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잎새 이야기
2004년 대학교 2학년 1학기까지 공부를 마치고, 휴학계를 제출한 뒤 호주로 어학연수를 왔었다. 그런데 호주에 도착한지 얼마되지 않아 몸살이 정말 심하게 나서 며칠을 드러누웠다. 그때 내 단짝 친구였던 '여영해'와 함께였다. 지금은 연락이 끊긴지 오래지만, 그 소중했던 이름 석자는 내 마음에 그대로 새겨져 있다. 그 때 낯선 타국에서 하루 종일 방에 누워, 겨울이라 창밖으로 앙상한 나뭇가지들만 쳐다보며 말이다.
"이제 저 마지막 나뭇잎이 떨어지면... 난 정말 죽을지도 몰라."
생각해보니 저런 장난을 쳤던 걸 보면, 그렇게 심하게 아프지는 않았었나 보다. 영해는 글도 잘쓰고, 그림도 잘 그리고 재주가 많은 친구였었는데, 그런 말을 들은 뒤 다음 날 하얀 종이에 나뭇잎을 그려 유리창에 붙여놨었다. 그 그림을 보고 감동 받아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난다.
"넌 곧 낫게 될꺼야. 넌 죽지 않아."
말 그대로 친구의 회복을 기원하는 '희망'의 나뭇잎이었다. 그러고 나서 몇 달이 지나, 영해가 아픈 적이 있었는데, 나는 영해처럼 나뭇잎을 그리는 써프라이즈를 하지도 않았고, 아파서 누워있는 친구가 빨리 일어나서 같이 놀았음 좋겠다 싶었다. 그 때 아픈 영해가 내게 했던 말이 아직도 생각난다.
"넌 내가 아파서 나한테 짜증이 나는거야? 아님, 네 스스로 속상해서 그런거야?"
그 때 들키고 싶지 않은 내 속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뜨끔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오늘 문득 그때가 생각났다.
재작년 10월 그러니깐 지금으로부터 1년 2개월 전쯤, 우리가 키우던 고양이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고양이 이름은 미소, 우리가 동물 보호센터에서 결혼 기념일날 데리고 온 고양이었다. 고양이 때문에 누구보다 가장 행복했던 사람은 아마 우리 딸이었다.
그 때 이사온지 얼마 되지 않아 집에 신경쓸 일이 많았고, 고양이는 또 처음이라 잘 관리를 못해줬다. 그러던 어느 날 너무나 갑자기 고양이가 급성 방광염에 걸려 응급실에 갔다가 결국 죽게 되었다. 평소에 잘해주지 못한 아픈 손가락이라 응급실에 가서 제발 살려달라고 모든 치료를 다하게 해달라고 했었다. 하지만, 고양이는 이미 신장에 손상이 많이가서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라는 말만 듣고, 집으로 데려왔었다.
그 고양이한테는 두고 두고 미안할 것 같다. 왜냐면 데리고 온 사람은 나였지만, 데리고 오고 나서 제대로 된 사랑을 준 적이 없었다. 털이 곳곳에 날리고, 음식에도 들어오고, 옷 곳곳에 털을 청소하기 바빴었다. 하지만, 딸이 너무 좋아하니, 참으며 꾸역 꾸역 키우고 있었는데, 그렇게 2살 정도 밖에 안된 어린 나이에 고양이가 죽게 될지 몰랐다. 오히려 언제까지 고양이 털 청소만 해야 하나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한 걱정만 했었다.
그런데 그런 고양이가 갑작스레 죽고 1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딸은 아직 그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젯 밤에도 자기 전에 울려고 시동을 걸었다. 부릉 부릉... 엄......마... 딸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니라 예측이 됐었다. 난 갑자기 목소리 톤을 올리며, 오늘 학교에서 뭐 신나는 일 없었어? 하고 말을 돌렸다.
"엄마... 갑자기 너무 미소가 보고 싶어. 미소가 갑자기 떠난 것처럼, 엄마 아빠도 갑자기 떠나버릴 것 같아 불안해."
처음 있는 일이 아니라, 그냥 조용히 기분좋게 잤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렇게 미소를 그리워 할 시간에, 지금 있는 강아지에게 물 한번 더 떠다주고, 산책 한 번 더 시키는게 나아. 알았지? 내일부터 실천하는거야? 코... 자자"
딸 아이를 위로하기는 커녕, 잔소리만 실컷하는 엄마가 됐다. 꾸역 꾸역 듣기 싫은 엄마의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내 손을 꼭 잡고 있는 아이에게 세수하고, 빨리 자라며 말해놓곤 내가 먼저 잠이 들었다.
그러고 아침이 되었는데, 학교갈 준비를 다 마친 딸이 거울을 보며 또 울고 있었다.
"엄마. 미안해. 갑자기 또 미소가 생각나. 그리고 엄마, 아빠가 미소처럼 사라질까봐 불안이 몰려와."
"자. 지금은 으쌰 으쌰해야 하는 아침이야. 엄마가 아침부터 울고 있다면 넌 어떤 생각이 들겠니? 자. 언능 힘내서 학교에 가자. 엄마, 아빠는 아직 41살이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고, 네가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거야."
그렇게 말을 뱉고 나니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니, 하루 종일 슬퍼하던 딸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혹시, 다음에 딸 아이가 또 슬퍼한다면 친구가 내게 마지막 잎새를 그려줬던 것처럼 나도 따스한 '위로'를 해주어야겠다. 미소 사진첩을 들고와 딸 아이와 실컷 보고, 사진에 미소도 만져보고, 마음껏 슬퍼해도 괜찮다고 오래 오래 꼬옥 안아주어야겠다.
엄마가 못난 엄마라서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