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포스(Aberporth) 마을은 과거 바다 건너 아일랜드에서 보트와 그물, 소금 등을 들여오면서 17세기부터 18세기 초반에 빠르게 발전한 항구 마을이다. 한때 청어 잡이로 유명했지만, 어족자원 고갈로 청어 대신 낚시꾼들에게 배를 대여해 주거나, 게나 랍스터등을 잡으며 소규모 어업 활동을 하는 아주 작은 해안 마을이다.
이곳에는 독특한 이름을 가진 해변 'Traeth y Dyffryn(계곡해변)과 Traeth y Llongau(선박해변)'이 있다.
굳이 둘로 나눌 필요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작은 해변들이지만 둘로 구분 지어 뒀다. 만조 때는 해변이 분리된 듯 보이지만, 썰물 때는 가운데 곶을 사이에 두고 넓은 모래사장이 하나로 펼쳐진다.
마을이 내려다보는 언덕에서 눈앞에 펼쳐지는 독특한 구조의 해안 풍경과 사람들의 여유로운 모습에 끌려 산책로를 이탈해 마을로 발걸음을 옮긴다.
마을과 해변을 지나 해변 건너 해안이 내려다 보이는 낮은 언덕 위 벤치에 잠깐 앉았다.
아름다운 해안 오솔길너머 바다에서 고래가 곡예하듯 점프를 하고는 춤추듯 부드럽게 미끄러져 나간다. 어린 새끼와 물속에서 얼굴만 빼꼼히 내민 바다표범은 사냥법이라도 전수하는지 열심히 물속을 들락거리다 한순간 하던 짓을 멈추고, 지들 구경하느라 정신없는 산책객들이 되려 신기했던지 한참을 이쪽을 보고 있다.
작지만 독특한 아름다움을 가졌으며, 완벽한 수질로 매년 블루 플래그 상을 수상하는 등 자랑할게 넘치는 해변 마을이다. 여름철에는 서유럽 전역에서 이곳을 찾는 해수욕객들과 산책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마을에는 바다에서 갓 잡아온 싱싱한 랍스터와 게요리를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도 있다.
<블루 플래그 해변, 유럽 환경 교육재단(FEE)에서 해변과 선착장의 환경관리, 품질, 안전, 환경교육 및 정보 서비스, 수질 기본법 등 높은 환경 및 품질 기준을 나타내는 지표로 평가 후 적합한 결과가 나오면 FEE 인증서를 회원국의 해변과 선착장에 매년 수여한다. >
해변 마을 북쪽 언덕 위에는 작고 고즈넉한 중세 교회가 마을과 해안의 수호자처럼 마을을 내려다보고 서 있다. 6세기경 북쪽에서 내려온 켈트족 성인에게 바쳐진 교회는 작지만 견고하다.
⇲ 아버포스 마을을 통과해 북쪽으로 조금만(3km) 걸어 나가면 작은 모래사장에 근사한 폭포를 품고 있는 Tresaith 해안 마을이 있다. 이곳은 아버포스와 트레사이스 두 곳을 순환하기에 딱 좋은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 아버포스 마을에 차를 두고 산책을 하는 이들이 많다. 유모차를 끌거나 반려견과 함께 나오거나, 장거리 산책이 어려운 이들을 위해 구간 구간 잠깐 쉴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해 뒀다. 그래서 그런지 반려견과 함께 산책 중인 어르신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그들은 대부분 아스팔트 산책길 끝에서 발길을 돌리는 듯하다.
짧은 아스팔트 구간 산책길 한편에 기차를 개조한 여러 채의 휴가용 숙박 시설이 서있다. 그곳에서 해안 쪽을 향한 벤치에 앉아 먼바다를 보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행복한 순간이다. 내어주기만 하는 자연덕에 고갈된 에너지를 충전해 걸어 나갈 힘을 얻는다.
길을 걷다 보면 자연이 만들어낸 뜻밖의 선물을 받는다. 이 짧은 순간만큼은 나를 위한, 나만의 꽃 터널이다. 솜털 같은 하얀 꽃터널 아래 몇 분 동안 서 있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저만치서 조용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온다. 또 다른 나그네를 위해 얼른 꽃 터널을 빠져나와준다.
어느 은발의 여인이 혼자 꽃 터널을 지나간다. 그녀가 '정말 아름답지 않니? ' 하며 꽃처럼 환한 미소를 건넸다. 나도 행복한 트래킹하라며 행복한 미소를 던진다.
애버포스 마을에서 트레사이스까지 가는 길에서 가장 쉬운 구간이지만, 경치는 여전히 황홀하다. 아스팔트가 끝나는 지점에서 길은 갑자기 가파른 절벽길로 변한다. 절벽은 꽤 높고, 절벽 아래 바위에 파도가 부딪쳐 생긴 하얀 포말이 조금 전 꽃터널에서 만난 꽃송이처럼 곱게 피어났다 금방 사라져 버리기를 반복한다.
지천이 이름 모를 들꽃으로 가득하고 부리가 독특한 새의 날갯짓과 그들이 들려주는 고운 노랫소리에 빠져 걷노라면 내게 시간이란 개념은 무의미하다. 그저 자연이 내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걷고 또 걷는다.
걷다가 무심코 고개를 들어보면 저 멀리 마을이 보이고, 해변이 보인다. 외딴집도 보인다. 그렇게 걷다 또 무심코 고개들 들어 보니 건너 언덕 위에 집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온다. 트레사이스 마을이다.
Tresaith는 캐러벤 공원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다. 아버포스에서 이곳으로 향하는 동안 크고 작은 캐러밴 공원을 몇 곳을 지났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름다운 전망이 펼쳐지는 곳이라면 어디든 자리하고 있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영국의 휴양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캐러벤 공원은 개인이 끌고 다니는 캠핑카 공원도 있지만, 대부분 주택처럼 만들어진 캐러밴 공원이 주를 이룬다. 개인이 소유하거나 여름 한철 임대도 가능하다.
트레사이스에서 캐러밴보다 더 유명한 건 세일링이다.
비록 해변이 250m에 불과하지만 바다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수상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유명한 세일링 클럽도 있다. 클럽에서는 매년 여름 해안에서 축제를 연다. 아이들에게는 모래성 쌓기 대회, 성인들은 세일링 경주, 밤에는 음악과 먹거리로 여름밤 작은 해변 마을을 한껏 달궈 놓는다.
<이곳도 마을 이름과 관련한 귀여운 전설이 있다.
'Saith'는 웨일스어로 일곱을 뜻하며, 전설에 따르면 고대 아일랜드 왕이 말썽 많은 일곱 딸을 배에 태워 바다에 표류시켰단다. Ceredigion해안에 상륙한 그들은 일곱 명의 지역 농부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의심할 여지없이 행복하게 살았단다. 그들이 Ceredigion에서 상륙한 지점이 이곳, 일곱(Saith)의 장소였다고 전해진다.>
✾ 해안은 짧은 모래사장 지역을 제외하면 대부분 바위 투성이다. 계절에 상관없이 양동이를 들고 바위 웅덩이를 탐험하는 아이와 부모들은 삿갓조개나 게, 홍합(홍합이 특히 많다.)등 오염되지 않는 바다생물을 모래 놀이 양동이에 한가득 담아 나온다.
⇲ 마을 북서쪽 절벽 위에서 Saith강물이 바다로 급하게 낙하하는 멋진 폭포가 있다. 수천 년 전 빙하가 Saith 강의 흐름을 막는 바람에 강줄기가 방향을 바꿔 해변으로 흘러내리게 된 폭포다. 사계절 내내 마르지 않고 쏟아져 내리는 폭포는 작지만 힘차다.
뜬금없이 이 물줄기의 원천이 어디쯤일까 궁금해진다.
<기회가 된다면 영국의 실핏줄 같은 강들의 근원지를 한 번쯤 찾아다녀보고 싶다. 물의 나라, 강의 나라..., 영국 살이중 가장 매력적으로 내게 다가온건 어딜 가나 수없이 많은 도랑과 개울, 실채천, 강물들이었기에 꼭 한번 물줄기를 찾아다니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실채천은 실컷 볼 수 있겠지?>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 근처 바위에 앉아 한숨 돌리고 나니 또 여유가 생긴다.
어디서든 쉬고 싶은 순간 쉬면서 한숨 돌릴 수 있는 이 여유로움은 혼자 걷는 이가 느낄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자유로움이 아닐까?
어느 순간 아무도 없는 길을 홀로 걷는다는 것, 길을 혼자 차지하는 순간은 짧지만 그 순간만큼은 영원하고 가장 행복한 고립의 순간이다.
이 호젓한 공간에 나만 있어 무지무지무지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