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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게 물든 감나무

기적 처럼 자란 씨앗

by 봄이

오늘 슈퍼마켓에서 반짝이는 스페인산 감을 마주했다.

3개 한 묶음이 ₤1.39(약 2,800원), 나는 흥분을 참지 못하고 열 묶음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하지만 스페인 감은, 잘못 사면 떫은게 더러 있다. 그 기억에 한국의 달콤한 단감이 더욱 그리웠다. 한국, 단감의 고장에서 자란 나는 가을이면 박스째 단감을 사다 먹곤 했다. 영국에서 쉽게 단감을 구할 수 없는 현실이 아쉽게 느껴졌다. 마치 가을의 온기를 충분히 누리지 못한 듯, 마음 한켠이 허전했다.

그 허전함 속에서 3년 전 일이 떠올랐다.

같은 마음으로 한국에서 가져온 감씨 몇 알을 화분에 심었던 일.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씨앗들은 어느새 여섯 그루로 자라 1미터가 훌쩍 넘었고, 어린 나무들은 웨일스 남부의 습한 공기와 잦은 비, 변덕스러운 날씨를 묵묵히 견뎌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절반의 성공’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지금, 감나무 잎은 작은 홍시를 품은 듯 붉게 물들었다.

햇살이 비치는 순간, 붉은빛이 불꽃처럼 반짝인다. 시선은 자꾸 그 나무들에 머문다. 과연 이 나무들이, 지금의 잎처럼 붉은 감을 주렁주렁 달게 될까? 그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두근거린다.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나는 AI에게 물었다.
“영국에서 감나무를 키운다면, 과연 감을 수확할 수 있을까?”
대답은 단호했다.
“가능은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영국의 기온은 여름은 짧고 선선하며, 겨울은 길고 습합니다. 감이 좋아하는 긴 햇살과 따뜻한 공기가 부족합니다… 겨울에는 동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섯 그루의 감나무는 이미 작은 기적처럼 자라고 있다.
서늘한 바람이 잎을 흔들고, 햇살이 붉은 잎과 가지 사이로 스며든다. 상상 속에서 감은 주렁주렁 매달려, 겨울로 들어서는 하루의 끝을 물들인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이제 마음 한켠에는 희미한 설렘이 자리 잡았다.
언젠가 감 하나를 따서 맛볼 가능성, 고향집 담장 너머로 뻗은 붉은 감을 바라볼 희망. 불리한 환경 속에서도 생명이 길을 찾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 자신도 묵묵한 힘을 얻는다.


중요한 건 이미 감나무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다.
붉게 물든 잎사귀 속에서 가을과 생명, 희망을 느낀다.

우리의 삶도 감나무와 닮은 듯 하다.
모든 것이 완전히 성숙하지 않아도, 작은 성장 자체가 이미 가치 있고, 가능성을 품는다.


설령 불확실한 길을 걷더라도, 우리는 가능성과 꿈을 믿고 오늘을 살아간다.
감나무처럼, 묵묵히 시간을 견디며 언젠가 자신만의 열매를 맺을 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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