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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다리별 May 16. 2020

인생을 구하는 것은 행동과 경험이다.

도서리뷰: 그리스인 조르바

책에 파묻히고 이상에 젖어 인생을 살던 한 사람이 내부의 조용한 혁명을 위해, 그리고, 행동하는 인생으로 뛰어들기 위해 그전에 겪어보지 않은 여행 길로 과감히 뛰어들었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몸. 하지만, 하지만 마음이 번뇌의 항구에 여전히 닻을 내리고 움직이지 않는 한 그에게 진정한 자유에 대한 깨달음은 쉽사리 다가오지 않는다. 


여행길의 초입에서도, 그리고 들어선 여행길에서도 배운 지식과 뜨거운 열정으로 세상을 바꾸어 보겠다는,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부조리한 현실을 뒤집어 보겠다는 결심은 쉽사리 떨어내어 지지 않는다. 그리고, 집요하게 그의 어깨에 달라붙어 있어서 그의 여행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는 지식인적 이상에 대한 목마름과 조급함은 그의 여행을 방해할 뿐이다. 


그 여행길에서 길 잃은 여행자는 우연하게 그를 그가 원했던 방향으로 인도해 줄 동반자를 만난다. 여행자가 책과 글을 통해서 겪은, 그리고 겪었을 인생의 희로애락과 만고풍상을 삶의 최전방에서, 그리고 경험과, 피와 땀과 웃음과 눈물로 치열하게 겪어냈던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동반자. 알렉시스 조르바. 



여행의 초입길에서 머릿 속 저울을 떨쳐내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주인공에게 있어서 조르바는 “그가 오랫동안 찾아 다녔으나, 만날수 없었던 사람” 이었다.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의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우여곡절 끝에 진행되는 갈탄광 사업속에서의 조르바와의 갈등, 주인공이 마음 속에 들어왔던 과부의 어처구니없는 마녀사냥식의 죽음, 많은 남자들에게 버림받은 채 살다가 조르바와 사랑에 빠지고 조르바의 품 속에서 눈을 감은 늙은 캬바레 가수의 마지막을 체험하면서, 그리고 좌절과, 깊은 회한의 수렁 속에서 그 모든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조르바를 보면서, 주인공은 인생의 스승, 조르바의 충실한 수제자가 되어간다. 


책 속에서만 진리를 찾고, 삶의 가늠자를 현실에 맞추지 못하고 이상에 맞추면서도 내적인 방황을 하고 있는 주인공에게, 조르바는 책을 불태우고 바보를 벗어나라고 조언하고, 지식이 명령하는 것 또는 머리 속 천칭으로부터 판단하는 것이 아닌 가슴이 원하는 것을 몸에 품고 경험의 길을 나아갈 것을 강력하게 제안한다. 조르바가 주인공의 나약함을 꾸짖으면서 일갈하는 한 장면을 보자. 


“ 당신은 나를 그 잘난 머리로 이해합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이건 옳고 저건 그르다. 이건 진실이고 저건 아니다. 그 사람은 옳고 딴 놈은 틀렸다> 그래서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당신이 그런 말을 할때마다 나는 당신 팔과 가슴을 봅니다. 팔과 가슴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침묵한다 이겁니다. 한마디도 하지 않아요. 흡사 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것 같다 이겁니다. 그래 무엇으로 이해한다는 거요? 머리로? 웃기지 맙시다. “


‘살과 피로 싸우고 죽이고 입을 맞추면서’ 주인공이 ‘ 펜과 잉크로 배우려던 것들을 고스란히 살아온’ 조르바는 ‘고독 속에서 의자에 눌어붙어 풀어보려고 하던 문제’ 에 전전긍긍하며 행동하지 못하는 주인공에게 인생이라는 복잡하고 거대한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경험과 시행착오라는 칼을 이용하여 풀 것을 지속적으로 이야기 했던 것이고, 주인공 또한, 그러한 그러한 조언을 몸소 실행하며 보여주는 조르바를 보면서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변해 갈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야심차게 준비했던 목재운반 케이블 사업이 어처구니 없는 대실패로 끝났음에 불구하고 결과에 연연하지 않은 채, 조르바와 함께 해변가에서 술을 마시며 춤을 춘다. 춤은 단순한 육체의 율동이 아니었다. 춤은 ‘인생의 무게를 극복하려는 처절한 노력’이었으며, 춤의 스텝은 ‘모래위에 기록되는 인간의 신들린 역사’였다. 


모든 것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이 얻은 것은 뜻밖의 해방감이었다. 우연처럼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해방감은 ‘필연의 미궁’속에서 헤메던 주인공에게 자유의 탈출구를 열어준 아리아드네의 실이었다. 이 순간을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 모든 것이 어긋났을 때 자신의 영혼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고 그 인내와 용기를 시험에 보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보이지 않는 강력한 적이 우리를 쳐부수려고 달려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는 부서지지 않았다. 외부적으로 참패했으면서도 속으로는 정복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 인간은 더할 나위 없는 긍지와 환희를 느끼는 법이다. 외부적인 파멸은 지고의 행복으로 바뀌는 것이다.”


주인공이 발견한 진정한 자유는 책과 지식 속에 있는 것이 아닌, 치열한 자신의 외부와의 투쟁 속에서, 그 투쟁의 와중에 움직이는 자아의 변덕스러움을 극복하고 스스로 기준을 잡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것 속에서, 그리고 영혼이 내외부의 적에 잠식당하지 않도록 튼튼한 정신적 방어막을 치는 것 속에 있었다. 


주인공에게 있어서, 조르바의 존재는 지식과 이상만으로 가득찬 무미 건조한 사막 속의 무한한 인간애를 듬뿍 담은 구원의 오아시스였다. 그리고 그 오아시스의 달콤한 물을 마시면서, 주인공은 자신이 그동안 머리속에 담아왔던 많은 것들이 세련된 사기극이요, 지적인 광대놀음이었던 것을 깨닫는다. 

 

지식과 신념으로만 가득찬 거대한 머리 및 행동하지 못하여 가늘어져버린 팔과 다리를 가진 나약한 지식인들과, 그리고, 추상적인 이념과 당위을 늘어놓으면서도 사람 하나 구원하지 못하고 불쌍한 사람들의 슬픈 눈물 한 방울 조차 닦아주지 않는 비정한 위선자들이 주류를 이루는 이 세상. 위선과 한갓 한 줌에 지나지 않는 지식을 조롱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사람 자체와 인생 자체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가진 조르바 같은 존재를 발견하고자 하고 그와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은 쉽게 달성할 수 없는 욕심일런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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