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smine Jan 14. 2024

80.감나무 같은 엄마

―동안거에 드는 나무와 사람

                 감 나 무  

                                        함 민 복     


참 늙어 보인다

하늘 길을 가면서도 무슨 생각 그리 많았던지

멈칫멈칫 구불구불

태양에 대한 치열한 사유에 온몸이 부르터

늙수그레하나 열매는 애초부터 단단하다

떫다

풋생각을 남에게 건네지 않으려는 마음 다짐

독하게 꽃을, 땡감을, 떨구며

지나는 바람에 허튼 말 내지 않고

아니다 싶은 가지는 툭 분질러 버린다

단호한 결단으로 가지를 다스려

영혼이 가벼운 새들마저 둥지를 잘 틀지 못하고

앉아 깃을 쪼며 미련 떨치는 법을 배운다

보라

가을 머리에 인 밝은 열매들

늙은 몸뚱이로 어찌 그리 예쁜 열매를 매다는지

그뿐

눈바람 치면 다시 알몸으로

죽어 버린 듯 묵묵부답 동안거에 드는      <시 전문>


이 시를 읽기 전에는 나무가 앙상한 몸으로 겨울 나는 걸 당연하게 여겼어요. 제목을 읽기가 무섭게 ‘참 늙어 보인다’고 시작하는 첫 줄에 괜히 움찔하며 머뭇거리게 되더군요. 반백 년 넘게 살고 보니 푸른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읽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거든요. 게다가 시를 읽는 순간 떠오른 친정엄마는 지금 혹독한 겨울을 나는 중이에요.     


엄마는 3년 전 겨울 뇌출혈로 쓰러졌어요. 코로나로 골든타임을 훌쩍 넘기고야 대학병원에서 수술받은 지 3개월여 만에 재활 전문 요양병원으로 옮겨 2년을 계셨어요. 그사이 뇌에 물이 차서 마취 없이 해야 하는 시술도 받고, 항생제 내성균 감염으로 1인실 격리도 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어요.      


재활 치료가 의미 없어진 지난해 여름 면회가 자유로운 요양병원으로 옮겼지요. 삼 남매가 번갈아 일주일에 두세 번씩 엄마 면회를 다니느라 몸도 마음도 바쁘게 지냈습니다. 그러다 6대1 간병의 부실을 보다 못해 집으로 모시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친정의 안방을 완전히 비우고 환자 전용 침대와 요양사 침대를 들이고 정수기와 가습기 등 만반의 준비를 해놓았지요. 그런데 혹한이 예보되면서 엄마 모셔오는 걸 일주일 미뤄야 했어요. 하루하루가 너무 길고 추웠지요.      


지난 12월 하순, 시 수업이 끝나고 무음으로 해놓은 전화를 열기가 무섭게 조카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곧이어 전화를 바꾼 여동생은 엄마가 위독한데 언니까지 전화 연결이 안 돼 혹시나 집에서 혼자 쓰러진 줄 알았다며 울면서 화를 냈습니다. 마침 남편이 해외에 나간 때였거든요. 엄마가 위독한 줄도 모르고 2시간 동안 시의 즐거움에 빠져 있었던 거지요.     


그날은 영하 15도로 칼바람이 불었어요. 닷새만 지나면 엄마는 만 3년 만에 집으로 돌아오기로 돼 있었는데 무슨 날벼락일까요. 그날 올케가 요양병원으로 면회하러 갔는데 엄마 상태가 매우 나빴다네요. 폐렴이 심한 것 같아 큰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는 원장 말에 올케 혼자 퇴원 수속하고 구급차 타고 상급병원으로 가면서 나와 여동생에게 지원 요청을 한 거였어요.      


‘폐렴’ ‘위독’이란 말을 들었던 순간을 잊을 수 없어요. 서둘러 수업 동기들과 헤어져 건물 밖으로 나오는데 귓속에선 사이렌 소리가 울리고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는 너무 비현실적이었어요. 엄마는 다른 도시에 있었고 운전해줄 남편도 국내에 없었으니까요. 다시 전화한 여동생은 응급실에서 연명치료 여부를 묻는다고 했어요.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삼 남매 생각엔 변함이 없었어요.      


엄마의 삶은 감나무 같았어요. 도시에서 여고를 졸업한 엄마는 결혼하고는 한 번도 쭉쭉 뻗어나간 적이 없었지요. 무정한 남편과 매서운 시어머니, 한술 더 뜨는 손아래 시누이에 넷이나 되는 시동생들. 가난 속에서 어떻게든 자식들 제대로 가르치려고 허리띠 졸라매고 이 궁리, 저 궁리 하느라 환갑 때까진 당신 물건을 제대로 사본 적이 없었어요. 도시에 살면서도 돈이 들까 봐 친구를 만들지 않았지요. 여린 성품인데도 자식들 가르치느라 단호한 결단을 내린 거였어요.      


스물 중반에 첫딸을 낳은 엄마가 매일 씻기고 아기 분 뽀얗게 발라준 덕에 이웃들에게 귀염 받았던 저는 엄마에겐 예쁜 열매였을 거예요. 크면서 늦되고 자주 아팠던 제가 사람 구실 하고 살 수 있는 건 엄마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그렇게 자식 셋을 정성으로 키워낸 엄마가 낯선 병원의 병실 한쪽에 누워 있습니다. 삶이 그런 거라고 앞서간 이들이 글로 남겼지만 저는 여전히 엄마의 긴 겨울이 너무 가혹하다 싶습니다.     


주치의가 환자에게 쓸 수 있는 최대치의 항생제를 썼다며 연명치료를 안 한다니 더는 해줄 게 없다고 말하던 순간 느꼈던 가슴 통증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엄마의 혈압이 너무 낮았거든요. 죄인이 된 것 같았지요.      


딸의 마음을 읽었을까요? 엄마는 뼈만 남은 몸으로 기력을 다해 정상 혈압을 회복했습니다. 그리고 폐렴과 싸운 지 18일 만에 상급병원에서 다른 요양병원을 수소문해 옮겼어요. 면회를 갔던 며칠 전 엄마는 병원 다인실의 부산함에도 눈을 감고 편안한 얼굴로 누워 있었어요. 고통으로 일그러졌던 표정도 다시 온화해졌고 거칠던 숨소리도 잦아들었습니다. 응급상황으로 전혀 관리되지 않았던 머리도 모두 깎아서인지 정말 오랜만에 엄마 얼굴에 안식이 깃든 듯 보였어요. 마치 묵묵부답 동안거에 든 감나무처럼요.     

매거진의 이전글 81. 그날의 결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