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를 만나러 가는 여정
작고 가녀린 목소리는 소녀 시절부터 내 안에 자리 잡은 콤플렉스였다. 조금 이른 퇴직 후 보이스 트레이닝, 발성 수업 등을 들었지만 10회 정도 수업으로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지난 1월, 우연히 ‘나에게, 낭독’이란 책을 주제로 한 낭독 수업을 알게 됐다. 서둘러 수강 신청을 하고 마치 소풍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개강을 기다렸다.
그날 저녁, 부산에 사는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친구와 통화하던 중 귀가 번쩍 뜨이는 이야기를 들었다. 유독 정이 깊은 조카와 전화로 책을 낭독하고 있다고 했다. 에크하르트 톨레의 책을 한 문장씩 주고받듯이 읽는다고 했다. 낭독 수업 개강을 기다리는 중이었기에 친구의 말이 가슴에 콕 박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같이 낭독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매주 목요일 저녁 1시간씩 내가 선택한 책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이제야 제대로 길을 찾은 느낌이 들었다. 친구와 한 문장씩 낭독하면서 내 목소리를 듣고, 친구가 낭독하는 걸 들으면서 내용을 마음에 새기다 보면 1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그 옛날 우리 선조들은 낭독의 힘을 알았다. 입으로 하늘천따지 검을 현 누를 황을 외치며 몸을 앞뒤 또는 좌우로 흔드는 동작에 치유의 힘이 있다는 걸 말이다. 입 밖으로 소리를 내고 그 소리를 듣고 몸을 가볍게 움직이는 동작은 인체의 기를 계속 흐르게 한다. 묵독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낭독이 사라졌다. 아이들은 입시에 쫓겨 교과서나 참고서를 눈으로만 읽고, 그나마 어른이 되면 책과 멀어졌다. 온갖 자극적인 글과 영상들이 스마트폰 속으로 사람들을 빨아들이는 시대가 됐다. 낭독은 진정한 내 목소리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자기 목소리를 찾는다는 건 자기만의 고유한 발화(發話)가 가능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낭독을 시작하고 한 달도 되기 전에 아들과도 낭독을 시작했다. 요즘 부모와 자녀 간의 세대 차이는 우리 부모 세대와 우리 간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깊고 넓다. 더구나 독립한 아들은 오래전 이사 간 동네 이웃 같다. 그런데 1주일에 1시간 낭독을 하다 보면 도무지 읽히지 않던 아들의 내면이 엿보인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막막함은 젊은 날의 나보다 덜하지 않으리라는 게 느껴진다. 낭독이 아니었다면 아들과 둘이 가슴을 터놓는 그런 시간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낭독을 시작하자마자 이런 유익이 있을 거라곤 짐작도 하지 못했다.
다들 앞만 보면서 달려가는 시대를 맞았다. 세상의 파도를 헤쳐나가려면 먼저 자신을 제대로 알고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내게 낭독의 시간은 소통의 시간이다. 소통의 첫 대상은 나 자신이다. 그다음에 가족이나 친구, 세상으로 확장해갈 것이다. 다시 책을 펼쳐 든다. 허리를 곧게 세우고 단전에 힘을 준 후 책을 눈높이에 맞춘다. 책의 한 챕터를 낭독하며 녹음한다. ‘으’와 ‘어’ 발음은 의식하면 할수록 내 혀를 붙잡지만 그래도 끝까지 낭독한다.
제삼자가 되어 듣는 녹음파일 속 내 목소리는 여전히 낯설다. 어린 사슴이 말을 하는 것처럼 가늘고 작다. 그게 가성이다. 하지만 수업이 거듭될수록 내 목소리를 찾는 여정에 가까워지리라 믿는다. 뒤늦은 나이에 새삼스레 ‘낭독’을 배우게 될 줄은 몰랐다. 이런 뜻하지 않은 만남이 있어 삶이 재미있어진다. 낭독을 제대로 배워 언제 어디서든 진성을 낼 수 있는 날을 고대한다. 안정적인 목소리를 내는 일은 주변인이 아니라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첫걸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매일매일 책상에 쌓이는 일 무더기를 해치우기 바빴다. 나 자신과 제대로 소통할 겨를 없이 살아왔다. 크고 작은 일들을 겪고 퇴직한 후 뒤늦게 내 안을 들여다보는 중이다.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 사이 엉겨 붙은 감정들과 꾹꾹 눌러뒀던 일들을 하나씩 꺼내 펼쳐놓는다. 이렇게 많은 것을 욱여넣고 살았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내 목소리를 찾아가는 여정은 내 안에서 소화되지 못한 채 구겨져 있던 감정들을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하다. 녹록지 않으리라는 걸 잊지 않으려 한다. 다시 아래부터 차근차근 다져서 크고 높지는 않아도 단단한 집을 지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첫발을 떼는 마음이 무겁기보단 설렘이 더 커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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