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나는 어떤 빛을 찾아 지구별로 왔을까?

― 호시노 미치오의 『긴 여행의 도중』

by Jasmine

분명 사람은, 언제나 각자의 빛을 찾아다니는 긴 여행의 도중일 것이다. (45쪽)


나는 어떤 빛을 찾아서 지구별로 왔을까? 호시노 미치오의 『긴 여행의 도중』을 읽은 후 떠오른 질문이었다.


호시노 미치오는 대학 1학년 때 헌책방에서 우연히 집어 든 사진집에서 본 알래스카의 대자연에 매료돼 그곳에서 일생을 보내기로 한다. 알래스카의 자연과 야생동물, 사람들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한다. 그는 알래스카에서 에스키모와 클링킷 인디언, 애서배스카 인디언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교감했다.

그는 평생을 침팬지 연구에 바친 제인 구달과 2주간 아프리카를 여행한 후 이런 글을 남겼다.


사람이 여행을 떠나 새로운 땅의 풍경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는 결국, 누군가의 개입이 필요한 것 아닐까? 아무리 많은 나라를 간다 해도, 지구 몇 바퀴를 돈다 해도, 그것만으로는 넓은 세계를 느낄 수 없다. 누군가와 만나고 그 사람이 좋아졌을 때에야 비로소 풍경은 넓어지며 깊이를 갖게 된다. (46쪽)


서울의 여름밤, 그의 책을 읽으면서 밤이 없는 여름과 신비한 오로라를 품은 긴 겨울이 있는 알래스카에 똑같은 시간이 평등하게 흐른다는 생각은, 그의 표현대로 한없이 심원한 기분이 들게 한다.


따각따각… 그가 카리부 떼 10만 마리가 동시에 이동할 때 하체 힘줄이 내는 소리를 연주의 화음으로 여기는 순간 그곳은 카리부의 바다가 됐다. 또한 영하 50도의 세계에서 홍방울새가 눈 속에 꼼짝하지 않고 앉아 지저귀는 모습에서 여름의 빛을 받으며 하늘을 나는 모습보다 훨씬 더 강력한 생명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건 그가 알래스카의 자연에 그대로 스며들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또한 바람에 대한 그의 통찰은 지금이라도 그곳으로 가면 그를 만나고 느낄 수 있을 거라고 믿게 한다.


누군가가 ‘바람은 믿을 수 없이 부드러운 진짜 화석이다’라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우리를 둘러싼 대기는 아득히 먼 예산부터 수많은 생물들이 내쉰 숨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 날숨은 ‘말’로 바꿔도 좋을 것이다. 바람에 휩싸였을 때, 그것은 오래된 이야기가 어딘가에서 불어온 것이라고 한다. (148쪽)


지금 내가 들이마시는 숨 속에 오래전 그의 날숨이, 그의 말이 실려있겠다는 믿음이 내 안에서 생겨났다. 더운 여름날 어디선가 불어와 뺨을 스치는 한 줄기 바람이 어린 시절 떠나보낸 잡종견 ‘미미’와 ‘모모’의 따스한 콧김일 수도 있고, 날 예뻐하셨던 외할머니의 손길일 수도 있다는 깨달음.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새삼 되새기게 된다.


인디언 세계에서 영혼을 떠나보내는 잔치인 포틀래치에 참석한 호시노는 주술사 딸의 입을 빌려 운에 대한 생각을 전한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운은 일상생활 가운데 달라진다고 했다. 그것을 좌우하는 것은 그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과 관계하는 방식인 모양이었다. 그들에게 그것은 ‘자연’이다. (359쪽)


자연을 훼손하는 방식으로 눈앞의 이익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의 삶. 나의 삶이 다른 종의 절멸 위에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 참 뼈아프다. ‘다양한 생물, 나무 한 그루, 숨 그리고 바람에도 영혼이 있다. 그리고 그 영혼이 인간을 주시하고 있다는 애서배스카 인디언 신화가 극북의 숲속에서 말을 걸어온다’는 호시노. 그는 사람이라기엔 너무 크고, 신이라기엔 너무 왜소해서 그가 남긴 기록이 아니라면 믿기 힘든 존재다. 이런 깊은 통찰을 쉬운 언어로 남겨 뒷사람을 배려한 그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는 1996년 8월 캄차카반도에서 TV프로그램 취재에 동행하던 중 불곰의 습격을 받아 자연으로 돌아갔다. 그의 나이 43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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