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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Aug 08. 2024

남프랑스 Albi, 꼭꼭 숨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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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남프랑스로 날아왔습니다.

일스만 돌아다니다 보니 글 쓰는 도 이렇게 지루한데, 변변치 않는 글 읽어주시는 분들은 얼마나 지루할까 싶어 오늘은 쉬었다가는 길목이라 생각하고 남프랑스로 날아왔어요.


작년 봄, 프랑스 툴루즈에서 일하던 딸아이 집을 방문해 주변 소도시 몇 곳을 여행했었다. 그중 세상에 크게 알려지지 았지만, 아는 사람들은 제법 찾아다닌다는 Albi가 갑자기 생각나 그곳의 아름다움을 나누고 싶어 접어둔 사진첩을 펼쳐본다.

* 현장감 있게 사진을 크게 펼쳐뒀으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Albi'툴루즈에서 북동쪽으로 85km 떨어진 미디-피레네지역(미디-피레네 산맥 주변)에 프랑스가 꼭꼭 숨겨놓은 보물창고 같은 도시다.  도시의 많은 건축물이 붉은 벽돌로 지어져 '붉은 도시'란 별명도 가지고 있다. 세월이 흘러 붉은 벽돌이 빛이 바래 햇살을 받으면 핑크색이나 오렌지 색으로 변해 도시를 반짝반짝 빛나게 하고 있다.

우리는 툴루즈 역에서 기차를 탔다. 툴루즈는 기차역과 버스터미널이 근접해 있어 대중교통을 이용해 주변 소도시 여행하기에 무척 편리하다.

#  남프랑스  포도밭

1시간 20분 거리에 있는 알비 가는 길은 낭만 넘치는 남프랑스 이미지 그대로다. 프랑스 대도시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작고 아름다운 포도원과 푸른 초원 위에서 풀을 뜯고 있는 구름 같은 양 떼들, 그렇게 시골풍경에 젖어들다 보면 어느새 알비역에 도착한다.


Albi가 세상에 알려진 건 2010년 St. 세실 대성당과 주교의 궁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알비의 주교 도시로 등록>에 등재되면서였다. 그 후,  조용한 시골 마을이 조금씩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소문에 소문을 듣고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데, 우리가 방문했던 시기가 여행하기 딱 좋은 5월의 봄날이었지만, 여느 프랑스 관광지처럼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 없이 모두들 편안하게 여행하는 모습이다. 깨끗하고 상큼한 이제 막 살을 올리는 청포도알 같은 그런 곳이다.


⇲ 짧은 알비 역사 이야기

알비의 기원은 로마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은 대부분 중세나, 근대의 유적이 전부다. 타론강 유역에 위치한 이 도시는 중세 중교 갈등의 뿌리였던 곳이다. 이 지역은 국교(가톨릭)카타리파라 불리는 가톨릭 반체제 종교 운동가들 사이의 전쟁터가 되었다. 카타리파(알비파)는 1165년 알비에서 크게 번성해 강력한 입지를 굳히고 있었고,  로마가톨릭교회는 수년간 남프랑스에서 이단을 근절하고자 노력한다. 카타리파 지도자들과 토론하기 위해 그 지역에 파견된 성 도미니크는 이단에 대응하는 설교자회(도미니크회)를 결성했지만, 그것 또한 이 지역 남작이었던 툴루즈의 레이몬드 6세를 포함 지역 세속 영주들이 카타리파에 대한 관용을 유지해 실패한다. 이단자를 도운 혐의로 파문당한 레이몬드는 상황 조사를 위해 파견된 교황 특사 살인에 연루되었고, 이에 1208년 교황 이노센트 3세는 이곳 카타리파 전멸을 위해 알비의 이름을 딴 알비 십자군을 출범시킨다. 이 십자군 전쟁으로 1209년 Carcassonne(알비 인근 소도시중 한 곳)에서 카타리파가 대패하면서 끝났지만, 그 후 중세 종교 재판에 의해 카타리파는 참혹한 대학살을 당했다.


⇲ 알비 주교 도시(알비 대성당 마을 초입) 사진에 찍히지 않았지만 입구에 아카시아가 활짝 펴 꽃내음이 타른강바람을 타고 솔솔 풍겨왔다.  시내는 유럽의 여느 시골 마을과 비슷하다. 대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안온한 느낌이 느껴진다. 마을 초입에서 벌써 마음이 열린다는 건 가슴 가득 이곳을 담아가라는 신호다.


⇲ 알비 St. 세실 대성당과 주교궁전

우리는 알비역에서 내려 알비 대성당( St, 세실리아 대성당)으로 향했다. 역에서 걸어 10여분 남짓한 거리에 있는 대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큰 벽돌성당이자 유럽에서 가장 큰 색성당으로 유명하다. 알비 십자군 전쟁 이후, 1292년에서 1480년 까지 2세기에 걸쳐 지어진 성당이지만, 외관은 유럽 여느 성당과 달리 화려하지도 않고 평범하지도 않다.

십자군 전쟁 후 종교적 갈등(반란)을 경계했던 주교는 알비 대성당을 거대한 요새로 지어 교회의 권력을 공고히 함과 동시에 완벽한 방어를 꿈꿨지만 프랑스 대혁명으로 성당은 다시 한 번 큰 풍랑을 겪는다.  다행스러운 건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는 동안에는 큰 생채기 없이 잘 견뎌내 우리 앞에 이렇게 우람하게 서 있다.



↓ 성당일까?  요새일까? 철옹성같은 요새이자 성당의 모습이다.


⇲ 성당내부 -  장엄함과 화려함에 넋을 잃었다.

마침 우리가 방문한 날, 성당에서 장례미사(레지오마리에)가 진행되고 있었다. 성당에 들어서자 장엄한 미사곡이 냉담자의 가슴을 심하게 흔들어 놨다.

 

부는 그동안 봐왔던 많은 성당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엄하고 화려하다. 돌과 나무로 된 조각된 섬세한 장식들은 프랑스에서 가장 훌륭한 고딕 양식 건물 중 하나라 한다. 성당 곳곳에 장식된 각종 예술품과 조각품, 화려하고 거대한 합창대 스크린, 내부 벽과 천정은 남프랑스 고딕양식의 진한 감색과 황금색으로 채색되어 묵직함과 화려함 동시에 가지고 있다.


⇲ 고딕과 르네상스가 한 곳에 다 모여있다.

⇲ St. 세실리아 예배당의 유물함과 St. 세실리아의 조각상

알비 대성당에는 본당 측면을 따라 버팀목 사이에 배치된 12개의 작은 예배당이 있으며, 합창대 옆에 12개의 작은 예배당이 더 있고, 동쪽 끝에 5개, 서쪽 끝 '중세 프레스코화 최후의 심판' 바로 뒤에 St 세실리아 예배당이 있다.  


⇲ 루드 스크린(합창대(성가대) 칸막이)

루드 스크린은 중세 후기 교회 건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특징으로 성직자의 영역인 제대평신도들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이는 본당을 분리하는 물리적, 상징적 장벽이다. 이곳 루드 스크린은  성직자 구역과 합창대(성가대) 전체를 둘러싸고 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그리스도, 성모 마리아, 성 요한 등의 나무 조각상을 얹힌 섬세한 돌조각으로 만들어졌다. 현대 가톨릭 국가에서는 종교개혁 당시 대부분 철거되었지만, 아직(유물)도 유지하고 있는 성당도  더러 있다.


⇲  최후의 심판 앞'앞에 선 죄인...,

알비 성당의 '최후의 심판'은 성당에서 가장 오래된 벽화로 15세기 말이 그려졌다. 성당내부 서쪽 정면벽을 다 차지한 벽화는 높이가 15m, 너비가 18m인 엄청난 규모의 프레스코화다. 그림 가장 윗부분은 천사들을 묘사하고, 그 아래 순결을 상징하는 흰옷을 입은 사도들이 줄지어 서 있다.(그림 왼편) 그 아래는 교황과 다른 계급의 수도사들을 포함한 성인과 성직자들이 줄지어 서 있다. 맨 아래는 알몸으로 심판을 받는 죄인들이 있고, 심판은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보는 이들에게 상기시키는 하얀색 띠에 텍스트가 새겨져 있다.  앞에 서있으니, 나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고 저지른 죄를 포함, 수많은 죄의 굴레에 갇혀 허덕이고 있는 그림  또 다른 나를 발견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벽화를 등지고 나왔다.


⇲ 주교궁  베르비(Berbi) 궁에서  툴루즈 로트렉 박물관으로...

대성당 옆에 서있는 주교궁도 유네스코 <알비의 주교의 도시> 역사 유적지에 포함되어 있다. 이곳 궁도 대성당과 같이 잠재적 적들에 대응하기 위해 작은 요새처럼 지어졌다. 원래 대성당과 떨어져 있었는데, 당시 거주자였던 주교가 25m 떨어진 대성당 탑과 거주지를 연결하면서 성벽으로 더 견고하게 강화했다.

세월이 흘러 1905년 대성당과 그 모든 재산은 공식적으로 국유화되었고, 궁전은 박물관으로 사용하기 위해 알비시로 넘겨졌는데, 이곳 출신 후기 인상파 화가의 박물관으로 재탄생됐다.  화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1864-1901)'작품 대부분을 그가 죽고 그의 어머니가 시에 기증해 이루어낸 성과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앙리 마리 레이몬드 툴루즈 로트렉 몽파(이하 로트렉 표기)는 우리의 학창시절  '후기 인상파 화가로 한두 번쯤 들었을 거다. 귀족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13세에 오른쪽 대퇴골 골절과 14세에 왼쪽 대퇴골 골절이 됐지만 골절은 제대로 치유되지 않았다. 키가 152cm로 더 이상 자라지 않았고, 몸은 성인의 몸으로 성장한다. 그런 자신을 비관해 스스로 불운한 삶을 선택한 건지, 그는 알코올중독과 매춘에 빠져 특히 매춘부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 그의 작품 주제가 되었으며, 그런 작품들이 19세기 후반 파리 보헤미안 라이프스타일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한다.  

동료 화가 에두아르 뷔야르는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로트랙은 자신의 운명에 복종하기에는 너무 자존심이 강했다. 그는 자신의 상태와 매춘부의 도덕적 빈곤 사이에 유사점을 발견했다. '

2005년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열린 로트렉의 초기 작품 '세탁부'는 2,240만 달러에 팔려 작가의 작품 중 최고 경매가를 기록했다.



↓ 최고의 경매가로 낙찰된 <세탁부, La Blanchisseuse=캔버스 유화>는 툴루주 로트렉이 1886년 그린 그림이다. 19세기 노동자계급이 견뎌낸 힘든 삶과 노동 조건을 보여 준 그림이라 평가한다.




⇲ 주교정원 산책로에서 만난 아름다운 정원과 포도덩굴이 잎을 내는 둘레길

대성당 서쪽 끝에는 보행자 전용 광장이 있다. 광장 아래 타른 강 산책길가를 걷다 보면 눈앞에 주교 정원이 내려다 보인다. 전망대로 내려가면 타론강과 정원을 경계 지어놓은 높은 담장 위로 정원 산책로가 나있어 그곳을 걸으며, 아름다운 정원을 감상할 수 도 있고. 저 멀리 타론강 상류를 올려다보면 천년 넘은 붉은 벽돌로 마감된 옛 다리가 보이는데 주변 경관과 어우러진 모습에 끌리듯 다리 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주교 정원 위에 놓인 돌담장 산책로엔 고목 같은 포도나무가 돌담 위에 길게 늘어서 있다. 담장 아래서 싹을 틔워 올라온 줄기를 산책로 한쪽 바닥에 구멍을 뚫어 끌어 울린 후, 나무가 자라 그늘을 만들어 산책로를 한층 더 풍요롭게 만들 생각을 했을 당시의 그 조경 장인의 신박한 아이디어에 박수를 보낸다. 남프랑스의 미니 포토원 같은 이곳을 포도가 알알이 영글 때쯤 다시 와 이 길을 꼭 한번 더 걷고 싶다.

⇲ 알비의 퐁듀다리

대성당 상류에는 천년이 넘은 퐁퓨(옛다리) 다리가 있다. 151m 인 천년의 다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건재하고 많은 이들이 찾아와 산책하며 다리밑 강가로 내려가 한번 더 천년의 다리를 배경으로 동서남북 방향으로 사진을 찍고, 가슴에 카메라에 담아 가고 있다. 구시가지 중심부를 휘도는 타른강 위, 퐁듀(옛다리) 다리의 가장 아름 다운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은 알비대상당 정원 산책로다.  



⇲  올드시티에서 맛있는 미식여행

대성당 주변 미로 같은 구시가지(라 비에이유 알비)를 걷다 보면, 눈에 콕콕 박히는 예쁜 건물들이 골목길 곳곳에 서있다. 중심부의 중세 주택과 건물들은 알비와 툴루즈 주변 지역에서 만들어진 유명한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들이 많다.

골목 산책은 목적지 없이 발길 닿는 대로 이 골목, 저 골목 누비고 다녀야 제대로 된  골목길 탐방을 했다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구시가지 골목은 재미있는 상점과 부티크, 화랑, 자잘한 갤러리들이 너무나 많다.

무엇보다 미식의 나라답게 레스토랑이 넘친다.

프랑스만큼 외식하기 좋은 나라(한국 빼고)가 또 있을까?

굳이 격식을 차리지 않아도 적당한 선을 지키는 격식 있고, 맛있고, 아름답기까지 한 음식을 접할 수 있는 나라가 몇이나 될까?  꼭 가봐야 한다고 하는 유명한 미슐랭 식당이 아니더라도 발품 좀 팔아 골목을 걷다, 로컬 식당이다 싶은 식당이 보이면 무조건 들어간다.

그날도 그럴 참이었다.

몇 개의 골목을 돌았는지 모를 정도로 점점지처 갔고, 특히 여행지에서 배가 고프면 이성이 흩어져버리는 나를 잘 아는 모모는 땀을 흘리며 식당을 찾아다녔지만, 마음에 드는 식당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한두 곳 눈에 띄기도 했지만 자리가 없거나, 예약손님만 받고 있었다. 그렇게 몇 골목을 돌다 이 골목이 마지막이다 할 때쯤, 진짜 로컬 같은 로컬 식당을 찾았다. 주인장은 손님과 수다 중이었고, 손님은 식당 뒷골목에 사는 부부처럼 보였다. 장바구니가 식탁옆에 있는 걸 보니 장 보고 오다 이곳 음식이 너무 맛있어 들른 그런 부부였다. (나의 뇌피셜)

살짝 배가 나오긴 했지만 눈웃음이 멋진 중년의 아저씨, 눈부시게 앞치마(apron)를 두른 주인장이 직접 나와 우릴 맞이했다.

지친 우린 주인장이 추천한 음식을 시켰고,  음식에 맞는 와인도 한 병을 주문했다.

와인 첫 잔이 바닥을 보일 즈음,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이 나왔다.

말해 뭐 해, 너무 맛있었다. 입에서 살살 녹는다는 말이 바로 이 말이다.

주인장에게 추천받은 음식 이름은 진즉 잊어버렸고, 정신없이 칼과 포크를 휘둘렀다.

우린 시내 구경을 좀 더 한 후,  저녁까지 이곳에서 먹고 툴루즈로 돌아갔다.

'이런 곰탱이, 단세포들 같으니...



⇲ 알비 가는 길

자동차, 알비는 툴루즈와 고속도로 연결이 되어 있어, 자동차로 여행하면 좀 더 여유롭게 알비로 가능 길 중간중간 포도원도 들르기도 하고, 아름다운 중세마을이 보이면 또 들르기도 하는 여행을 추천한다.

철도, 툴루즈에서 기차나 고속버스를 타고 가거나, 파리에서 TGV를 타고 열루주까지 간 후, 그곳에서 다시 지역 열차로 환승할 수 있다.

항공, 툴루즈에 블라냑 공항과, 로데즈 공항이 있다. 공항에서 알비까지는 1시간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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