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여행, 론다의 기억 2
아랍목욕탕의 검은 고양이
무어왕의 집을 나와 다시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자, 오래된 집들의 낡은 벽과 빛바랜 목재 창틀이 눈에 들어왔다. 문 앞에 걸린 작은 간판, 오래된 노포의 문고리와 녹슨 쇠창살까지... 세월이 골목 깊숙이 퇴적된 채 남아 있는 듯했다. 우리는 말없이 그 골목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골목길 벽에 붙은 플라멩코 공연 홍보 포스터마저도 이질감 없이 풍경 속에 스며들어 있어, 잠시 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골목을 지나 내리막을 걷다 보니, 절벽 위 무라야스 델 카르멘(Murallas del Carmen) 성벽이 갑자기 눈에 들어왔다. 무슬림 시대 도시를 방어하기 위해 세워진 이 성벽은 바람과 햇빛, 비를 견디며 놀라울 만큼 온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빗물이 돌 틈 사이로 흘러내리고, 젖은 돌은 세월의 흔적을 한층 더 또렷하게 드러냈다.
성벽 위에서 론다 너머의 세상을 말없이 바라보며, 그날 내가 지나온 길과 눈앞의 풍경을 천천히 되짚어 보았다. 올리브밭과 오렌지밭은 빗물에 젖어 은은하게 빛났고, 평야는 안개와 비에 살짝 흐릿하게 겹쳐 보였다. 먼 들판과 산 능선이 겹겹이 이어진 풍경 속에서, 여행의 한 순간이 조용히 마음에 남았다.
잠시 풍경 앞에 머문 뒤, 우리는 다시 성벽 아래로 난 길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중세 아랍 목욕탕, 바뇨스 아라베스(Baños Árabes)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으로 들어서자 중앙에 높게 솟은 돔 천장 아래로 여러 개의 목욕 공간이 겹겹이 이어져 있었고, 그 구조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천장에는 작은 별 모양 구멍들이 촘촘히 뚫려 있어, 빛과 공기가 은은하게 내부로 스며들고 있었다.
건물 자체인 Baños Árabes는 역사적 유적을 의미하며, 그 안에서 이루어지던 목욕과 사교, 건강 관리 등의 문화는 *하마맘(Hammam)*이라 불렸다. 당시 하마맘은 단순히 몸을 씻는 공간을 넘어, 사람들이 건강을 돌보고 이야기를 나누며 정보를 교환하고, 때로는 비밀스러운 회의까지 열리던 도시의 중심지였다.
목욕탕을 나서며 출입문 한쪽에 앉아 있는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문 틈 사이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와 어우러진 그 눈빛은 차갑고 깊었다. 발걸음을 옮기며 뒤돌아보니, 여전히 나를 응시하고 있는 듯했다. 젖은 돌바닥에 반사된 그림자가 흔들리고, 고양이의 시선은 공기 속에 얼어붙은 채 나를 꿰뚫는 느낌이었다.
말은 없었지만, 그 눈빛에는 이곳을 스쳐 가는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침묵의 인사가 담겨 있는 듯했다.
좁은 골목을 따라 조금 더 오르자, 비에호 다리(Puente Viejo)가 모습을 드러냈다.
몇 시간 전 누에보 다리(Puente Nuevo)를 걸었을 때는 거대한 아치와 높은 전망이 한눈에 들어오며 숨이 막힐 듯 압도되었지만, 이 낮고 소박한 돌길 위에서는 그 웅장함 대신 잔잔한 매력이 마음을 감쌌다.
작은 다리 위를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니, 좁은 골목과 강물 사이로 아기자기하게 들어선 집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졌다. 화려한 장관은 아니었지만, 그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마음은 한결 느긋해졌고, 누에보 다리에서 느꼈던 긴장과 설렘은 이곳의 따스한 정취 속으로 부드럽게 녹아들었다.
비에호 다리는 16세기 후반에 지어져 누에보 다리보다 훨씬 앞서 세워진, 르네상스 시대 장인들의 손길이 담긴 소박한 돌다리다. 누에보 다리가 도시의 웅장함과 기술적 성취를 보여준다면, 비에호 다리는 과거 상인과 장인들의 일상, 그리고 도시의 생업을 이어주던 역사적 연결점이라 할 수 있다.
이 다리를 처음 건넜던 사람들은 로마 시대나 무어 시대를 살았던 이들이었을 것이다.
자연 절벽을 활용한 통로였던 이곳에는 세월이 흐르며 장인과 상인들이 강가와 절벽 사이의 좁은 땅에 공방을 세웠다. 가죽을 무두질하고, 직물을 짜고, 토기를 빚던 사람들의 손길이 모여 도시의 생업을 이루었고, 지금의 다리는 그 발걸음을 잇는 역사적 구조물이자 도시를 연결하는 하나의 혈관처럼 남아 있다.
⇲ 비에호 다리에서 내려다본 주변 풍경
비에호 다리를 지나 신시가지로 올라서자, 갑자기 허기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걷느라 출출했던 우리는 조금 늦더라도 ‘진짜 로컬’ 식당을 찾아 골목골목을 탐험하기로 했다.
몇 블록을 헤매다 어렵사리 작은 식당을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서자, 이미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이렇게 골목 깊숙이 있으면 진짜 로컬이겠지’ 싶어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펼쳤는데, 온통 스페인어뿐이었다.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사장님으로 보이는 분이 다가와 어디서 왔느냐고 묻더니,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갑자기 한국어 메뉴판이 등장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다가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알고 보니 우리가 ‘진짜 로컬’을 찾아왔다고 생각한 이곳은 관광객을 주로 상대하는 식당이었다.
“저 만국기가 펄럭이는 걸 보면서 태극기만 찾았을 뿐…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서로 웃으며 중얼거렸지만, 배고픔 앞에서는 그런 깨달음도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게다가 사장님은 한국인에게만 제공하는 특별 안주와 사진 서비스까지 준비해 주었고, 우리의 사진을 TV 화면에 띄워 송출하는 깜짝 이벤트까지 선사했다. 뜻밖의 상황에 또 한 번 웃음이 터졌고, 덕분에 저녁 식사는 더욱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다. 식당을 나서며 이런 작은 우연과 소소한 해프닝들이 여행의 기억 속에 자연스럽게 쌓여간다는 걸 실감했다.
늦은 오후,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론다 투우장(Plaza de Toros de Ronda)을 찾았지만, 늦은 점심 탓에 또다시 오픈 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투우장은 우리와 인연이 닿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스페인 투우 문화의 발상지인 이곳을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잠시 소개하자면, 론다 투우장은 18세기 후반 완공되었고, 로메로(Romero) 가문, 특히 페드로 로메로(Pedro Romero)가 현대 스페인식 투우를 정립한 장소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말을 타고 싸우던 기존 방식 대신, 맨몸으로 황소와 맞서는 투우 방식을 대중화하며 스페인 투우의 기반을 마련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28년간 활동하며 5,600번이 넘는 투우를 치렀다고 한다.
사진출처 : 론다 투우 박물관 홈페이지과거 이곳에서는 돌계단에 앉은 관중들이 흥분과 긴장 속에서 경기를 지켜보았고, 투우사들은 원형 경기장을 가로질러 황소와 맞서며 정교한 기술과 용기를 선보였을 것이다. 좁은 골목과 돌길, 하얀 건물이 이어진 론다의 도시 풍경 속에서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투우의 역사와 전통을 상상할 수 있었다.
비록 내부를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외부와 주변 풍경만으로도 이곳이 스페인 투우 문화의 중심지이자 깊은 역사성을 지닌 공간임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론다는 그동안의 날씨가 무색할 만큼 맑은 햇살을 쏟아내고 있었다.
아쉬운 마음에 우리는 망설임 없이 이른 아침부터 호텔을 나섰다. 밤새 빗물을 머금은 나무와 풀잎은 촉촉하게 빛났고, 산책로에 들어서자 아침 햇살을 받은 구시가지의 하얀 건물들이 건너편에서 “Buenos días” 하고 속삭이듯 인사해 오는 것 같았다.
협곡 너머 올리브밭과 구릉들도 부드러운 빛을 머금은 채 고요하고 단정한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 성당 앞에는 이미 또 다른 여행자들이 가이드의 설명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우리가 떠나면 그 자리는 곧 새로운 사람들로 채워지고, 웃음과 발걸음 소리로 성당 광장은 다시 살아날 것이다. 오래된 돌길 위를 오가는 사람들 사이로 도시의 하루는 조용히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왜 꼭 우리가 떠나는 날 이렇게 맑아지는 걸까?
론다는 사람 마음을 살짝 뒤흔드는 도시다.
그리고 제발!
세비야에서는 비만큼은 내리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