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smine Dec 01. 2024

98. 내 안의 당신에게

― 한강 시인의 ‘괜찮아’

               괜찮아

                                  한강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질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버릴까 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     


  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시 전문>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이 시를 읽고 오래전 엄마가 들려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보다 두 살 아래인 남동생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 질 무렵만 되면 울었다고 한다. 아무리 달래고 젖을 물려도 소용없었다. 꼬박 1시간을 넘게 울고 난 뒤에야 서서히 잦아들었다고 한다. 그런 상황이었기에 겨우 세 살의 나는 어쩔 수 없이 엄마를 남동생에게 양보해야 했다. 나는 속은 아이인 채로 겉으로만 철이 들었다. 학교 다니면서 자주 아팠던 게 어쩌면 엄마 품을 뺏긴 데서 기인한 불안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주인집 눈치가 보여 엄마는 해 질 무렵이면 우는 아이를 업고 공터로 나가 서성여야 했다. 1년이 넘는 동안 저물녘의 먼 산을 바라보며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겨우 20대 후반의 엄마도 먼 곳에 사는 엄마(외할머니)가 그리웠을 것이다. 그때 엄마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이 아팠다. 나라도 엄마를 안아줬어야 했는데 무뚝뚝한 딸은 대학생이 돼서도 그러지 못했다. 제때 표현하지 못한 사랑은 때때로 빚처럼 가슴을 죄어온다.

     

그로부터 40년 가까이 지난 어제 오후 한강 작가의 시집을 펼쳤다. ‘괜찮아’를 읽는데 20대의 엄마가, 우는 아이를 업고 공터를 서성이는 엄마가 떠올랐다. 괜찮다고 말해주는 이 하나 없는 결혼생활을 엄마는 어떻게 견뎠을까. 그 시절을 홀로 버텨낸 모정이 애처롭다. 그때 엄마도 “괜찮아”하고 말할 수 있었다면 저물녘의 서글픔이 엄마를 에워싸진 않았을 텐데. 이제라도 엄마에게 가만히 속삭여주고 싶다. “엄마, 괜찮아, 이제 괜찮아. 나도 괜찮아. 엄마의 하나뿐인 아들도, 막내딸도 모두 괜찮아.”   

  

그제 낮에 파주의 한 식당에서 음식을 기다리는 사이 창밖으로 눈이 폴폴 날리기 시작했다. 구름이 미처 다 가리지 못한 해가 순한 빛을 비추는 사이로 이리저리 날리는 눈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장면을 보는데 순간 눈물이 났다. 혼자가 아니어도 나는 때때로 낯선 별에 홀로 떨어진 아이의 심정이 된다. 그날이 그런 날이었다. 또 다른 어떤 날엔 혼자인 채로 더없는 충만을 느끼기도 한다. 이 시를 읽기 전이었던 그날은 내 안의 당신에게 ‘왜 그래, 왜 그래’를 반복했다. 아무리 물어도 이유를 댈 수 없었다. 앞으로 다시 그런 순간을 만난다면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라고 말해주려 한다.      



#한강#괜찮아#서랍에저녁을넣어두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