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을 벗어나자 마리아 루이사 공원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오렌지나무와 종려나무가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잔잔한 분수 물줄기가 바람에 흔들리며, 낮은 노랫소리처럼 공원 안을 감쌌다.
한때 산텔모 궁전의 사유 정원이었던 이곳은 19세기말, 스페인 왕실 출신 마리아 루이사 공주가 세비야 시에 기증하며 시민들이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 공원으로 바뀌었다. 왕실의 사유 공간이 시민들의 일상 속으로 스며든 것이다.
공원 산책로를 따라 북서쪽 출입구를 나서니, 도로 건너편으로 엑스포지시온 카지노(Casino de la Exposición)의 둥근 지붕이 모습을 드러냈다.
1929년 이베로아메리카 박람회를 위해 지어진 이 건물은 화려한 장식과 세밀한 타일로, 그 시대 세비야의 분위기를 조용히 전한다.
이름에 ‘카지노’가 붙어 있어 우리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어? 카지노?” 하고 고개를 갸웃했지만, 스페인어에서 카지노는 사교 모임이나 문화 행사를 위한 공간을 뜻한다고 한다. 룰렛이나 카드 대신, 누군가 갑자기 플라멩코 한 곡을 시작해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조금 더 앞으로 걸어가자 붉은 벽돌 담장 너머로 산텔모 궁전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담장을 따라 천천히 걷는 동안 궁전은 조금씩 시야에 들어왔고, 정교하게 새겨진 조각과 아치, 발코니는 기우는 햇살 아래에서 또렷한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1682년 성직자 기숙사로 세워진 이 궁전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귀족과 왕실의 거처로 그 위상을 바꾸었다. 스페인 왕가의 권력과 재산이 변화하는 격동의 시대 속에서, 마지막으로 궁전을 머문 이는 마리아 루이사 공주의 가족이었다.
공주는 궁전과 정원을 세비야 시에 기증하며, 시민들이 왕실의 역사 속 공간을 가까이 느낄 수 있도록 했다. 19세기말 이후, 이 궁전은 안달루시아 지방정부 수장의 공식 집무실로 사용되며, 역사와 현대가 이어지는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궁전 안으로 들어서면 바로크 양식의 화려함이 한눈에 들어온다.
웅장한 계단과 섬세한 천장 장식, 금박과 대리석이 조화를 이루며 공간 전체가 살아 있는 예술 작품처럼 느껴진다. 정원과 파티오를 거닐 때마다 발걸음은 자연스레 느려졌고, 그 안에서 안달루시아다운 호흡이 고요히 이어졌다.
마리아 루이사 페르난다 데 보르본(1832–1897)은 19세기 스페인 부르봉 왕가의 공주로, 언니 이사벨 2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왕실 내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1846년 프랑스 오를레앙 가문의 안토니오, 몬펜시에 공작과 결혼해 산텔모 궁전을 거처로 삼고 자녀들을 키웠다.
그녀의 삶은 왕실의 책임과 개인적 삶이 얽힌 역사였으며, 오늘날 산텔모 궁전과 마리아 루이사 공원은 그녀의 존재와 시대를 기억하게 하는 상징이 되었다. 궁전을 거닐며 공주와 가족들이 살았던 흔적을 상상하는 것 또한 여행의 또 다른 묘미였다.
산텔모 궁전을 지나 우리는 ‘27세대 시인을 기리는 분수(Fuente de los Poetas de la Generación del 27) 앞에 섰다. 1927년 세비야에서 열린 문학 모임을 계기로 형성된 27세대 시인들을 기리는 장소다.
분수 위에는 시적 영감을 상징하는 뮤즈의 조각상이 놓여 있었고, 햇살 속에서 물줄기와 함께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주변에는 사람들이 조용히 앉아 사색을 즐기거나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 곁에 서 있으면서도, 나는 잠시 혼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분수를 뒤로하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자, Hotel Alfonso XIII가 보였다. 출입구를 수놓은 화려한 타일과 세심하게 깎아낸 조각들은 보는 이의 숨을 고르게 만들었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이 호텔은 1929년 이베로아메리카 박람회를 앞두고, 당시 국왕이었던 알폰소 13세의 제안으로 세워졌다. 그의 이름을 그대로 간직한 채, 한 세기를 넘는 시간 동안 세비야의 품격을 묵묵히 지켜오고 있다.
한때는 국제 귀빈과 왕족, 사절단을 맞이하던 상징적인 장소였고, 지금도 그 흔적은 공간 곳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아라베스크 양식의 부드러운 아치, 세월의 빛을 머금은 정교한 타일, 따뜻한 숨결이 느껴지는 목조 장식과 차분한 대리석 바닥이 어우러진 내부는 마치 세비야의 역사가 한 장면으로 펼쳐진 듯했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일부 장면이 이 호텔과 주변에서 촬영되었다는 이야기는 이 공간에 또 하나의 서사를 더한다.
호텔 옆에 자리한 거대한 석조 건물은 한때 왕립 담배 공장(Real Fábrica de Tabacos)이었다. 1700년대 초, 스페인 왕실의 담배 독점 정책 아래 지어진 이 건물은 튼튼한 구조와 넓은 중정을 갖추고 있으며, 규칙과 통제가 지배하던 시대의 질서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당시 이곳에서는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하루 종일 담배를 말며 반복되는 노동의 시간을 보냈다.
세월이 흐른 뒤, 이 공간은 세비야 대학 본관으로 탈바꿈해 교육과 연구의 장소가 되었다. 그러나 이 단단한 공간은 건축물로만 머물지 않고, 훗날 문학 속 한 인물을 탄생시킨 무대가 되었다. 규칙적인 노동의 공간 한가운데서도 사랑과 삶을 스스로 선택하려 했던〈카르멘〉은, 자신의 뜻대로 사랑하고,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사회의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강렬한 여인이었다.
그녀의 자유로운 성격은 이 단단한 건물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그 강렬함은 지금도 세대를 넘어 전해지고 있다.
이곳에서 태어난 이야기는 비제의 음악을 만나 오페라 〈카르멘〉으로 다시 태어났고, 사랑과 자유를 거부하지 않았던 한 여인의 열정적 노래는 세비야를 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 노래 속에는 카르멘의 용기와 독립, 그리고 자신의 삶을 선택하려는 의지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늦은 오후, 대학 맞은편 카페 거리는 수업을 마친 학생들과 퇴근길에 오른 사람들로 분주했다. 야외 테이블은 사람들로 가득했고, 누군가는 노트북을 펼쳐 두고 자판을 두드렸고, 또 다른 이는 스마트폰 화면을 천천히 넘기고 있었다.
커피잔을 손에 쥔 얼굴들은 느긋해 보이면서도 하루의 끝자락에 쌓인 피로가 묻어 있었다. 길가에 늘어선 테이블 사이로 사람들의 걸음과 목소리가 오갔고, 그 흐름 속에서 나는 이 도시에 속한 것도, 완전히 떠나 있는 것도 아닌 상태로 잠시 머물렀다.
대학 앞 카페거리를 따라 조금 걸어 나가면, 18세기 후반 옛 도성 성벽 터 위에 조성된 무릴로 정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은 한때 세비야 왕실 알카사르의 부속 과수원이 있던 자리로, 왕실의 채소와 과수가 자라던 공간이었다가, 세월이 흐르며 시민들의 쉼터로 변모했다.
꽃과 나무, 조각상과 분수가 어우러진 정원은 도심 속 휴식처이자, 세비야의 역사가 고스란히 스며든 공간이었다. 곳곳에 놓인 전통 세비야 타일 벤치 위로 햇살이 반짝이며 모자이크 무늬를 비추고, 산책의 리듬은 한층 부드러워졌다.
오렌지나무와 피쿠스, 재스민이 만든 그늘 아래에서 시민들은 유모차를 끌고 걷거나 벤치에 앉아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와, 따뜻한 저녁 식사를 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아침에는 마음이 먼저 굳어,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각자 다른 생각을 붙잡고 있던 시간이 있었다. 말로 꺼내지 못한 감정들이 비처럼 우리 사이를 적셨다.
그러나 하루를 걷고, 보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 무게는 조금씩 느슨해졌다. 따뜻한 국물 한 숟가락을 떠먹으며,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아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여행은 풍경을 바라보는 데서 끝나는 시간이 아니라, 그 장면들을 마음속에 오래 남겨 두는 시간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오늘 하루, 세비야의 햇살과 사람들, 역사와 문화 속을 함께 걸었다.
아름다운 타일 벤치에 앉아 바라본 풍경처럼, 그 흔적들은 잠시 찾아온 정적 속으로 스며들어,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오래 머물 것이다.
산텔모 궁전 내부를 투어는 사전 예약 가이드 투어를 통해서만 방문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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