 사회적 위험에 처하게 되었을 때, 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제도와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언젠가는 인공지능이 고도로 발전해서 인간의 모든 노동을 대체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공산주의적 유토피아와 유사한 모습으로 모든 생산은 인공지능이 하고, 인간은 그 부산물로 생활하게 되어 국가는 기본소득의 형태로 개인에게 소득을 보장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생활이 예상된다고 하여 지금 당장 기본소득을 도입할 필요는 없다. 저자의 의견처럼 차라리 기본소득 기금을 모아두는 것이 더 낫다.


다른 분야와는 달리 유독 사회복지학 분야는 '교양서적'이 부족한 것 같다. <복지의 원리>는 사회복지학의 교양 도서로서 좋은 역할을 하는 책이며, 사회복지학의 분야 중에서도 사회복지정책에 관련된 책이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려는 사람, 사회복지정책에 관심이 많은 사람, 특히 기본소득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의 주장은 무엇인지 알고 싶은 사람은 <복지의 원리>를 읽어보길 권한다.


image.png


매거진의 이전글무한 경쟁과 자기 착취의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