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를 얻기 위한 현장 관찰 수행법
1편에서는 현장 관찰의 개념과 계획 수립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2편에서는 현장에서의 연구자의 자세와, 수집한 데이터를 정리하고 기록, 분석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글을 풀어가다 보니, 현장 관찰의 과정이 다소 무겁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글은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현장 관찰에 대한 저의 경험과 고민을 나누는 것에 가깝습니다.
이 내용들을 바탕으로, 각자의 상황에 맞게 필요한 부분들을 취사선택하여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럼 2편 시작하겠습니다.
정성 연구의 근본은 연구자 본인이 가장 핵심적인 데이터 수집 도구이자 해석의 주체라는 점입니다. 연구자의 감각, 지식, 그리고 사회적 단서를 해석하는 능력 등은 어떤 도구보다 정교하고 강력합니다. 이 말은 반대로 준비되지 않은 연구자는 어떻게 해도 의미 없는 정보만을 가지고 올 수도 있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연구자의 역량은 포착 가능한 데이터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사람들 사이의 미묘한 감정을 잘 읽는 관찰자는 회의실의 보이지 않는 긴장감을 민감하게 포착할 것이고, 사람의 몸동작에 예민한 관찰자는 사용자가 무심코 짓는 표정이나 작은 흠칫거림을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참여하는 관찰자들이 각자 어떤 강점을 가졌는지 미리 파악하고 역할을 분담하는 것은 관찰의 질을 높이는 현명한 전략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이러한 미묘한 데이터는 오직 인간이라는 도구만이 포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 감각으로 느껴야 하는 데이터가 분명 존재합니다. 관찰의 편의를 위해 녹화된 2차원 화면에만 의존한다면, 우리는 실제 세상에 존재하는 3차원적이고 입체적인 감각 정보, 즉 공간의 분위기, 미묘한 소리의 변화, 사람들의 기척과 같은 살아있는 데이터를 놓칠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혼잡한 통근 열차 안에서 모바일 앱을 사용하는 사용자를 관찰할 때, 연구자는 단순히 화면 터치만을 기록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변의 소음, 흔들리는 열차, 비좁은 공간, 사용자의 불편한 자세와 표정 등 연구자의 몸이 직접 겪는 모든 환경적 요소가 데이터가 됩니다. 연구자의 신체는 주어진 맥락의 미묘하고 비언어적이며 분위기적인 데이터를 흡수하는 매개체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연구자가 도구라는 개념은 '편향'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연구자의 주관성은 다른 어떤 도구로도 접근할 수 없는 깊이 있는 데이터 포착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1편에서 관찰 시 판단을 미루고 사실 위주로 기록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편향으로 인한 정보 왜곡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관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데이터의 옳고 그름을 섣불리 평가하는 행위'를 통제하는 동시에, '중요한 것을 가려내는 안목'과 '사용자의 감정과 관계의 흐름을 이해하는 공감 능력'은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관성 안에서 명확한 경계를 설정하고 지키는 것이 숙련된 연구자의 능력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현장 관찰에서는 연구자가 본인의 역할과 특성, 그리고 단점까지 모두 파악하고 자신을 적절한 도구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현장 관찰에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제가 생각하는 현장 관찰은 보는 것보다 발견하는 시간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현장 관찰 수행 시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는게 아니라 의미 있는 것들을 포착하기 위한 시간으로 정말 집중하는게 중요합니다. 제가 처음 현장 관찰을 나갔을 때 현장의 장면들이 신기하고 새로운게 많아 여기저기 둘러보다 정작 얻고자 했던 중요한 데이터에 소홀히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관찰과 집중력의 상관관계에 대해 항상 인지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계획을 잘 세워두어도 현장에 방문하면 상황에 집중하지 못하고,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바라보고 잘 기록한다면 그것도 나름 성과가 있는 관찰일 것입니다. 하지만 멍하니 바라보는 관찰은 기록 마저도 충실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순간이 많아졌을 때 관찰에서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맥락없이 데이터들을 포착하게 되어 관계성을 파악하기 어렵고 의미 없는 내용을 수집
기억에만 의존하여 데이터를 수집하게 되고 쉽게 변형되거나 사라져 추후 보관할 수 없음
자신도 모르게 기존의 생각과 일치하는 현상에만 집중하며, 데이터를 편향된 시선으로 해석하는 확증 편향에 빠짐
앞서 언급한 문제들을 피하려면, 현장에서 관찰을 수행하는 주체, 즉 '관찰자이자 연구자'는 자신이 어떤 목적과 미션을 가지고 이 과정에 참여하는지 명확히 인식하고 현장에서 집중해야만 합니다. 윗 단락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는 연구자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이 도구를 가장 예리하게 사용하는 법은 현장의 상황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관찰 수행 시 무엇을 어떻게 기록해야 할지 막막하다면 사용해보면 좋을 두 프레임워크를 소개합니다. 일부를 선택하거나 조합할 수 있고, 관찰 수행 시 길을 잃지 않도록 돕는 도구의 역할을 합니다.
AEIOU : 어떤 상황이든 사용하기 좋은 프레임워크
활동 (Activities): 사람들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행하는 구체적인 행동과 과정
환경 (Environments): 활동이 일어나는 전체적인 공간의 성격과 기능
상호작용 (Interactions): 사람과 사람, 또는 사람과 사물 사이에서 발생하는 교류. 활동의 기본 단위
사물 (Objects): 환경을 구성하는 물리적, 디지털 객체들. 때로는 의도치 않은 방식으로 사용되기도 함
사용자 (Users): 관찰 대상이 되는 사람들. 그들의 역할, 관계, 가치관 등이 포함
POEMS : 제품이 아닌 서비스 관점에 집중하는 프레임워크
사람 (People): 현장에 있는 다양한 그룹의 사람들. 그들이 누구이며, 왜 거기에 있는지
사물 (Objects): 환경 내에 존재하는 객체들과 그들 간의 관계
환경 (Environments): 활동이 발생하는 다양한 공간과 그 맥락
메시지 (Messages): 언어적, 비언어적으로 전달되는 모든 정보와 소통의 내용
서비스 (Services): 해당 맥락에서 사용 가능한 지원 시스템이나 프로세스
이런 관점들을 이해하고 현장에서 많은 데이터들을 수집하고 나면 굉장히 피로해집니다. 관찰시간 내내 집중해야 하고, 머리속에는 많은 기억들이 남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관찰이 끝나고 나면 안도감과 함께 뒷처리에 대한 피로를 느끼게 됩니다. 빨리 퇴근하고 싶기도 하고 동료들과 회식을 가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순간이 정말 중요하고, 많은 것들을 남길 수 있는 시간입니다. 아주 중요한 데이터들을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인 '디브리핑'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디브리핑은 인터뷰와 같은 연구 활동이나 회의 등을 마치고 경험 했던 세션을 복기하며 정보의 해상도를 높이는 작업입니다. 이는 단순히 정보를 취합하는 회의가 아니라, 연구자, 관찰자가 수집한 데이터에 영향을 미쳤을지 모를 관찰자 편향을 바로잡는 행위입니다. 동료가 미처 보지 못한 내용을 채워주기도 하며,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데이터에 대한 타인의 관찰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디브리핑 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가장 간단한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시간 순서대로 관찰한 내용이나 생각들을 한명씩 돌아가며 이야기 해봅시다.
우리가 가졌던 초기 가설과 일치했던 부분 혹은 달랐던 부분, 가설과 연관이 있는 부분들이 있었나요?
참여한 관찰자 중 자신이 놓쳤다고 생각하거나 의문이 들었던 부분이 있나요?
이러한 방식처럼 수집한 데이터들의 잘못되었을지 모를 부분들을 확인하는 작업을 거치면 됩니다. 모든 구성원의 시간을 사용하기 어렵다면, 연구 책임자나 한 명의 인원을 정해서 기록한 데이터를 빠르게 훑어보고 그 데이터를 기록한 인원에게 질문하는 방식으로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습니다.
디브리핑의 중요한 점은 시간입니다. 관찰 활동이 끝나고 많은 시간이 지난 후 디브리핑을 실시하면, 중요한 내용을 놓치기 쉽고 바로 해석의 영역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현장 관찰을 마친 후 바로 디브리핑을 거치길 권장합니다.
관찰과 디브리핑을 마쳤다면, 이제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 가능한 형태로 정제할 차례입니다. 기록된 정보는 텍스트, 사진, 영상, 음성 등 다양한 형태를 띄며, 이는 다시 수치로 표현되는 정량적 데이터와 사용자의 의견이나 맥락을 담은 정성적 데이터로 나눌 수 있습니다. 특히 영상이나 음성 데이터는 내용을 직접 들으며 텍스트로 변환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 과정에서 특정 의견의 빈도를 세어 정량 데이터로 만들기도 합니다.
이렇게 정제된 데이터는 분석 목적에 맞게 체계적으로 정리해야 합니다. 흩어진 데이터 속에서 의미 있는 패턴과 주제를 발견하기 위해 다양한 프레임워크를 활용할 수 있으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어피니티 다이어그램(Affinity Diagram)입니다.
1. 데이터 조각화
수집한 데이터(관찰 기록, 인터뷰 내용 등)를 의미 있는 최소 단위로 쪼개어 포스트잇과 같은 카드에 하나씩 적습니다.
2. 그룹핑
흩어져 있는 데이터 조각들을 살펴보며 유사하거나 관련 있는 것끼리 그룹으로 묶습니다. 이 과정에서는 판단을 보류하고 직관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3. 그룹 이름 부여
형성된 각 그룹의 핵심 내용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이름을 붙여줍니다. 이 이름 자체가 하나의 작은 발견이 됩니다.
4. 상위 그룹핑
만들어진 그룹들 간의 관계를 파악하여 더 크고 종합적인 상위 그룹으로 묶어내며 전체 데이터의 구조를 파악합니다.
단순히 데이터를 묶는 것을 넘어 그 의미를 깊이 있게 파악하려면, 분석의 '관점'을 정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짧은 순간에 일어나는 모든 정보를 포착할 수 없기에 (실내에서 앱을 사용하는 사용자를 관찰할 때 창밖의 구름에 주목할 필요는 없듯) 중요한 것에 집중하여 기록하고 해석해야 합니다.
이때 도움이 될 수 있는, 서로 배타적이지 않은 세 가지 분석 관점을 소개합니다. 이는 분석의 대상을 어디에 둘지 정하는 '초점의 차이'로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인물 중심의 관점
행위의 '왜(Why)'에 집중합니다. 사용자의 내면에 집중합니다. 관찰되는 행동 이면에 숨어있는 개인의 목표, 동기, 가치관, 감정, 그리고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멘탈 모델)을 파악하고자 합니다. 특정 인물의 경험을 깊이 있게 따라가며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세상을 이해하려는 시도입니다.
사건 중심의 관점
과정의 '무엇을(What)'과 '어떻게(How)'에 집중합니다. 특정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 일어나는 일련의 과정과 흐름을 파악합니다. 여러 인물과 객체가 얽혀 발생하는 상호작용의 순서, 각 단계별 과업, 그리고 전체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이나 병목 현상을 구조적으로 이해하고자 합니다.
객체 중심의 관점
도구의 '역할(Role)'과 '쓰임새(Usability)'에 집중합니다. 특정 제품, 기능, UI와 같은 인공물이 사용자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중점을 둡니다. 사용자가 그 도구를 어떻게 인식하고 사용하며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 그리고 그 도구가 전체 사건과 인물의 경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하고자 합니다. 특히, 사용성이나 어포던스에 대해 파악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이 세 관점을 이해하였다면 어피니티 다이어그램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데이터 조각들을 그룹으로 묶고 이름을 붙일 때 다음 질문들을 해볼 수 있습니다.
"이 그룹은 사용자의 내면 동기에 대한 이야기인가?" (인물 중심)
"이 그룹은 테스크를 수행하는 과정의 문제점을 보여주는가?" (사건 중심)
"이 그룹은 특정 제품이나 기능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것인가?" (객체 중심)
이 질문들은 이후 정리 후 의미를 찾는 단계에서 어떤 형태로 사용자 경험을 이해할지의 단서가 되어 줍니다.
현장관찰의 3가지 구성요소에서 관찰자, 사용자, 장소(맥락)이 있다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올바른 현장관찰이 되었다면 수집한 데이터는 이 세가지가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어피니티 다이어그램으로 데이터 분석을 마쳤다면, 이제는 몇가지 의미 찾기 프레임워크를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페르소나
현장 관찰을 제대로 수행했다면 세 요소 중 하나인 ‘사용자’는 반드시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관찰을 통해 사용자의 특징을 파악한다면 데스크 리서치만으로는 얻기 힘든 현실적인 페르소나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 실제 행동을 관찰했으므로 그 행태를 페르소나에 반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장 관찰은 아무리 비중을 두더라도 인원수에 한계가 있습니다. 예컨대 사용자 1,000명을 모두 관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효율이 떨어지는 방식입니다. 이럴 때 데스크 리서치로 발견한 통계나 대량의 데이터를 페르소나의 근거로 삼고, 여기에 현장 관찰 정보를 더해 함께 구성한다면 훨씬 탄탄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습니다.
Jobs To Be Done(JTBD)
페르소나가 '누구'를 정의했다면, JTBD는 그들이 우리 제품을 '왜' 사용하는지, 즉 근본적인 목표를 파악하게 돕습니다. 이 프레임워크는 사용자가 단순히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상황에서 '해결해야 할 과업(Job)'을 완수하기 위해 제품을 '고용'한다는 관점으로 보는 것입니다. 현장 관찰을 통해 사용자가 처한 진짜 문제 상황과 해결하고 싶은 과업을 이해하면, 우리 제품이 제공해야 할 핵심 가치를 명확히 정의할 수 있습니다.
또한 JTBD를 통해 정리된 내용은 우리만의 고유한 스토리가 됩니다. 이러한 현장의 인사이트는 엘리베이터 피치처럼 짧은 순간에 우리 제품을 가장 매력적으로 표현해야 할 때 결정적인 도움이 됩니다. 수치를 나열하기보다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와 닿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구매 전환율 30% 향상'이라는 건조한 성과 대신, '하마터면 집에 불이 날 뻔한 나를 구해준 고마운 서비스'와 같은 이야기는 듣는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고, 제품을 훨씬 더 매력적으로 느끼게 만들 수 있습니다.
5 Why로 심층 분석하기
현장에서 발견한 주목할 만한 문제들은 심층 분석을 통해 그 원인을 파악해야 합니다. 이때 '5 Why' 기법은 문제의 표면이 아닌 근본 원인을 탐색하는 데 매우 효과적입니다.
'사용자가 키오스크의 카드 투입구를 찾지 못한다'는 문제가 관찰되었다면, 여기서부터 꼬리를 무는 질문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왜 사용자는 투입구를 찾지 못했는가?'라는 첫 질문을 던지고, 그 답에 다시 '왜?'라는 질문을 연이어 던지며 문제의 핵심에 다가섭니다. 이 과정의 성패는 참여자들의 역량에 크게 좌우됩니다. 얼마나 날카로운 질문을, 얼마나 깊이 있게 던지는가에 따라 우리가 발견하는 원인의 수준과 그로 인한 해결책의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사용자 여정 지도
사용자의 행동, 생각, 감정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정리하여 사용자 여정 지도나 서비스 블루프린트를 작성할 수 있습니다. 이때 소수의 현장 관찰만으로는 전체 사용자를 대변하기 어려우므로, 데스크 리서치로 확보한 정량 데이터와 결합하여 분석의 객관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용자 여정 지도는 문제점을 발견하고 개선 기회를 포착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특히 Google Analytics 같은 데이터 분석이 ‘무엇’이 일어났는지(결과)를 보여준다면, 여정 지도는 그 이면에 있는 ‘왜’(상황적 맥락)를 드러내 줍니다. 모든 서비스는 사용되는 환경과 사람에게 영향을 받기에, 이러한 맥락을 이해하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유저 스토리 맵
목표 달성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가’에 집중하는 제품 개발 프레임워크입니다.
사용자 여정 지도가 사용자의 감정과 경험의 흐름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면, 유저 스토리 맵은 그 여정을 바탕으로 ‘실질적으로 구현해야 할 기능’을 우선순위에 따라 구성한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이는 결국 사용자가 완수하려는 과업(JTBD)을 달성시키기 위해 제품의 개발 로드맵을 그리는 과정이므로, JTBD 프레임워크와 매우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물론 이 외에도 북극성 지표를 설정하거나 'How Might We' 질문을 던지는 등, 활용할 수 있는 방법론은 무수히 많습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어떤 방법론을 사용하는가보다 수집된 데이터를 통해 '무엇을 발견하고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결국 다양한 프레임워크는 흩어진 단서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기 위한 도구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경계해야 할 것은 수많은 방법론의 함정에 빠진 나머지, 정작 가장 중요한 사용자의 행동과 그 안에 담긴 진짜 의미를 놓치는 일입니다.
현장 관찰과 데이터 분석을 통해 어느 정도 의미 있는 발견을 했더라도, 질적 연구가 본질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표본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때 삼각 검증을 사용하면 데이터의 신뢰도를 높이고 명확한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도와줍니다.
1. 해석의 편향을 줄이는 내부 삼각 검증
데이터 수집 직후 디브리핑을 하는 이유는 관찰자의 편향을 바로잡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편향의 위험은 데이터를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단계에서도 동일하게 발생합니다. 같은 현상을 보고도 해석하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프레임워크에 맞춰 데이터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팀원 간의 충분한 토론을 거쳐 해석의 합의점을 찾아 나가는 과정은, 우리만의 아집이 아닌 객관적 사실에 더 가까워지기 위한 필수적인 검증 절차입니다.
2. 정량 데이터와 교차하여 실체를 파악하는 외부의 삼각 검증
정량 데이터와 정성 데이터의 교차 검증은 우리가 저지를 수 있는 치명적인 오해를 막아줍니다. 예를 들어, 퍼널 분석에서 ‘충성 고객’으로 분류된 유저가 심층 인터뷰에서는 ‘의도한 바를 찾지 못해 헤매는 사용자’로 밝혀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높은 서비스 체류 시간’이라는 정량적 결과가 ‘높은 애착’이 아닌 ‘혼란’의 증거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현상은 단 하나의 원인이 아닌, 수많은 맥락의 중첩으로 일어납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성격의 데이터를 결합하여 현상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때, 데이터의 착시에서 벗어나 본질을 더 명확하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AI의 발전으로 연구 방식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머지않아 현장에 가지 않고도 관찰을 수행하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현재의 관점에서 AI가 인간의 현장 관찰을 온전히 대체하는 상황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인간만이 포착하는 미묘한 디테일, 뚜렷한 목적의식, 그리고 과업을 완수하려는 의지는 AI가 아직 채우기 어려운 고유한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AI가 UX 연구에 있어 강력한 도구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며, 특히 현장 관찰에서는 관찰 행위 그 자체를 제외한 거의 모든 영역에서 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연구 설계 및 준비
관찰이 필요한 핵심 문제 제안
연구 목적에 맞는 계획, 절차, 체크리스트 초안 생성
효과적인 관점을 위한 프레임워크 적용법 및 관찰 포인트 추천
데이터 처리 및 관리
녹취록 작성, 텍스트 변환 등 반복적인 데이터 정리 작업 자동화
데이터의 누락, 형식 오류 검토를 통한 정합성 향상
해석을 위한 가설 제시
데이터 속 유의미한 패턴, 키워드 빈도, 감성 변화 등 발견 및 제시
어피니티 다이어그램의 초기 그룹핑 지원을 통한 분석 시간 단축
결과 보고 및 시각화
핵심 분석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결과 보고서 및 발표 자료 초안 생성
복잡한 데이터를 이해하기 쉬운 차트, 그래프 등으로 시각화
중요한 점은 데이터의 이해에서 인간의 강점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AI는 미세한 변화나 맥락적 파악을 명확히 할 수 없습니다. 이는 현장관찰 영상을 분석하더라도, 그 공간의 분위기나 사용자의 감각처럼 3차원적이고 오직 인간의 경험으로만 알 수 있는 의미는 포착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현재 인공지능은 방대한 데이터를 정리하고 논리적 오류를 점검하는 등, 연구자를 돕는 보조적 역할에 집중해야 합니다.
AI의 진정한 강점은 정량 데이터를 분석하거나 텍스트처럼 명시적인 정보를 처리할 때 발휘됩니다. 하지만 현장 관찰의 핵심인 사용자의 표정, 몸짓, 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 같은 비정형적이고 맥락적인 정보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는 명백한 한계를 보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AI의 한계가 오히려 인간 관찰의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물론 앞으로 정성 데이터 수집 방식이 어떻게 변화할지 정확히 예견하기는 어렵습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모두가 대면 인터뷰를 당연하게 여겼지만, 이제는 화상 인터뷰가 자연스러운 선택지가 된 것처럼 시대의 변화는 예측을 넘어섭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프롬프트 하나로 현장 관찰을 대신할 수는 없으며, 진짜 발견은 여전히 현장에 직접 관찰해야만 발견 가능합니다. 그렇기에 현장 관찰이 디자이너와 UX 리서처의 대체 불가능한 고유한 역량이자 영역으로 남는 이유입니다.
지금까지 현장 관찰을 수행하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제가 AI의 도움 없이 모든 과정을 직접 부딪히며 진행했던 실제 현장 관찰 사례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어려움이 많았기에 오히려 더 큰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경험이었습니다.
여기까지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