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육체와의 동일화

― 에크하르트 톨레의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by Jasmine

모든 생명은 생로병사를 겪는다. 예기치 않은 악천후나 사고로, 늙기도 전에 죽음을 맞기도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내가 갱년기를 맞은 건 참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런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언제부턴가 무릎이 은근하게 신호를 보내더니 어느 날 요가 시간에 어깨 돌리기 동작이 잘되지 않았다. 팔을 뒤로 보내 손깍지를 끼고 반 바퀴 돌려서 어깨높이로 들어 올리는데 왼쪽 어깨에 예리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 후로 요가 시간이 즐겁지 않았고 결국 다음 달 수강을 포기했다.


20년 해온 운동을 쉬다 보니 몸도, 마음도 편치 않았다. 오래전 필라테스를 즐겁게 배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참전 부상자 재활을 위해 개발된 운동이니 아픈 어깨에도 도움이 될 거 같아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기구를 이용한 근력 운동에 만족하며 다니던 어느 날 밤 갑자기 통증이 찾아왔다. ‘악’ 소리도 뱉지 못할 만큼의 어깨 통증이었다. 통증 쓰나미가 지나가길 기다려야 했다. 날이 밝자마자 정형외과로 가서 MRI를 찍었다. 왼쪽 어깨 힘줄 2개가 부분 파열됐다는 진단이 나왔다. 수술 날을 잡으라는 의사의 말에 세 군데 정형외과를 더 돌다가 마지막에 소개받은 병원에서 주사 치료를 받고 있는데 수술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회복될지는 미지수다.

어깨 주사는 지금껏 내가 맞은 어떤 주사보다 아팠다. 알레르기 반응검사며 항생제 주사며 무려 다섯 방의 주사를 맞고는 주사실 소파에서 1시간 가까이 널브러져 있었다. 겨우 집으로 돌아와서 자리보전하다 저녁을 먹고 나니 저녁 8시. 친구와 예정된 낭독을 하려고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에크하르트 톨레·류시화 옮김)를 펼쳤는데 ‘육체와의 동일화’ 부분이었다.



<못생겼든 잘생겼든, 즉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사람은 정체성의 상당 부분을 신체에서 찾는다. 자신의 몸에 대한 마음속 이미지와 관념을 자신이라고 잘못 믿고 그 생각과 동일화된다. 하지만 육체도 다른 물질적인 형상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형상이 갖는 운명, 즉 일시적일 뿐 아니라 결국은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공유하고 있다.

지각으로 감지되는 물질적인 육체는 늙고, 허약해지고,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그런데도 그 몸을 자신과 동등시한다면 머지않아 괴로워질 수밖에 없다. 육체와 동일화되는 것을 중단하는 것은 육체를 무시하거나 혐오하거나 보살피지 않고 방치하는 것이 아니다. 육체가 건강하고 아름답고 생명력으로 넘친다면 그 특성을 그것이 지속되는 동안은 감사히 여기고 즐기면 된다. 또한 올바른 식생활과 운동으로 몸 상태를 개선할 수도 있다. 육체를 자신과 동등시하지 않으면, 아름다움이 시들고 생명력이 약해지고 몸의 일부나 기능이 훼손되어도 자아 존중감이나 정체성이 영향받지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몸이 쇠약해지면 약해진 몸을 통해 형상 초월 차원, 곧 의식의 빛이 더 쉽게 비쳐 나오게 된다.

완벽에 가까운 훌륭한 육체를 가진 사람들만 육체와 자신을 동등시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문제가 있는’ 육체와도 쉽게 동일화되고 육체의 불완전함, 질병, 장애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렇게 되면 자신은 만성적인 질병이나 장애로 ‘고통받는 자’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남에게도 그렇게 말한다. 그리고 장애로 고통스러워하는 자, 환자라는 관념적 정체성을 늘 확인시켜 주는 의사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는다. 그렇게 되면 무의식중에 그 병에 집착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자기 자신’, 정체성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기 때문이다.> 81~82P에서



이 페이지를 읽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몸이 아프다고 풀죽은 어른아이, 집안일에 손 놓은 무책임한 어른아이가 내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낭독하던 친구와 함께 이 부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아픈 몸을 ‘나’로 동일시하는 데서 놓여날 수 있었다. 이 책은 반복해 읽다 보면 그전에 미처 와 닿지 않았던 부분들이 내게 먼저 말을 거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본질을 놓치고 살아왔는지 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습관처럼 육체와의 동일화뿐만 아니라 좋은 직장, 넓은 브랜드아파트, 잘난 자식 등 비본질적인 것들이 마치 내 얼굴이고 내 존재인 양 착각하며 산다. 아픈 몸이 나를 저 깊은 우울의 늪으로 끌어당기는 순간, 친구와의 낭독이 나를 나무 그늘 아래로 데려다 놓는다. 어떤 일도 그냥 오진 않는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제각각의 임무를 띠고 우리에게 온다. 어깨가 아프지 않았다면 나는 하루하루 늘어나는 흰머리, 주름에 붙잡혀 지낼 수도 있었다. 그런데 무릎이, 어깨가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한다. 더 나아가 만만치 않은 통증이 '내 몸이 내가 아니'라는 걸 알아차리게 한다. 나는 아픈 어깨가 아니다. 내 몸은 내가 아니다. 내가 내 몸에 갇히지 않을 때 나의 세상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넓어지고 나는 그만큼 자유로워진다.


#갱년기#삶으로다시떠오르기#에크하르트톨레#류시화#육체와의동일화#낭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